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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Apr 25. 2016

장애인이 영화를 본다는 것

장애인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영화를 볼 권리가 있다

나에게는 사실 영화관을 찾는 일은 아주 정기적이고 습관적인 일이야. 고백하자면,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영화관을 찾았어. 3일 연속 영화를 본 셈이지. 이런 나를 보고 주위분들은 부자네 뭐네 많이 놀리시고는 하는데 사실 밥을 안 먹고 영화를 보는 경우도 많고 그래. 어쨌든 그만큼 나는 영화를 보는 걸 정말 좋아하고 비슷한 정도로 영화관에 앉아있는 것도 좋아해. 조용하고 어두운 곳에서 온전히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흔치 않은 기회가 좋아서.


그리고 오늘 찾은 영화관은, 다른 날과는 조금 다른 공기를 품고 있었어. 나는 영화 티켓에 적혀 있는 상영 시간에 딱 맞춰 들어갔고, 작은 영화관에는 사람들로 이미 가득 차 있었지. 내 뒷 좌석의 대부분에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앉아있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별로 다를 것 없는 상황이었어. 하지만 장애인 분들과 정말 영화를 같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서 스크린에 비치는 광고를 보기 시작했지.



나는 장애에 대해서 사실 잘 몰라. 특히나 신체적인 장애가 아니라 심리적인 아픔을 지니고 계신 분들은 더더욱 모르지. 오늘 상영관에 앉아 계신 분들이 틱 장애, 다운 증후군,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었던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을 해볼 뿐이야. 광고가 나오고 어두운 공간에 화려한 불빛들이 비쳐나오자 그분들 중 몇몇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광고가 상영되는 내내 멈추지 않았어.


그러자, 나를 비롯해서 많은 비장애인 관람객들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기 시작했어. 도우미분들의 얼굴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고, 장애인 분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어르고 달래느라 진땀을 빼시는 게 보였지. 하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어. 소리는 결국 영화가 시작한 뒤까지 멈추지 않아버렸거든.


그러자 몇몇 관람객들은 귓속말로 수군대기 시작했고 또 몇몇은 포기하고 스크린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는 듯 보였어. 심지어 서너 명의 관객들은 관람을 포기하고 상영관 밖으로 터덜터덜 나가기도 했어. 누가 봐도 기분이 상한 사람의 발걸음이었지. 그러자 점점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장애인 분들을 향해 불편한 시선을 던지며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어. 결국 포기한 도우미 선생님들은 소리를 내고 있는 몇몇의 장애인 분들을 데리고 상영관 밖으로 향했고, 험악해질 것만 같던 상영관의 분위기는 그렇게 일단락됐어.


그런데, 나는 사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이 경험에 대한 인상이 잊히지 않더라고. 미안함과 부끄러움. 동시에 그만큼의 화도 났어.


장애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영화를 보면 안 되는 걸까?


그때 그 영화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영화를 볼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었고, 정당하게 값을 지불하고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이었어. 하지만 결국 무언의 압박에 의해 장애인 몇 분이 상영관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그들 중 그 누구도 그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었던 거야. 다시 말하자면, 몇몇 장애인 분들의 영화 볼 권리가 다소 포기되어야만 나머지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평화롭게 영화 볼 권리를 억지로 되찾을 수 있었던 거지. 하지만, 이것마저 장애인들에게 폭력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이 영화를 보는 방식대로' 상영관에서 영화를 봐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야.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이 조용하고 어두운 곳에서 영화를 보고 싶어 하니까 장애인들 역시 그러한 환경에 맞춰져야 하는 거지. 그리고 그건 오늘 만났던 정신적 장애인 분들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 불편하신 분들에게도 적용되는 압박이야.


