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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에날린 Jan 20. 2020

독가스에서 시작된 항암제 연구

흔히들 전쟁은 과학기술을 발전시킨다고 하지요. 전자레인지, 레이더, 소나 등 인류에게 필수적인 과학기술이 전쟁통에 개발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항암제 또한 독가스라는 전쟁의 비극이 낳은 유산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독가스는 1차 대전 1915년 1차 이프르 전투에서 처음 사용되어 악명을 떨쳤는데요. 처음으로 인명 살상을 목적으로 사용된 가스는 염소(Cl2) 가스입니다. 염소 가스 이후에도 다양한 독가스들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중 겨자 가스(mustard gas)는 일반인들에게도 많이들 알려져 있습니다. 겨자 가스는 1917년 2차 이프르 전투에서 영국군을 상대로 최초로 사용되었고, 맡으면 코를 찌르는 겨자 냄새가 나는 듯하다가 곧이어 피부에 물집이 잡히고 눈이 멀다가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가스입니다. 


이 가스가 유명해진 이유는 바로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개발한 것이기 때문인데요. 하버는 질소와 수소로 암모니아를 만드는 반응을 통해 비료를 합성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발견해서 노벨화학상을 받죠. 당시 비료는 분뇨나 동물의 뼈 따위로 만들어 쓰거나 휴경을 통해 토질을 높이는 법밖에 없었는데 공기로부터 만들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자 엄청난 농업 생산력의 증가를 불러왔습니다.


동시에 하버는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을 외치며 조국 독일을 위해 독가스 개발에 매진하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아내 역시 화학자였는데, 비윤리적인 무기는 개발하지 말라며 아내가 하버의 실험을 만류하자 하버는 "조국을 위해 기관총을 개발하는 거나 독가스를 개발하는 거나 뭐가 다르냐"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안타깝게도 아내는 남편의 뜻을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비관하여 권총으로 자살합니다. 웃긴 건 이 양반이 유대인 혈통이라, 전후에도 학계에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나치 집권 후 박해받고 이스라엘로 가던 도중 심장마비로 최후를 맞는다는 것이죠.

  

하버와 보슈가 개발한 암모니아 합성법. 반응식으로 보면 매우 단순한 반응이지만 최적의 반응 조건과 촉매를 찾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각설하고, 이 독가스의 화학 구조식을 보면 불안정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체로 들어가면 DNA에 딱 달라붙어서 화학구조를 변형시키죠. DNA는 세포분열에 꼭 필요한 설계도인데 DNA가 고장이 나면 제일 먼저 몸의 세포분열에 이상이 생깁니다. 몸에서 머리카락의 모낭세포와 골수의 골수세포가 세포분열이 늘 활발한데요. 골수세포는 몸의 피 안에 들어있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같은 각종 혈구를 생산합니다. 이 혈구들은 생각보다 수명이 짧습니다. 제일 긴 적혈구가 3개월 정도고 백혈구가 열흘이 조금 넘는 정도죠. 따라서 골수세포가 끊임없는 분열을 통해 혈구를 계속 생산해야 우리 몸이 제대로 돌아갑니다. 이 골수세포에 변형이 생겨 혈구가 생성되지 못하거나 요상한 형태로 만들어져서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병을 백혈병이라고 합니다.


1차 대전 중 의사들은 겨자 가스 노출 생존자들을 치료하다 특이한 점을 발견합니다. "생존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수혈을 요할 정도로 빈혈이 심했으며 감염에 매우 취약했다"고 전합니다. 골수세포가 억압되어 적혈구를 만들지 못하여 빈혈이 되고, 백혈구를 만들지 못해 감염에 취약하게 된 것이죠. 어쨌든 겨자 가스는 1차 대전이 끝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다가 2차 대전에 접어들어 다시 빛을(?) 봅니다. 이번은 독일이 아닌 연합군 편이었죠. 아래 글을 봅시다.


[ 1943년 12월 3일, 독일 공군은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의 바리(Bari) 항을 공습합니다. 이탈리아 전선에 대치 중이던 연합군의 주요 보급로를 차단할 요량이었지요. 공습도 꽤나 성공적이어서 항구에 정박했던 많은 수송선들과 항만 시설이 심각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여기까지는 일상적인 공습 장면입니다.


공습을 맞은 바리 항의 모습


하지만 침몰한 수송선 중에는 비밀리에 겨자 가스(HN2라고 불렸습니다)를 선적한 미국 배가 있었는데 폭발하면서 ‘비밀 군수물자’ 100톤이 바다로 그냥 유출됩니다. 배가 피격되면 선원들은 바다로 뛰어들기 마련인데, 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HN2에 흠뻑 젖어버립니다. 그리고 이들을 구조한 사람도, 수송해준 사람도, 병원에서 이들을 돌보고 치료해주었던 의료진도,… 물에 빠진 선원들을 만진 모든 사람은 HN2에 접촉하여 자신의 몸속으로 흡수합니다. 또한, 해상에 떠다니던 HN2가 불길을 만나 기화되어 독가스가 만들어져 민가를 덮쳐 민간인 1,000 명도 피습당합니다.


