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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안의 자유

내 자유를 속박한 건 다름아닌 내 마음

30대 여자

30대 일상

30대의 삶.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는 그럴싸한 30대라는 포장지로 나를 편히 포장하려 애쓴 것 같다. 30대는 다 그렇겠지, 6년차 직장인은 다 그렇겠지, 내 연차에 대기업 대리급 다 비슷하겠지?


책이나 매거진에서 본 멋진 사람들은 자신의 환경이나 집단을 토대로 자신을 해석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특징과 삶에서 얻은 흑과 백을 서스럼없이 드러내고 그 앞에 당당하다. 이들은 오래된 관성으로부터 얻은 고유의 무언가보다는 일상에서 얻은 지혜를 기반으로 특유의 개성을 지녔다. 포장지에 얽매이지 않은 진정한 자유다. 


양 눈 옆이 가려진 채 일상을 더듬으며 살다 좁은 시야로 보이는 건 포장지의 삶에서 지나쳐야 하는 여러 미션들 뿐이다. 최종 보스판이 있겠지, 또 하나 지나치면 있겠지 하다 죽음 앞에서 마주치는 건  만렙을 위한 보스판이 없다는 허망한 사실일테다. 죽음 앞에 그렇게 죽고 못살던 포장지는 참 하릴없는 뱀 허물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작은 분리형 원룸 하나 보증금 정도는 낼 자산은 있는 지금 나는 다음 단계의 1억, 그 후엔 2억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나도 모르게 '다들 그렇게 살아' 혹은 '이 정도 나이대엔'의 눈가리개를 기꺼이 끼워썼다는 사실이 들었다. 자유롭게 속박한 자유. 그리고 자유로운 나로 살아가기를 잊어버렸던 나.


라캉이 말했다 한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그리고 김어준은 말했다. 너의 욕망의 주체가 되라고. 

퇴사 일자를 앞두고 길을 헤매는 남자친구에게 다른 이들을 보지 말고 네 자신의 마음부터 알아보라고 말한 내가 매우 부끄러워졌다. 타자가 욕망하는 타자가 되기 위해 포장지를 뒤집어쓰고 바등거리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인가. 나의 욕망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내 욕망의 주체가 되기 위해 다 내려두고 리셋을 누르기엔 자본주의 시스템의 맛을 톡톡히 알아버린 나기에 앞으로의 선택은 변혁은 아닐 수 밖에. 설익은 고치 껍데기를 벗어 나온 나비는 오래 날지 못한다고 했다. 쉽게 이야기하는 퇴사, 자퇴 등의 선로이탈을 통해 얻는 깨달음이 훨씬 드라마는 있겠다만 분명 그 이면엔 피가 송골송골 맺혀 있을거라고.(생각외로 선로를 벗어났을 땐 길바닥이 순탄치가 않았다. 여행도 취미도 연애도 자본주의는 돈이 있어야 한다고!)


내 분수 안에서, 지금의 껍데기 안에서 일단 나를 찾아보려 한다. 

그리고 그 껍데기는 나만의 개성과 패턴을 지닌 멋진 나비가 되면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가변의 것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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