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떠오르는 청춘의 순간이 있다고 한다. 늘 생각하고 고민했다. 청춘이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는 듣기만 해도 싱그러움으로 벅찬 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막막하고 서툴어 힘들던 시절일지도 모른다.
청춘이란 푸른 봄,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 그렇지만 정의와 다르게 늘 봄처럼 싱그럽고 따뜻하지만은 않다.
나는 이십 대 중반을 지나며 청춘이란 무엇인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붙들고 있다. 그래서일까, 언젠가 꼭 그 모호함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고민도 많이 했다.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시기에 대한 글을 담고 싶었기에.
‘겨우내 청춘.’ 앞뒤가 맞지 않는 단어가 아닌가? 겨우내는 겨울을, 청춘은 봄을 담고 있으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청춘이란 누군가에겐 겨울처럼 차갑고 길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여름처럼 뜨거울 수도 있다고.
계절처럼 변덕스럽고 다채로운 감정들을 겪는 시간들. 그렇기에 ‘겨우내 청춘’은 이 글을 시작하기에 딱 맞지 않은가?
어렸을 적, 나는 그리 밝지는 않았다. 또래와 어울리는 법을 몰랐고, 사람들의 반응에 쉽게 흔들렸다. 누군가가 나를 불편해하는 것 같으면, 그 사람이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일지라도 조용히 자리를 피해버렸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 그건 초등학생 시절의 나에겐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여름방학이 끝나야만 또래 친구들에게 한두 마디 말을 건넬 용기가 생겼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며 관심 없는 척했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건 나를 방어하기 위해 가면을 뒤집어쓴 것과도 같았다. 사실 나는 누구보다도 관심을, 친구를 간절히 바라지 않았나.
그 모난 마음은 결국 나에게도, 주변인에게도 독이 된 듯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고개를 들고 보니 곁에는 단 한 명의 친구만이 남아있었다. 가까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법을 깨닫기엔, 초등학생이란 너무 빠른 시기가 아니었나. 그 시절은 나에게 여전히 떠올리기 어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역시 시간은 흘러 변화를 가져왔고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바꿔가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법, 나의 모든 모습들을 보이지 않고도 관계를 이어가는 법을 서툴게나마 배워갔다. 그 과정에서 친구의 배신을 겪고, 그들을 떠나보내는 법, 손을 놓는 법도 알아갔다. 아프고 혼란스러운 순간들이었어도, 그 시절은 내게 분명히 청춘이었다. 사실 내 청춘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이팔청춘이라 하지 않던가. 그 시기는 불완전했기에 빛났고, 흔들렸기에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빛나는 순간들을 찾을 수 있다. 어설프고 서툴렀던 청춘의 기록은,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작지만 강렬한 등불이 되어 내게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