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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플린 Jun 19. 2022

펀더멘탈에 집중해야 할 시기

Fundamentals, revisited

Snowpiercer (2013, Bong Joon-ho)

자산 가격의 하락 때문인지 날이 선 글이 여러 매체에 자주 노출됩니다. 특히, 자신의 스타일과 다른 투자 의견에 대한 비아냥과 조롱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오가는 글의 특성상 어쩔 수 없습니다만, 이에 대한 몇 가지의 생각은 공유해 보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1.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멍청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에 비해 똑똑하지 않습니다.

(”당신”에 괄호를 친 것은 특정인을 저격하는 것이 아닌 Literally 제3자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저를 포함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자신의 투자 성향과 다른 투자자들이 멍청해서 그런 의견을 내는 것일까요? 투자자의 실력은 성과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세상의 많은 일은 정량적인 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실력을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투자의 세계에서는 투자 수익이 곧 실력입니다.


투자 수익을 반복적으로 내어 온 사람의 의견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합니다. 특정인, 특히 특정 “유명” 인과 의견이 다르다는 것은 비판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이는 “비난”이며, “권위에 의한 편향”입니다. 투자에서 편향이 발생하면 수익률의 저하로 이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2. 초과이익은 시장의 주요 컨센서스와 방향을 달리할 때 종종 발생합니다.


Covid-19 시점에서 모든 사람이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 때의 주식 매수,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더블딥 상황에서 모두가 끝났다던 시절의 주식 매수, 인구 감소가 예상된다며 부동산이 폭락할 것이라던 시점의 지방 부동산 매수, “부동산은 끝났다”며 자조하던 시기의 서울 및 수도권 부동산 매수, 현대차의 중국 점유율 급락과 노조로 인해 재기가 불가능할 것이라며 가격이 급락하던 시기의 주식 매수, 삼성전자가 갤럭시 노트7 연쇄 화재로 인해 디바이스 산업 말아먹을 것이라며 가격이 급락하던 시기의 주식 매수.


이러한 시점에 매수 의견을 낸 사람은 모두 시장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소중한 돈을 태워 먹으려는 사기꾼에 가깝다는 비난도 종종 들려왔던 기억입니다. 특히 감정의 영역인 부동산에서는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며 말리겠다”는 사람도 종종 보였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이 시점의 매수가 "탁월하다"고 말합니다.


위기는 위기가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위기를 기회로도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실력입니다. 퀀텀 점프는 변화가 있을 때 발생합니다. 위기는 기존과는 움직임이 다른 것을 말하며, 그 자체가 변화의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자산 투자 시장에서는 스윙을 통한 짧은 방망이로 돈을 버는 스타일도 있고,

철저한 기업 분석을 통해 향후 성장세를 예상하여 돈을 버는 스타일도 있으며,

좋은 기업의 가격이 한없이 낮아질 때 매수하여 가치를 회복할 때 돈을 버는 스타일도 있습니다.


스타일 별로 시장의 색깔에 따라 수익성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하나의 스타일만이 정답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투자에 정답이 없다는 것은 인생에 정답지가 없다는 것과 같은 수준의 명제입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 수익률에 대한 눈높이를 조절해야 합니다.


한동안 생각이 많았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자산군에 자본을 배치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지난 2년간의 수익률이 너무나도 호화로웠다는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저의 글을 읽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퀀트 투자로 주식을 시작했습니다. 퀀트는 기본적으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고, 당연히 시장에 대한 기대수익률도 어느 정도는 가정하고 진입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퀀트로 접근하는 합리적인 자산 배분 전략의 시장 수익률은 (스타일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10% 내외입니다. 사실 10%도 상당히 높은 MDD를 허용한 다소 공격적인 수치입니다.


지난 Covid-19 시기의 투자 수익률은 어땠었나요? 인덱스가 100%씩 오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개별주 아무거나 사도 200~300% 오르던 시절이었습니다. 부동산도 50~100% 올랐습니다. 이러한 시장 흐름을 당연하게 느끼고 있지만, 긴 호흡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시절이었습니다.


폭락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제는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기대수익률을 역사적 평균치 정도로 조절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지난 2년 정도의 시장 기대수익률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이제는 눈높이를 바꿨습니다.



2019년까지의 자산 시장을 회고해 봅니다. 국내 주식시장은 한국의 경제 및 정치적 위치(좌파/우파 정치 얘기 아니며, 국가 간 공조 관계에서의 대한민국을 말하는 것입니다.)에서 변동성이 높았습니다.


대형주는 좀 먹을만한 수준까지 익으면 글로벌 사업 한두 개가 구멍 나며 가격이 내려오길 반복했고, 연 수익률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괜찮은 수익률을 내려면 급격히 성장하는 기업을 사야 했고, 주로 대기업과 거래 관계에 있는 중소형주 또는 규제산업이 이에 해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특정 벤더의 종속성으로 인해 성장이 제약되거나, 과잉 규제로 장기간의 성장 저하를 맞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난이도가 높은 투자였지요.


