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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Sep 06. 2020

[일상첨화#10] 나와 내가 만나는 시간

전자책 리더기와 차 한잔이면 족해

시국의 탓으로 집 외의 어딘가로 나가는 것이 번거롭다.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것 자체가 너무나 부담스럽고 갑갑하기 때문이려나. 점점 집 밖에서 밥 먹거나 무언가를 마시는 일이 줄어들었고, 달력을 가득 채우던 이런저런 일정들도 모두 사라져 텅 비었다. 재택근무가 길어지다 보니 남편과 뭉치 외에는 얼굴 보는 생명체도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얼마간 우울하기는 했으나, 이런 상황도 장점이 존재했다. 하루가 온전히 나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하루라는 시간 전체를 내가 계획한 대로 보낼 수 있다는 점은, 살면서 쉽게 가지기 어려운 기회다. 그러다 보니 규칙적인 것들이 생긴다. 아침에는 현미 프레이크와 플레인 요구르트를 먹으며 업무를 시작하고, 업무가 끝난 저녁 즈음에는 홈트레이닝 후 샤워를 하며 개인 시간을 시작한다. 출퇴근 시간도 아끼니, 아침도 저녁도 좀 더 건강하게 적당한 시간에 먹게 된다. 따져보니 재택근무의 이점이 참 많다.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외에는..

이런저런 좋은 점들 중에서도 가장 나에게 소중한 것은, 나를 만날 시간이 생긴다는 점이다! 이리저리 치여 정작 가장 가깝지만 만나보기 힘들었던 존재가 나였구나 싶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동안 ‘내’가 좋아하고 갖고 싶어 하는 것들을 많이 못줬을 것이다. 이래저래 아껴진 자투리 시간들이 모여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할 선물 같은 시간으로 돌아왔다. 삼십 분인 날도, 두 시간이나 되는 날도 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이 시간에, 나는 책을 엄청나게 읽고 있다. 책 읽다 보면 입이 심심한데, 자기 전인 경우가 많다 보니 무언가 마시고 싶어도 커피나 술은(?) 피하게 되고 차를 마시게 된다. 엄마에게서 받아온 증정용 티백들을 하나 둘 꺼내 홀짝이다 보니, 차에도 관심이 생겨 꽃차도 주문했다. 맛도 맛이지만, 차가 조용히 내뿜는 향은 너무나 거룩하다. 향만 맡아도 내 영혼에게 선물을 해주고 있는 기분이랄까.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시간 동안, 나는 나를 만난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나에게 배우기도 하고 나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차분하게 떨리는 시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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