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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에날린 Jan 28. 2020

인류를 살린 오진.

루즈벨트가 소아마비로 휠체어 신세를 진 게 아니다?!

진주만 공격 다음 날  루즈벨트는 미 의회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을 합니다.

2차대전을 미국의 승리로 이끈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 대통령(FDR)은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고, 이 사실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 공식 석상에서는 늘 장애를 숨기려 노력했습니다. 유명한 대일본 선전포고 연설(Day of infamy) 때도 부관들의 도움으로 힘겹게 단상으로 일어나서 비장한 모습으로 연설을 진행했었죠. 다만 태어났을 때부터 다리를 쓰지 못했던 건 아니고 소아마비의 후유증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아마 이 글을 보는 대부분도 그렇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후대 사람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에게 일어났던 마비의 원인이 소아마비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FDR이 앓았던 병이 소아마비였다는 기존 진단이 지녔던 가장 큰 문제는, 소아마비는 그렇게 늦은 나이에 오는 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FDR이 하반신 마비를 가지게 된 것은 39세 때인 1921년 8월에 메인(Maine) 주에 있던 자택에서 휴양하던 도중이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FDR의 하반신 마비를 유발한 원인으로 길랑-바레 증후군(Guillain-Barre syndrome)이 유력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 병은 발부터 마비가 시작돼서 몸의 위쪽으로 마비가 점점 진행되어 움직이지 못하다 점점 호전되는 희귀한 병인데, 감기나 설사 또는 예방접종 후에 생기는 항체가 드물게 자가면역 현상을 일으켜 몸의 신경 말이집(수초)을 공격함으로써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자세한 메커니즘은 잘 모릅니다.



길랑-바레 증후군은 혈액의 자가항체가 신경계의 말이집을 공격해 신경을 손상시킴으로써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FDR이 보였던 증상을 찾아보면 발열, 호흡마비, 발부터 올라오는 상행성 마비(ascending paralysis), 안면 마비, 배변 및 방광 이상 (bowel and bladder dysfunction), 감각마비가 있으며 이 증상들은 위쪽(머리쪽)에서부터 아래로 회복되는 양상을 보였다고 합니다. 병의 급격한 진행으로 일어난 호흡마비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이것은 전형적인 길랑-바레 증후군의 증상입니다. 얼마나 전형적이냐면 의대생들이 신경과 시험 때 상행성 마비라는 단어만 보면 바로 길랑-바레증후군을 답으로 찍을 수 있을 만큼 매우 특징적인 증상입니다. 또한 소아마비에 걸리면 매우 특징적으로 경부강직(neck stiffness)이 관찰되는데, FDR에게는 이 증상이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각 증상이 소아마비에서 일어날 확률이 높은지 길랑-바레 증후군에서 일어날 확률이 높은지 사후적으로 분석한 결과, 99% 확률로 길랑-바레 증후군이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합니다.


의대생도 맞추는 이렇게 쉬운 병명을 왜 알지 못했을까요? 가장 큰 문제는 당시에는 길랑-바레 증후군이 의학계에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 병이 길랑과 바레에 의해 의학계에 보고된 것이 1916년이고 FDR이 마비를 입은 해가 1921년입니다. 1921년에 길랑-바레 증후군은 아직 유럽 학회에서나 얘기가 나왔었고, 미국 땅에는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병이었습니다. 더구나 길랑-바레 증후군은 10만 명당 1~2명이 걸리는 초 희귀한 병인데, FDR을 치료했던 메인 주의 의사가 이 병을 알았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그리고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소아마비가 상당히 흔했다는 점도 고려해야겠죠. 지금 60대신 분들에게 물어보면 국민학교 때 반마다 소아마비 때문에 다리를 절던 급우가 한둘씩은 있었다고 하니까요.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병인데 진단과 치료가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렵겠죠. 그리고 길랑-바레 증후군이라고 정확히 진단했다 하더라도 당시에는 치료법을 알지 못했으므로 FDR이 어찌됐든 하반신 장애를 피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요즘의 의학기술로는 진단 시 자가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면역요법을 빨리 적용하면 회복이 잘 된다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체불명의 병이었다 보니 어쩔 수 없었던 듯합니다.


오늘의 결론: FDR은 소아마비가 아니라 길랑-바레 증후군으로 하반신 마비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것도 설일뿐이긴 하니 어느 정도 걸러 보셔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길랑-바레증후군은 FDR이 겪었던 것처럼 영구적인 손상을 남기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궁금하다면 Goldman, A. S., Schmalstieg, E. J., Freeman, D. H. J., Goldman, D. A., & Schmalstieg, F. C. J. (2003). What was the cause of Franklin Delano Roosevelt’s paralytic illness? Journal of Medical Biography, 11(4), 232–240. https://doi.org/10.1177/096777200301100412 참고~ FDR 길랑바레설을 최초로 제기한 논문입니다.


이후 FDR은 대통령이 되고 1938년에 소아마비 퇴치를 위해 연구 재단을 설립하고 엄청난 자금을 밀어줬습니다. 그 결과는 잘 알려져 있죠. 조너스 소크라는 위대한 과학자가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태양에도 특허를 신청할 겁니까?'라는 명언을 남기며 백신의 특허를 포기함으로써 인류를 또 하나의 질병으로부터 구원했다는 것~ 오진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류에게는 잘된 걸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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