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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 : 나의 늙은 강아지를 보내며

동물농장을 보면 오래 함께한 강아지를 보내는 모습이 자주 비친다. 나의 일상에 알게 모르게 깊이 박여진 존재를 보내는 마음은 누구나 쉽지 않겠지. 나는 과자를 먹으며 슬퍼했더랬다. 1년 전, 나의 친한 친구는 1년도 채 되지 않은 자신의 반려견을 갑작스런 사고로 잃었다. 친구는 엉엉 울며 내게 전화했고, 나는 강아지를 잃었다는 그 자체의 절망에 공감하기보다 친구의 아픔에 슬퍼했다. 반려견을 잃는 아픔을 알 리가 없었다. 나의 강아지는 열 셋임에도 팔팔하게 뛰어다니고, 간식도 잘 먹고, 장난도 살벌하게 잘 치던 아기였으니. 


지난 9월 24일. 13년을 함께한 나의 늙은 강아지 똘이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가장 깊은 아빠의 슬픔과 강아지를 많이 예뻐하지 못한 엄마의 후회, 그리고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나의 절망. 임종을 지킨 아빠의 말로, 눈을 뜬 채 세상을 떠난 똘이는 처음 우리집에 오던 그 모습과 같이 천사처럼 인형처럼 아름다웠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쇼크에 제 스스로도 당황해 10분 여를 아빠 품에서 이리저리 댕댕대다가, 어느 순간 품에 폭 안겨 아빠에게 잘 지내라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우연처럼 똘이는 예고없이 일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차라리 한 번 크게 절망하고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슬픔은 일상 속에 잔잔하게 묻어든다. 하필이면 못나고 힘들었던 기억이 아니라 행복하고 사랑스러웠던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 기억-나에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던 순간들-이 대부분이라 마음 속에 더 큰 생채기를 남길지도 모른다. 


나의 똘이는 어릴 적엔 먼지털이같은 보숭보숭한 브라운 컬러의 털이 돋보이는 아이였다. 가끔은 똘이가 아니라 '털이'라고 부를 정도로 먼지뭉치가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느낌이었으니. 

똘이는 악어 인형을 좋아했다. 아빠나 엄마가 똘이의 과한 반응(마구 짖는다던지, 할퀸다던지, 무는 척을 한다던지)에 쿠사리를 주면 제 덩치보다도 훨씬 큰 악어를 물고 양 옆으로 와구와구 흔들며 제 스트레스를 풀었다. 잘 때도 항상 악어 인형을 머리에 베거나 껴안고 잤다. 아가마냥 애착 인형이 있다는 건 참 신기할 따름이다. 

고구마나 사과를 좋아했다. 막 구운 고구마를 미지근히 식히고 으깨어 주면 밥그릇에서 코를 뺄 줄 몰랐다. 큰 덩이는 제 집 안쪽에 몰래 숨겨두어 엄마에게 종종 혼나기도 했다. 사과를 아삭아삭 먹는 소리도 내 귀엔 행복의 소리였으리라. 너튜브의 먹방 asmr은 이 살아있는 소리에 반의 반도 따라가질 못한다. 아빠가 상주 어디선가 가져온 당도 높은 사과를 주면 짧은 부리(?)와 조매난 입으로 초당 5회의 아삭거림으로 부리나케 간식타임을 끝마치곤, 또 달라고 소파 위의 아빠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빠의 행복이었다. 


가족이 밥을 먹을 땐 베란다나 소파 끝의 제 자리에 쫒겨나 세 사람의 식사를 빤히 쳐다보곤 했는데, 제 팔 위에 턱을 괴고 눈을 치켜뜨며 부름을 기다리는 똘이의 모습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귀여워서 이름을 부르면, 이리로 오라고는 안 했으니 어떡하지, 눈치를 보며 꼬리를 마구 흔든다. 가족의 행복이었다. 

은퇴 후 집에서 적적할 때 가끔 택시 일을 하며 용돈 벌이+서울 여행을 하는 감성적인 우리 아부지가 새벽 일을 하고 들어오는 피곤한 시간에는 유일하게 똘이만이 꼬리를 흔들며 제 집에서 뛰어나왔다. 그 어두운, 외로울 아빠의 시간에 똘이는 유일한 가족이자 안식이었다. 

가끔 산책을 나가면 똘이는 다른 강아지를 무서워했다. 어릴 적 다른 강아지와 어울리며 사회성을 기르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기본 성향이 개보다는 사람을 대중없이 좋아했다. 처음 보는 컴퓨터 수리기사 아저씨한테 배를 뒤집고 사랑한다며 있는없는 애교를 다 떨기도 하고, 처음 보는 같은 단지의 이웃들이 머리를 쓰다듬으면 괫씸하게도 따라가겠다며 방향을 이탈해 애를 먹은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의 강아지는 발랄했다. 




1년만에 강아지를 잃은 내 친구에게 가장 위로가 된 사람은 운동하던 피트니스의 pt트레이너였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반려동물을 잃고 절망에 빠졌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자, 친구의 절망을 조금이라도 덜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똘이를 잃고 친구에게 전화해 엉엉 울며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그저 어떡하냐는 비어진 말만 전했던 나의 그 때와 다르게, 그녀는 지금 마음이 미어지는 내게 <그래, 그 마음이 그렇지>라며 어른같은 공감을 전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위로가 된다. 


아버지는 똘이와 꼭 닮은 강아지를 찾아 13년의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을 주고 싶다고 했다. 60대의 아버지와 같이 만남과 이별에 아주 조금은 초연해진 진짜 어른은 그렇게 또 다시 사랑을 주는 데 참 용감하다. 상실과 이별을 받아들이는 데 많이 서툰 서른 하나는 또 다시 사랑스러운 존재를 만나고 잃는게 무서워 선뜻 <그러자!>라는 답을 던지지 못했다. 이별은 늘 익숙치 않고, 그리움의 그림자는 참으로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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