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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에날린 Apr 02. 2019

당신이 몰랐을 재미있는 헌혈 이야기 10가지

오늘 대학병원에서 헌혈을 하면서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 선생님께 들은 오모시로이한 이야기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1.

   O형 혈액은 항상 부족하다고 한다. O형 인구가 많으니 헌혈량도 많을 텐데 왜 부족하지?라고 생각했는데, 인구가 많으니 O형 환자도 많아서 소모량도 많은 거였다. 게다가 O형 혈액을 다른 혈액형 환자에 수혈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고로 국내 혈액형 인구는 A - O - B - AB형 순.


2. 

   국내에서 헌혈하는 사람의 직업을 조사해보면 순위는 어떻게 될까? 예측해 보자. 

답을 예상했는가? 1위는 대학생, 2위는 고등학생, 3위는 군인이다! 아아... 30세 이상과 이하로 나누었을 때 피가 많이 필요한 쪽은 30세 이상이지만, 한국에서는 30세 이하 헌혈자가 전체 헌혈량의 약 6~7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에 반해 선진국이라고 생각되는 일본, 독일 등 나라는 정반대라서, 30세 이상 헌혈자가 전체의 6~70%를 차지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봉사시간 제도가 없었으면 정말 큰일 났을 듯.


3. 

   이것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1~3월 등 동절기의 혈액량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왜일까? 요즘 대학생들은 방학에 해외여행을 자주 가는데, 해외여행을 갔다 온 사람은 무조건 1개월간 헌혈 금지이기 때문이다. 국내 헌혈량 1위를 차지하는 직업인들이 헌혈을 하지 못하니, 겨울이 되면 혈액 재고량이 뚝뚝 떨어지는 게 눈으로 보인다고 한다. 고등학생들이나 군인들은 주로 단체헌혈을 하는데, 고등학생도 방학 되면 게임하고 놀러 가지 헌혈하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재미있게도 학교 시험기간이면 혈액 재고가 부족해진다고 한다. 마찬가지 이유다.


헌혈 바늘. 생각보다 굵다... 그렇다고 많이 아프진 않다.


4. 

   적혈구는 냉장고에 넣어두면 좀 오래 살지만, 혈소판은 유효기간이 단 5일이다. 그리고 5일 중에 2일 정도는 결격사유가 없는지 검사하고 이송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병원에서 실제 혈소판을 쓸 수 있는 기간은 단 3일밖에 되지 않는다. 3일도 굉장히 짧은 시간이지만, 이게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명절 같은 연휴 기간이다. 요즘은 대체휴일도 많아져서 3일 이상인 연휴가 많아졌는데, 명절이면 놀기 바쁘지 헌혈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연휴에는 항상 혈소판이 절대 부족이다. 그중에서도 유효기간이 지난 연휴 막바지가 특히 문제다. 그러니 명절에 아프거나 사고에 휘말리면 안 된다!


5. 

   혈액이 부족하다고 해서 병원에서 완전히 손을 놓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병원 재고 혈액량에 따라서 수혈 기준을 조금씩 바꿈으로써 혈액 부족 사태에 대응한다. 헤모글로빈 수치는 12~16을 정상이라 보는데, 20년 전 혈액 재고가 많을 때는 10쯤 되면 바로바로 수혈을 지시했지만 요즘은 7은 돼야 수혈한다고 한다. 워낙 혈액이 부족하기 때문에 쓰는 고육책이다. (이는 근래 수혈의 부작용과 합병증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 헌혈량의 70%를 책임지는 젊은 층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이건 쉬운 문제가 아니다.


6. 

   그렇다고 긴급한 외상환자에게도 수혈을 미루지는 않는다. 흔히 수혈의 기준으로 삼는 헤모글로빈 수치는 출혈이 있어도 상대적으로 늦게 떨어지는 반면, 맥박수는 줄어든 혈액량 = 줄어든 산소 공급을 벌충하기 위해 곧바로 빨라진다. 즉, 출혈 환자의 맥박이 높아지면 즉각적으로 수혈을 지시해야 한다. 이때 한가롭게 헤모글로빈 수치만 쳐다보고 있으면 환자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환자에게 한번 저혈압 쇼크가 오면 여러 가지 생리작용으로 인해 수혈을 해도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7. 

   여기 3월에 아프지 말라는 말이 또 나온다. 대학병원에서는 보통 정맥혈 채취는 간호사가, 좀 더 어려운 동맥혈 채취는 의사(인턴)가 맡는다고 한다. 그런데 의대를 졸업하고 3월에 갓 들어온 인턴이 경험이 있어 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실력 없는 인턴들은 찔러도 동맥을 찾지도 못해 힘줄만 찌르는 등 난리도 아니라서 환자들만 환장할 노릇이라고 한다. 몇 달 지나면 능숙해지긴 하지만, 피할 수 있는 고통은 피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러니 아직 인턴들이 미숙한 3월에는 되도록 아프지 말자. 그럴 수 있다면 말이다.


8. 

   이걸 사람 꼬시는 데 이용해 먹는 사람들이 있다. 동맥혈 채취 때문에 쩔쩔매는 인턴 뒤에서 전공의가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야, 내가 할 테니까 가서 쉬고 있어." 고도로 단련된 레지던트의 솜씨로 동맥을 한방에 찾아 환자를 돌려보내면 인턴 눈에는 화색이 돈다고... 그렇게 눈 맞아서 사귀다가 9월쯤 되면 서로 바빠서 깨지고... 병원의 생태학이다.


9. 

   병원 지하에 있는 혈액보관소에 직접 가 본 일이 있었다. 대학병원쯤 되면 수술 건수도 많으니 혈액보관소도 어마어마하게 클 줄 알았다. 실망스럽게도, 집에 있는 냉장고 3개 정도 크기 되는 항온고가 전부였고, 그마저도 절반도 차 있지 않았다. 혈액 부족은 정말 심각하다고 한다. 명절 마지막 날 혈소판이 없을 때 병원에 실려간다면 피를 어디서 만들 수도 없으니 그냥 그렇게 죽는 거라고 한다. 전쟁이라도 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긴급 시 의료진에게서 헌혈을 받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다들 격무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 분명한 의료인이 헌혈 후 저혈압으로 갑자기 수술방에서 쓰러진다면?


10.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라고 배웠지만 물이 부족하다는 걸 직접 느껴보진 못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혈액 부족 국가란 것은 오늘 확실히 깨달았다. 그러니 다 같이 헌혈을 하자! 법에는 미국 기준을 따라 2개월마다 한 번씩이라고 나와 있지만, 유럽 기준에 따라 약 4개월마다 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한다. 헌혈한 날은 술 마시지 말고 운동하지 말고 철분이 많은 고기를 먹어 주면 좋다. 나는 집 가서 계란 먹을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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