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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없는 자 Oct 17. 2022

휴식 미디어로서의 게임

여섯 번째 게임, 매직 서바이벌

소재 : 아트 측면에서 조금 호불호 갈릴 수 있음.

접근성 : PC, ios, 안드로이드 전부 가능. 규칙도 단순하므로 접근성 좋음

시간 소비 및 중단 가능성 : 하고 싶은 만큼 

체감 난이도와 벌칙 : 난이도 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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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게임을 가지고 고민했다. 뱀파이어 서바이벌과 매직 서바이벌이다. 고민하다가 선택한 게임은 매직 서바이벌이다. 작년 말 스팀에서 얼리 액세스를 출시한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끈 작품은 뱀파이어 서바이벌이지만, 엄연히 매직 서바이벌이 먼저 출시되었고 뱀파이어 서바이벌의 제작자 또한 영향력을 인정한 바 있다. 무엇보다 모바일 버전으로 나온 게임은 둘 중 매직 서바이벌밖에 없기 때문에 매직 서바이벌을 소개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대신 뱀파이어 서바이벌은 본 연재의 후반부에 따로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매직 서바이벌 게임 스크린샷


게임은 단순했다. 적들이 적은 공간이나 아이템이 있는 공간을 찾아서 화면을 터치하면 캐릭터가 움직였다. 적들에 대한 공격은 자동으로 진행된다. 적들을 죽이거나 필드에 무작위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마나 구슬을 먹으면 게임 화면 위에 보이는 마나 바가 채워지면서 레벨이 올라간다.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아이템 상자는 레벨을 더 쉽게 올릴 수 있게 도와주거나 플레이어가 가진 기술의 능력치를 올리는 등의 특성을 갖는다. 레벨이 올라가면 3가지의 특성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으며 기존 특성을 강화할 것인지, 내지는 새로운 특성을 배울 것인지를 정할 수 있다. 게임이 끝나면 버틴 시간만큼 점수로 환산되어 경험치가 올라가고, 일정 수준 이상 경험치가 차오르면 새로운 직업과 맵 등 게임 내 다른 요소가 해금되는 식이다. 플레이어는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여 캐릭터를 움직이기만 해도 자동으로 공격이 되니, 굳이 깊게 생각하거나 신중한 컨트롤을 할 필요가 없다. 플레이어가 신경을 쓸 부분은 어떻게 스킬을 찍거나 조합하여 더 빠르게 몬스터들을 쓸어 담을지, 어떤 아이템을 먹거나 먹지 않을지 정도다. 전투는 자동으로 진행되는 거나 다름없으니 성장만이 핵심적인 게임 플레이 요소다. 플레이를 하는 동안 매우 편리한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을 계속 진행하다 보니 조금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30분을 넘게 버텨도 나오는 적들의 수만 많아질 뿐, 게임 내적으로 달라지는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무언가를 놓치거나 몰라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숨겨진 공간이나 보스 같은 게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여러 번 죽어나가면서도 계속 도전했다. 일반적인 게임이라면 보스든 뭐든 해서 게임을 클리어한다는 개념이 있으니 이 게임도 당연히 있겠거니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착각이라는 걸 알아채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중에 게임을 끝내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이 게임은 처음부터 목표란 존재하지 않는 게임이었다. 목표 시간으로 정해진 30분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게임은 전부 무한모드로 진행된다. 오래 버티는 게 게임의 전부였다. 그저 최대한 버티다가 끝내고 싶을 때 게임을 끝내든, 아니면 검은색으로 칠해진 무수한 괴물의 파도에 집어삼켜져 게임 오버를 당하든 둘 중 하나였다. 특성을 어떻게 조합할지, 어느 방향으로 움직 일지에 따라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기존보다 늘어나긴 하지만, 결국에는 게임 오버를 당하는 순간이 온다. 그 어떤 게임의 고수라도 게임의 끝을 볼 수는 없다. 게임을 클리어한다는 성취감 같은 것도 없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 게임은 '게임'보다는 인생과도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게임의 망망대해 속에서 나는 그저 걸어갈 뿐이다. 정해진 길은 아무것도 없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떻게 가야 할까. 가는 길마다 난관은 존재한다.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만 큰 의미는 없다. 그렇다면 게임에서 움직이는 길 하나하나를 긍정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정해진 루트가 없는 인생처럼 말이다.


한편으로는 캐주얼 게임에 대해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었다. 학술적으로 규정하는 캐주얼 게임이나 서론에 내세웠던 기준 말고,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이 생각하는 캐주얼 게임이란 어떤 이미지일까. 캐주얼 게임에도 장르가 여럿 있고 각자 가지고 있는 이미지도 다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게임, 스트레스 풀기 좋은 게임. 관성적으로 하는 게임 등등. 요약하자면 '뇌'나 '손'이 바쁘지 않은 게임이어야 한다는 거다.


캐주얼 게임 옹호자들의 논리는 이렇다. 현실의 삶을 충실히 사는 사람이라면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하거나, 학교에서 공부를 하느라 거의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다. 그렇다 보니 취미생활에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없거나 매우 한정적이다. 그러니 게임도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거나, 고도의 컨트롤을 요구하는 게임들은 플레이하기 어렵다. 현실에서 스트레스받느라 바쁜데, 게임에서조차 에너지를 쓰고 스트레스를 받을 여지는 없다는 뜻이다. 서론에서 언급한 캐릭터 게임, 방치형 게임, 리니지-라이크 같은 게임들은 '뇌'나 '손'을 쓸 여유가 없는 현대인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만들어진 전형적인 사례다.    