물론 메사끼가 있는 분들은 시클리컬에 돈을 태우며 적잖은 돈을 쓸어가기도 하셨습니다. 이들은 전설처럼 화자 되었고, 이를 따라 하는 많은 사람들은 피를 흘리고 시장에서 사라지기를 반복하기도 하셨습니다. 바이오 기업은 언랭(novice)과 다이아(expert)만 참여하는 냉탕과 온탕 같은 시장이었고, 늘 희비가 교차하던 시장이었습니다.


미국 시장은 장기 투자 관점에서는 대부분의 헤지펀드보다 수익률이 높은 S&P 500 ETF를 많이 사셨고, NASDAQ 100은 변동성이 큰 만큼 장기적으로 S&P 500보다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코인 투자가 활발해지기 전엔 NASDAQ 100 정도의 변동성만 보이더라도 '강심장'이 투자하는 곳으로 불렸습니다.


미국은 ETF 구성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배당 잘 주는 ETF에 크게 태운 분들도 계셨습니다. 개별주에 있어서는 미국은 기업 IR이 잘 되어 있고 실적과 주가의 연동성도 높기 때문에 재무제표와 IR 자료 분석을 통해 기대하는 바를 달성할 확률이 높은 투명한 시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투명한 만큼 실적을 자주 체크하지 않으면 주가 급락도 종종 발생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부동산은 그저 물가 상승률을 소폭 넘어서는 수익률을 보여왔을 뿐이었습니다. 갭으로 집을 사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었고, 전세로 거주하는 것이 스마트한 자본 배치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전세가격에 변화가 크면 정치인들은 이를 해결하려 했고, 매매가격에 대해서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신경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천천히 올랐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기 위해서는 재개발 또는 재건축 사업을 해야 했는데, 상당히 많은 공부가 필요했고, 그렇게 공부하고 진입하더라도 엄청난 시간을 저당 잡혀야만 성과를 낼 수 있는 시장이었기에 쉽사리 접근할 수는 없는 시장이었습니다.


Covid-19 이전에는 어떠한 자산군이라 하더라도 지난 2년과 같은 수익률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난 2년간의 수익률이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눈높이를 평상시와 같은 수준으로 맞춰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Fundamentals, revisited.


저는 주식보다 부동산이 더 익숙합니다. 부동산을 예로 들면, Covid-19 시기엔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부동산은 유동성 공급자가 없기 때문에 거래의 성사 가능 여부가 중요합니다. (잦은 거래는 높은 가격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부동산을 사고팔다 보면 거래 성사가 잘 되는 매물의 특징이 보입니다. 일단 초등학교가 가까워야 합니다. 그리고 바깥에서 집을 봤을 때 든든하고 아늑한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내 아이가 이곳에서 마음 놓고 놀 수 있을까”의 관점으로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그 외에는 녹물이 나오는 연식인지, 안목치수 적용 연식인지, 용적률과 건폐율이 얼마이고 층고가 어떤지 등이 중요합니다만, 앞의 요소에 비해서는 현저히 매수 성사 관여도가 낮습니다. 물론 지하철 등 대중교통도 고려해야 합니다만, “거래 성사”의 관점에서는 지하철과 같은 요소는 절대적인 가격 결정 요소이기에 거래 성사를 결정짓는 주요 요인까지 되지는 않습니다. (쉽게 말해서 수요자의 자금력이 다른 시장입니다.)


하지만 Covid-19 때에는 이러한 펀더멘탈이 다 무시된 채 전부 다 거래가 많이 됐고, 가격도 펀더멘탈과 무관하게 올랐습니다. 유동성을 흡수하는 장치로 부동산 시장이 이용되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코인 또한 마찬가지로, 별별 이상한 것들까지 다 올랐습니다. 유동성을 흡수하는 창구 중 하나가 코인 시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주식시장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분이 많이 계실 겁니다. 숫자로는 납득할 수 없는 가격임에도 내러티브가 훌륭해서 상당히 높은 상승률을 보인 종목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종목들은 지금 Covid-19 이전보다 낮은 가격으로 내려오기도 했고, Covid-19 시기에 상장한 기업은 하염없이 신저가를 낮춰가고 있습니다.



지나고 나니 이러한 이상 상승 현상은 유동성의 힘이었다고 느낍니다. 유동성 회수기에 접어든 지금, 다시 펀더멘탈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고 보입니다. 기본기는 늘 중요하지만 지난 2년간은 기본기와 무관하게 잘 나갔던 시장이었음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과속하며 달리던 기차에 브레이크를 잡고, 이제는 갈 사람만 데려가는 시장으로 재편되는 과정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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