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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에날린 Feb 02. 2020

독감에 걸린 한 사람이 불러왔던 의외의 결과

건강을 잘 챙겨야 하는 이유.

전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혼란하네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확진자의 증가세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보건 당국의 조치가 하루빨리 효력을 발휘해 이 상황이 얼른 종료됐으면 합니다. 100년 전에도 이처럼 인류의 건강을 위협했던, 아니 이보다 훨씬 더 심각했던 전염병이 있었죠. 바로 스페인 독감인데요, 100년 전 대유행했던 이 병에 걸린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이 불러왔던 의외의 결과에 대해 얘기할까 합니다. 어쩌면 세계사를 뒤바꿨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 5억 인구를 감염시켰습니다.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픽픽 쓰러져나갔죠. 식민지 조선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구 1700만 중 절반에 가까운 700만이 감염되었으며 그중 14만 명이나 죽었다고 합니다. 당시 전쟁 중이던 유럽에서는 군인들의 사기를 꺾지 않기 위해 참전국들의 보도 통제가 들어갔는데요. 그러다 보니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스페인에서 집중적으로 독감에 대한 보도가 이루어졌고 따라서 스페인 독감으로 이름이 붙습니다. 최초 발원지도 아닌데 자기 나라가 병명으로 붙은 스페인은 참 억울하겠어요. 우드로 윌슨, 로이드 조지, 간디, 빌헬름 2세, 알폰소 13세 등 수많은 지도자와 유명인(?)도 이 병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당시의 참상


스페인 독감의 증상은 어땠을까요. 존스홉킨스 병원을 창립한 유명한 내과의사 윌리엄 오슬러는 스페인 독감을 보고 "인플루엔자는 반드시 신경계를 침범한다"라는 말을 남깁니다. 실제로 환자들이 하나같이 엄청난 두통과 인후통을 호소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지난 2005년 미국의 한 연구자가 영구 동토층에서 스페인 독감으로 죽은 이누이트의 폐 조직을 채취해 독감 바이러스를 분리한 다음, 실험용 페럿(족제비과 동물)에 주입했더니 바이러스가 코 점막을 통해 뇌를 감염시키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페럿에서는 수면 주기가 파행되고 파킨슨병과 유사한 증상이 관찰되었는데, 일반적인 독감에서 이런 증상이 보이지는 않죠. 이렇게 독감에 대한 통찰이 있었던 오슬러 역시 얄궂게도 스페인 독감으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베르사유 조약을 좌지우지한 4인방


1919년으로 돌아가서, 당시 1차 대전 패전국 독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한 파리 강화 회의는 크게 보면 강경론의 영국-프랑스와 유화론의 미국이 줄다리기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특히 프랑스 대표인 조르주 클레망소 총리는 지옥 같은 참호전을 직접 겪으며 독일군을 물리친 당사자라 독일에 대한 증오심이 엄청났습니다. 당연히 그의 마음은 응징에 불타고 있었죠. 미국 대표인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14개조 정강과 민족 자결주의를 내세우는 유화론자였습니다. 지나치게 가혹한 징벌은 향후 또 다른 전쟁의 단초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미국은 유럽에서 그렇게 대규모의 희생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윌슨 대통령은 안타깝게도 19년 4월 3일 독감 증세를 느끼고 앓아눕게 됩니다. 스페인 독감의 병마가 그에게도 덮친 것입니다. 다행히도 일주일 뒤에 병상에서 일어는 났지만 그는 전과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는 "쉽게 피로를 느꼈으며 집중력과 인내심을 잃어버렸다. 하녀가 자신을 염탐하고 있다고 믿는 등 편집증 증세도 나타났다"라고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오슬러가 말한 '독감이 불러오는 신경학적 증상'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죠. 하필 전후 질서를 처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에 독감으로 신경이 쇠약해진 윌슨은 결국 클레망소의 강경론에 손을 들고 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에 사인을 하고 맙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해 가을 윌슨에게는 뇌졸중이라는 불운까지 찾아오고, 상원의 반대로 결국 윌슨은 홍철 없는 홍철팀마냥 자기가 창립한 국제연맹에도 가입하지 못한 채 쓸쓸하게 퇴임하게 됩니다.

  

뇌졸중을 겪고 표정이 안 좋아진 윌슨


베르사유 조약은 가혹한 조약의 대표 격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은 알자스-로렌 지방과 단치히 등 영토의 6분의 1을 잃었고 1320억 마르크라는 엄청난 배상금을 물어야 했으며, 군대는 10만 명으로 못 박혔고 잠수함과 전투기는 보유할 수 없었습니다.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스 역시 영국 대표로 강화 회의에 참관해서 현실적인 대안인 유화론을 지지했는데, 프랑스가 응징에 눈이 멀어 점점 더 과도한 조건을 요구하자 이에 실망해 '이제 남은 것은 전쟁뿐이다'며 모든 직을 던져놓고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이제 와서 완벽히 입증할 방법은 없겠지만서도, 정말로 스페인 독감 때문에 피로해진 윌슨 대통령이 프랑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 사실이라면 참 얄궂은 역사의 한 장면입니다. 독일이 가혹한 조건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한 후, 독일인들의 마음속에 꿈튼 분노가 히틀러로 대표되는 극우 국가주의의 발흥을 이끌고 2차 대전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베르사유 조약을 두고 '태생부터 갈등을 예고했던 20년 동안의 평화 조약'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죠. 현재의 세계 질서 또한 열에 아홉은 2차 대전 이후에 정해졌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니, 당시에 윌슨 대통령이 건강을 유지했어서 조금 더 유화적인 조건을 관철했다면 세계 역사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알 수 없는 법입니다. 영프의 전쟁 기여도가 압도적이라 쉽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현재는 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세계가 시끄러운데요, 과연 이 사태는 다가오는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폐쇄적인 중국 땅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도 지켜봐야겠습니다.



출처: http://theconversation.com/the-importance-of-watching-the-health-of-a-u-s-president-the-spanish-flu-and-a-flawed-peace-treaty-109062 번역/각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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