개인적으로 스트레스 해소, 심심풀이용 게임이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트레스 해소용 게임들의 대다수는 플레이어의 숙련도를 거의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논리적 사고를 요구하는 퍼즐이나 전략 게임이든, 고도의 컨트롤을 요구하는 액션, FPS든. 좋은 게임들은 단계별로 플레이어를 가르치며 점진적으로 숙련도를 올린다. 숙련도가 충분하지 않으면 게임을 진행할 수 없다. 그만큼 난이도가 있는 게임들이 대부분이다. 어려운 게임이 항상 좋은 게임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게임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난이도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난이도가 있어야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주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생각을 하든, 컨트롤 실력을 늘리든, 자신의 실수를 복기하든, 게임이 요구하는 숙련도를 충족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난이도는 게임의 깊이와도 직결될 만큼 중요한 요소다. 괜히 게임에서 난이도 곡선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니다.


출처는 중년게이머 김실장 유튜브 채널. 누구나 게임에 수많은 시간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진에서 언급하듯 모바일 게임조차 시간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매직 서바이벌은 ‘좋은 게임’이랑은 거리가 먼 게임일지도 모른다. 점진적으로 학습을 할만한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게임에 깊이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상업적 이유에서든, 스트레스 해소용 게임들이 나름대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한 현대인들도 게임을 하고 싶고, 취미생활을 누리고 싶다. 게임이라는 매체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이자 휴식 미디어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스트레스 해소용 게임의 필요성은 자명하다. 그들도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만 있다면 작품성 있는 게임들에 도전할 만한 여유와 에너지를 갖출 수 있다. 현실적 여건이 그렇지 못하기에 캐주얼 게임들을 찾는 것인데, 그런 사람들을 탓하거나 비판을 해서는 안 된다. 소설도 순문학과 대중문학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영화도 예술영화와 상업영화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 게임 역시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게임 플레이의 깊이와 캐주얼 성을 동시에 갖춘 게임이라면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류의 게임들은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다. 게임의 디자인 상 생각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 플레이의 깊이를 '의도적으로' 낮춘 대신, 언제 어디서나 부담 없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도 나름의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진지하게 에너지를 다 쏟아가면서 하는 게임만이 게임인 것은 분명 아니다. 특히 캐주얼 게임이라면 더욱 그렇다. 캐주얼 게임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짧은 휴식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여가 활동으로서 캐주얼 게임들을 찾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서바이벌'이라는 제목과는 별개로 매직 서바이벌은 좋은 휴식처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게다가 한국 게임계를 망친 주범으로 평가받는 가챠 요소도 거의 없으니(과금은 있다), 부담 없이 플레이하다가 게임을 끄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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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들에게 추천

게임을 플레이할 시간이 많지 않으신 분

쉽고 간편한 게임을 원하시는 분

생각하면서 게임하는 게 싫으신 분


이런 분들에게 비추천

도전적인 게임을 원하시는 분

게임은 스스로 생각하면서 난관을 극복해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참고자료

https://www.youtube.com/watch?v=zfH4Lh4gwLg&t=303s
게임 난이도 곡선이란?

칙센트미하이의 플로우(몰입) 이론에 따라 점진적으로 게임의 난이도를 상승시키는 개념을 뜻한다. 먼저 게임 난이도 곡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개념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몰입이란 자아에게 주어지는 도전과 이를 극복하려는 자아의 능력이 적절한 균형을 이룰 경우 발생하는 신체적 현상을 개념화한 것이다. 도전의 난이도가 너무 낮을 경우 자아는 몰입 상태에서 벗어나 지루해지며, 반대로 과하게 어려운 난이도에서는 불안감에 빠진다. 도전과 능력의 균형점에서 인간이 ‘몰입’에 성공하게 된다는 게 몰입의 개념이다. 아래 그림을 보자. A1에서 시작한 플레이는 플레이어의 기술 및 숙련도가 상승하면서 A2로 이동하며 지루해지고 쉬워진다.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전의 난이도가 올라가면 A3으로 이동하며 어렵고 불안한 단계로 변한다. 플레이어가 A4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각각 플레이어의 숙련도 재상승 혹은 난이도 조정이 필요하다. 플레이어가 A4로 이동하면 처음부터 이 과정을 반복한다. A1에서 A4로 이어지는 과정이 바로 사람이 몰입하는 과정이다.

전통적인 게임 디자인에서 난이도 곡선은 기본적으로 칙센트미하이의 플로우 이론을 따르면서도 조금 변형된 구조다. 사진을 보면 점진적으로 난이도를 올려서 어렵게 만드는 구조이지만, 하나의 스테이지에서 마지막에 보스 전을 도입하듯이 특정 구간에서 허들을 줘서 플레이어의 학습을 유도하는 식이다. 저 날카롭게 솟아있는 부분을 넣는 이유는 다음에 더 어려운 난관을 설치하기 전에 플레이어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추가로 어려운 도전을 넘겼다는 극적인 성취감을 주기 위해서다. 보스전을 클리어하고 2 스테이지에 돌입하면 게임이 조금 더 쉬워지듯이 다음 솟아있는 부분까지는 뾰족하게 솟은 부분보다는 난이도가 낮지만 게임의 난이도를 포괄적으로 바라보았을 때는 난이도가 점진적으로 올라가는 구조다. 이게 대다수의 싱글 플레이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게임 난이도 곡선이다.
칙센트미하이의 플로우


출처는 Game Maker's Toolkit. 게임 난이도 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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