현장의 군의관은 환자들에게 나타난, 이해할 수 없는 골수 기능 저하를 상부에 보고했지만 수뇌부는 알고도 모른 척합니다. HN2가 묻더라도 잘 씻기만 하면 2차 중독을 막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군당국은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그 이유는 HN2의 존재 자체가 비밀이고, 더구나 이를 전선으로 수송하다가 피격을 당했다고 밝히면 독일이 기다렸다는 듯 가스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바리 항의 대참사’는 독일 공군의 폭격에 이어 질소 겨자의 누출과 은폐 때문에 생긴 피해를 모두 일컫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군의 HN2 부서는 해체됩니다. 하지만 부서장을 맡았던 병리학자 로즈는 부유한 사업가인 슬로언과 케터링의 지원을 받아 비밀 무기를 항암제로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흩어졌던 부대원들을 다시 모아 연구소를 세웠고 나중에는 암 치료 전문병원으로 탈바꿈합니다. 이 병원이 뉴욕에 있는 유명한 슬로안-케터링 기념 암센터입니다. ]


당시에는 암에 걸리면 별다른 치료법이 없던 시대였습니다. 암이 왜 생기는지, 재발 또는 전이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는지, 암세포를 어떻게 죽이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생겨난 종양을 잘라내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유방암 같은 경우는 외과의사들끼리 환자가 죽지만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많이 절제하는 것이 일종의 스포츠처럼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유방암 환자가 오면 재발률을 낮춘답시고 유방은 물론이고 대흉근, 소흉근 및 쇄골의 림프절까지 전부 뜯어내서 팔도 못 움직이도록 만들었으며 의사들은 그게 진심으로 환자를 위하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냥 통째로 다 들어내는 당시의 유방 절제술입니다. 무식해 보이지만 당대에는 저게 최신 트렌드였습니다. 지금은 훨씬 적은 부분만 절제합니다.


백혈병 같은 혈액암은 덩어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 수술적 제거가 가능할 리가 없겠죠. 백혈병 환자의 피를 뽑아 현미경으로 보면 불완전한 혈구가 무지막지하게 늘어나다가 죽어버리곤 했는데 의사들은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백혈병은 한번 걸리면 곧 죽어야 하는 그런 악독한 병이었습니다. 그러나 독가스가 혈구를 줄인다는 결과를 우연히 알게 되었고, 거기서 시작된 연구로부터 백혈병을 완치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혈구가 과다하게 늘어나서 생긴 병이 백혈병이라면, 혈구 생성을 억제하는 겨자 가스를 쓴다면 백혈병을 완치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역으로 생각한 것이죠.


지금도 백혈병은 그 발상을 바탕으로 개발된 치료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법으로 치료합니다. 고용량의 세포독성 항암제를 맞아서 암성 골수세포를 최대한 죽인 다음 (물론 이때 정상세포도 같이 죽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검사를 통해 나쁜 세포가 더 이상 보이지 않으면 골수이식을 받거나 유지요법으로 낮은 농도의 항암제를 2~3년간 복용하는 것이죠. 요즘은 암세포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치료효과가 좋을지 나쁠지를 예측할 수 있으며, 개인별로 맞춤화된 약물도 잘 나와 있기 때문에 소아백혈병의 경우 5년 생존율이 90%로 "살리지 못하면 미안한 정도의 암"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튼 독가스를 기반으로 개발된 항암제의 놀라운 결과를 시작으로, 종양내과 의사들이 언론을 잘 활용했습니다. 백혈병에 걸린 지미라는 소년을 <Truth or Consequences>라는 매우 유명한 토크쇼에 초청해, "병이 나아서 얼른 야구 경기를 보러 가고 싶어요..."라고 울먹이는 자리를 마련해 미국인들의 마음을 자극했죠. 이 광고가 큰 반향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해, 여론을 등에 업고 병원들이 엄청난 자금을 배정받아 암 연구의 중흥기가 일어났습니다. 1955년 이래 25년 동안 50만 종 이상의 합성물질과 천연물질에서 항암 후보물질을 탐색했고, 그중 단 30종만이 사람한테 쓸만하다는 결론을 얻습니다. 

  

토크쇼에 출연해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린 지미. 이때 모금된 자금을 바탕으로 개발된 항암제를 맞은 후, 백혈병 완치 판정을 받고 실제로 야구를 직관하러 갑니다.


지금의 항암치료는 한 가지의 항암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서너 가지를 조합해 투여하는데, 대부분은 이때 지원된 자금으로 어떤 암에서 어떤 조합이 가장 효능을 보일지 하나하나 전부 시행착오를 거친 후 환자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얻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나은 결과를 보인 조합을 쓰고 있습니다. 폴피리녹스니, ABVD니 하는 어려운 약자들이 이런 항암제의 조합을 뜻합니다.


요즘은 2세대, 3세대 항암제까지 나오고 건강검진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암 생존율이 매우 비약적으로 발전했죠. 2차 대전 중에 다양한 신기술이 개발되었는데, 최초의 항암제 역시 양차 대전의 유산이란 것은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진 않은 것 같아 글로 써 봅니다. 


cf) 프랑스의 화학자 그리냐르(Victor Grignard)는 1912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위대한 과학자인데, 이 자 역시 하버와 똑같이 포스젠이라는 독가스를 만들어서 프랑스군에 쥐어줬습니다. 사실 조국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나쁘게 사용한 것은 하버와 똑같은데, 하버는 대중적으로도 유명하고 욕도 많이 먹는 반면 그리냐르를 욕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냐르가 대중적인 지명도는 좀 떨어지지만 화학계에서는 하버 이상으로 유명한 업적을 남긴 사람인데도요. 이런 걸 보면 역시 이겨도 ㅄ, 져도 ㅄ라면 이긴 ㅄ이 되라는 말은 진리인가 봅니다.


주: 펜벤다졸은 항암제가 아닙니다.


출처: 가운데에 [ ] 부분은 https://www.sciencetimes.co.kr/?news=독가스에서-시작된-항암제-연구 인용

싯다르타 무케르지,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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