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평생을 기억해
나에게 청춘이라고 하면, 우정을 빼놓을 수 없다. 어릴 적부터 친구라는 존재는 내게 큰 의미였다. 가족이나 애인과는 다르게 친구에게만 의지할 수 있는 끈끈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청춘은 친구로 가득 찼다고 말한대도 과언이 아니다.
내게도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가 있었다. 흔히 ’넌 누구랑 제일 친해?’라는 질문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이.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님끼리 인연이 있었고, 그래서 태어남과 동시에 너무도 당연하게 곁에 있었던 친구. 내 옆자리에는 늘 네가 있었고, 내가 그리던 미래에도 네가 빠질 리 없었다. 우리는 성격이 달랐지만, 쌍둥이 자매 같았다. 늘 함께였고, 그 사실은 너무나 당연했다. 빈혈이 있다는 사실도, 좋아하는 아이돌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것까지 닮아있었다.
내 소극적인 초등학생 시절을 바꾼 건 바로 너, ‘수’였다.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올리기로 결심하고 첫 글을 쓸 때, 주인공은 당연히 너여야 했다.
'수야'라는 제목의 첫 글을 올리게 되었을 때 그게 전부 너였다. 사실은 모두 네 이야기였다. 사랑 이야기를 쓰는 척, 해본 적 없는 사랑을 이것저것 섞었지만 사실 그건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수에
대한 글이었다. 모난 성격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던 그 아이. 다가가는 방법을 몰라 머뭇거리는 내 손을 잡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내 밝은 모습을 알게 만들어준 장본인. 난 그 애를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수가 더 이상 내 곁에 있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내가 이 아끼는 마음을 마음껏 표출하지 못했음에 한참을 후회했다. 아니 실은 여전히 후회 중이다. 평생 그럴 것 같지만.
수는, 중학생 때 내 곁을 떠났다. 앞에서 늘 밝은 모습이었기에 어릴 적 그 소식의 충격은 여전히 생생하다. 드라마 속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는 거짓말하지 말라며 목놓아 우는 배우들의 모습을 본 적 있는가? 그 모습은 내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던 모습이었다. 힘들고 아픈데, 그런 말을 할 여유가 있을까? 가 이유였다. 그러나 막상 상황이 눈앞에 닥치니 소식을 알려주는 엄마의 말을 붙잡고 거짓말이라며 울부짖던 내 모습은 그제야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보였다. 후에 내가 엄마를 미워하더라도, 지금 상황은 다 거짓말이라고 깜짝 카메라였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난 드라마 시나리오 속 비련의 주인공이었나 보다. 현실을 마주하기에 그때의 난 너무나도 어렸고, 마주한 상황이 괴로워서 끝까지 도망쳤다. 더 이상 도망갈 벽이 없어서 난 또 이렇게 너를 써낸다.
이렇게라도 글을 써서 털어내지 않으면, 그 아이를 평생 끌어안고 살 것 같았다. 수가 그리울 때마다 일기를 써댔으며, 생각으로 너무 괴로울 땐 공책을 덮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어 머리가 아플 정도로 몇 시간을 눈물을 닦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유난이라는 이야기를 들을까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다.
그 애 이야기로 글을 쓴다면, 이 이야기는 단편으로 끝낼 수 없을 것이다. 끝이 나더라도, 결국엔 길어져 아마 두꺼운 공책 한 권을 빽빽하게 써 내려갈지도 모른다.
그 애는 내 자랑이고 꿈이었다. 중학교를 같이 졸업하고 싶었고, 고등학교를 같이 맞이하고 싶었다. 꽃다발을 주고받고, 생일을 매년 축하해주고 싶었다. 축하해주지 못한 마지막 생일이 평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힐 것만 같다.
평생 옆에 있을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고, 고역이던 대학 입시도 수가 있었다면 조금 더 현명하게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난 네 미래가 궁금했다. 입시 준비할 때는 어떤 표정일까, 만약 꿈이 있었다면 넌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내 꿈을 듣는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었을까. 직장을 다닌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끝도 없이 궁금한 모습들이 많은데, 볼 수가 없다는 게 나를 아프게 했다.
자존감이 낮았던 시기에는 수 대신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너와 내 운명이 바뀐 게 틀림없다는 생각만 하고 살았으니까.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너는 쓸데없는 생각 한다며 나를 타박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여전히 그 타박을 듣고 싶고 평생 그리워할 것 같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슬프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이 정도로 아픈 게 청춘이라면, 차라리 청춘 같은 건 내 눈에 밟히지 않았으면 했다.
그럼에도 네가 있던 내 청춘은 누구보다 아름답게 빛났다. 너를 빼고 내 청춘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여전히 네가 내 곁에 있는 듯한 착각 속에서 나는 오늘도 너를 기억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