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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사람 VS 대행사 사람

우리 화가 날 수 있지만 미워하지 말아요. 착한 마음...착한 마음...

에이전시인에서 브랜드인으로 껍데기가 달라졌다. 

다이빙 수심이 달라졌다. 그리고 흔히들 말하는 광고주이자 '갑'이 됐음을 실감하는 타이밍이 있다. 

대행사에 '불편'을 드러내는 순간. 


AE로 3년이 넘는 시간을 일하며 힘들었던 몇몇 순간은 클라이언트의 짜증받이가 되는 때였다. 그(의 회사)를 위해 나름의 '담당자'로서 뼈를 갈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로도 마땅치 못한가...하면서도 나는 '넵충' 이상이하도 될 수 없었다. 전화를 끊은 후엔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벅벅 피워대며 생각했다. 별일도 아닌데 왤케 신경질이야 스바시바(쌍시옷 생략) 

인하우스의 옷을 입은 지금은 그가 바락바락 난리를 치던 '별 일'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광고주가 되었고, 어쩌면 업계 중에서도 성격 좀 날린다고 하는 '한 성격 별천지'라는 L사의 어느 마케터처럼 꽤나 신경질적인 클라이언트가 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에이전시의 생태계란 무릇 여러 고객사를 미친듯이 굴리는 게 선수라고 인정밭는 세계인데 꼴난 몇백(*내 돈 아님주의)의 돈을 지불하며 당연히 내 마음처럼 모든 시간을 투여할 수 없는게 당연에 당연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왜 이정도밖에?>라는 의문. 왜 이정도로만 일하고, 이 정도에서만 만족하지? 왜 더 나은 레퍼런스는 없지? 내가 다 써 줬는데, 왜 오탈자 교열마저 이렇게 힘들지? 그들도 힘들 일이다. 나도 이왕 하는 일 열심히 해주고 싶은데 해줄 광고주가 그렇게도 많으니 어쩔 일이겠는가. 오케이, 짜증 참는다!


이해가 됐다. 또래이자 세상 호인인 파트너사 담당자와 일을 해보니 더더욱 그의 고충이 가까이 느껴졌다. 다만 밀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던 일은 이 때였다. 다리가 많았던 고객-매체사-대행사-브랜드, 이 스킴의 일을 할 때. 진상 고객의 컨트롤이 어려웠던 매체사의 미스로 내 회사의 유관 부서까지 일을 처리하는 데 문제가 생겼더랬다. 그는 브랜드의 잘못을 인정하란듯 매체사가 업무를 보기 편한 방향으로 일을 제안했다. 미디어와 얼굴을 붉히면 파트너사가 지닌 수개의 유관 브랜드들이 커뮤니케이션이 힘들어지기에 그럴 법도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나는 나의 월급 중 일부를 지불받을 그녀가 과연 나의 편인가, 그들의 편인가. 그녀는 나의 엄연한 파트너였다. 이직 후 반 년이란 시간동안 그렇게 화를 쏟아부었던 적이 없더랬다. 나는 저 편에 있는 그녀에게도, 그리고 화를 내는 나에게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파트너사의 임원이 브랜드 입장으로 교통정리를 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3일 사이에 흰 머리가 수두룩 자랐다.


마케팅 특성상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은 대행사 출신들이 수두룩 빡빡이다. 수두룩 빡빡인 그들은 대행사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파트너사의 담당자가 최선을 다하는지, 그럭저럭 하는지, 대강 쳐내는지 누워서도 알 수 있다. 대강의 범위는 주관적이기에 합을 맞추며 범위를 조정할 수 있다. 니 캐파 내 캐파 따지며 이리저리 질척대다보면 일은 어찌저찌 진행되기 마련이다. 다만 문제가 터졌을 때 진짜 내 편이 드러나는 것처럼, 이슈가 있을 때에 파트너사가 진정한 우리 편이 되어줄 때가 상호 신뢰의 싹이 튼다. 정리하자면, 너무나도 뻔한 결론이지만 이 '진짜 내 편'이 삽시간에 되주는 좀 비범한 담당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만, 신뢰를 쌓기까지 걸리는 불통과 머리채의 시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가 파트너와 나의 흰 머리를 줄여주는 관건이라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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