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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 좋은 꿈 꿔.

by 안연

2015년. 내 인생이 정체되어 있을 것만 같던 그 해로부터,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너를 보내고, 마음 한켠에 꾹꾹 눌러 담아 시간을 흘려보낸 지도 10년이 되었다.

미안함과 죄책감을 뜨문뜨문 떠올리며 살아온 시간은 그렇게 속절없이 흘렀다.


내 시간은 그 상태로 평생을 멈춰 미래라는 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오면 안 되는 거라고 믿었다. 너 없는 세상은 존재해서는 안 됐고, 네가 없는 미래는 내가 꿈꾸던 미래가 아니었으니.

꿈같은 거 꿔서 뭐하니, 응원해 줄 너도 없는데. 하고 싶은 게 생각나도 곧바로 접어버렸다. 의미가 없었다. 곁에 없어도 서로를 의지했는데, 너 하나 없는 세상이 살아갈 이유 하나가 사라져 버린 듯 허탈했다.


유튜브로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고, 좋아하던 군것질을 해도 다 금방 싫증이 났다. 같이 좋아하던 것들이, 네가 웃던 모습들이,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눈앞을 가득 메웠다.

4월이 끔찍하게 싫었고, 다가오는 봄도 다 미웠다. 내가 사랑하는 벗에게 세상을 보여줬으면서, 동시에 내 전부를 빼앗아 돌려주지를 않는다. 그런데도 뭐가 좋다고 꽃잎을 휘날리며 사랑이 가득한 척을 하는 걸까. 뭐 좋은 계절이라고 다들 봄을 그렇게도 만끽할까. 행복하질 않아서, 세상이 못마땅했다.


나는 10년쯤 지나면, 너를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 웃으며 너를 추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아니더라고. 너를 기억하는 이들과 나는 그다지 가깝지 않았고, 가깝던 이들과도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나는 끝끝내 너를 놓지 못했다. 그건 아마도 너의 이야기를 마음 편히 꺼낼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고, 추억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거라는 말이 있더라. 그들의 의미가 그런 거라면, 나는 너를 평생 추억할 수 없다. 나는 혼자 너를 언제까지나 기억만 해야 한다.

그런데 우습게도 같이 찍은 사진, 네 목소리가 담긴 영상도 하나 없어 네 목소리조차 희미하다. 멍청하게 난 너를 추억도, 기억도 할 수가 없는 사람이 됐다.


나는 어느덧 자라고 솟아나 20대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지만, 너는 여전히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멈춰있다.

같은 나이였던 우리가 이제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다른 세상에 산다는 게 안타까웠다. 영원한 건 없다지만, 너와의 영원은 꿈꾸고 싶었다. 죽도록 그리워하면 돌아올까 싶지만, 아마 끝끝내 돌아오지 않겠지.

어쩌면, 이제는 너도 그걸 원하지 않겠지. 그래서 내가 힘들 때만 꿈에 가끔 나타나 날 다독여주고 떠나는 건지.


힘들어하는 나에게, 다들 똑같은 말을 했었다. 흥행했던 드라마에서도 나왔던 말. 살면 살아진다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단다. 나는 그 말도 위로도 전부 다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그래서 괜찮은 척했다. 울지도 않고 되려 씩씩한 척했다. 그리고 어린 나는, 웃는 척 하릴없이 무너져 내렸다. 밖에선 티 내지 않고 혼자 숨죽여 사는 일상은 몇 달이고 반복됐다.


그러던 와중에 평소와 같이 엄지손가락으로 누른 네 SNS 프로필에는, 모르는 남녀의 결혼사진이 걸려 있었다. 떠나보낸 이의 자리에는 새로운 이가 자리했다. 누군가가 멀리 떠난 세상 속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행복이 시작됐다.

그제야 체감할 수 있었다. 더는 붙잡지도 말아야 하고 이제는 놓아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이 담긴 결혼사진을 멍하니 한참을 쳐다봤다.


그래. 나는 이제 더 이상 너를 그릴 수도, 만질 수도, 함께 기뻐하거나 아파할 수가 없다. 보고 싶은 네 모습이 참 많았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해 꿈을 찾아가는 네가 보고 싶었고, 20살의 네 모습이 궁금했다. 커가면서 진로 고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모습까지도 모두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모습으로 활짝 핀 네 얼굴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모습은 내 상상으로 끝나야만 한다. 눈앞의 너를 그릴 수는 없어도, 가끔 생각하면서 기록할 수는 있다. 너를 함께 추억할 사람이 없어도 괜찮다. 나는 네가 보고 싶을 때마다 글을 쓸 거야. 기록하며 너를 기억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이제야 너를 마음속에 제대로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긴 시간 동안 내 아픔을 들어주고, 괴로워하는 나를 꿈속에서 어루만져줘서 견디고 살았다고. 끝까지 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10대의 나, 그리고 20대의 내가 너를 그리워하며 찡글 댈 때마다 함께해 줘서 고마워. 같이 한 시간은 짧았더라도 아마 나는 너를 평생 기록할 거야.


잘 자. 좋은 꿈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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