왕십리 아이맥스 관에서 가장 피하는 맨 앞줄, 맨 구석 자리들에 바로 장애인석 4개가 위치하고 있어

우선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의 경우, 그들은 비장애인들이 지정한 장애인 석에서 영화를 봐야만 해. 요즘 좌석별로 요금제를 달리하는 CGV에서 Economy Zone에 포함되는, 다시 말해서 '영화보기에 다소 불편하고 목이 아픈 자리이기 때문에 비싼 값을 주고 팔 수 없는' 바로 그 영역에, 장애인석들이 배치되어 있어. 게다가 아이맥스 영화관을 아주 좋아하는 나는 아이맥스관 장애인석 배치를 보고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어. 아이맥스 관을 방문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꺼야. 맨 앞줄, 좌우 끝 자리는 피해야 영화를 정상적으로 관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그러면 어지럽고 목 아프고 속도 안 좋아지는 경우가 있거든. 그런데 그 두 악조건이 정확히 일치하는 곳에 바로 장애인석이 있더라고.


모두가 기피하는 맨 앞줄, 좌우 양 끝 네 자리.

그게 바로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을 앉히는 자리인 것만 같아서 속상했어.

 

요즘 몇몇 뉴스 기사에서 다뤄지고는 있지만, 그 후에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있는지는 딱히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물론 휠체어를 끌고 영화관 맨 뒤나 중간까지 올라가는 일이 어렵기는 해. 소위 영화관 명당자리에 휠체어를 두기에는 좌석 간격이 너무 좁은 것도 알고 말이야. 하지만 그걸 모르는 듯 설계한 영화관 구조 자체부터가 문제고, 이러한 구조를 보면서도 충분히 화내지 않는 우리도 문제야. 우리 사회가 너무나도 잘 하는 '치레'가 바로 여기,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이 영화관이라는 공간에서도 서슴없이 벌어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적잖이 마음이 아팠어.


문제는 이러한 공간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는 장애인들 뿐만이 아니야. 오늘 내가 겪은 사례만 봐도 그렇지. 아마 오늘 그 공간에 있었던 많은 비장애인 관람객들은 '장애인과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경험을 얻어갔을 거야. 마치 영화를 제대로 볼 권리를 그 장애인들이 빼앗아 간 것처럼 느껴질 테니. 그리고 영화관을 나오면서는 잊었을지 몰라도, 눈살을 찌푸리며 생겼던 그 주름들은 마음속에 기억돼 다음번에는 더 쉽게 찌푸려지겠지.


침대 길이에 맞춰 다리를 잘라냈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그래. 상영관 안만 둘러본다면, 그런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야. 하지만 거기서 끝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우리가 줄곧 외치는 장애인의 권리 보호는, 단순히 장애인석을 마련해주거나 강제로 비장애인들이 정한 규칙 아래에 그들을 밀어 넣는 것이어서는 안돼. 그건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거야. 장애인들의 취향과 그들만의 방식을 마음대로 절단하고 우리들의 틀에 억지로 맞춰 끼우는 것 같은, 어색하고 잔인한 행위이지.


그리고 이런 현실은, 우리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불통'의 결과가 아닐까?  

우습게도 영화관에서 상영 전에 나왔던 광고 중 하나가 바로, 청각 장애인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표시하는 통신사 광고였어. 그리고 최근 애플에서는 얼마 전 4월 2일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을 맞아, 자폐증을 앓는 딜런이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는지(물론 애플 제품을 통해서지만), 그리고 그 소통을 통해 딜런이 얘기하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세상에 공개하기도 했지. 이 영상 속에서 딜런은 얘기했어. 목소리를 가지기 전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자폐증만 봤다고.


애플이 공개한 자폐증 환자 딜런 이야기. 급하면 1분 55초쯤부터라도 꼭 보길.


통신사 광고와 딜런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소통'이라는 점이야. 너무 진부해서 놀랐지? 하지만 우리는 '치레'에 집착해서 결국 가장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찾는 유일한 방법인 '소통'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아.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 만큼이나 충분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그 자신들만 아는 것인데, 비장애인들은 그걸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아. 그러면서 장애인석과 장애인용 시설들을 몇 개 마련하고는, '우리는 착한 사람들이야'라며 자화자찬 파티를 벌였던 걸 수도 있지. 소통을 조금만 해보면 그들이 원했던 건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을 금방 알 수 있었음에도 그럴 기회를 저버린 거야.


그래서 나는 이 글에서 뭘 제안하지는 못하겠어. 비장애인인 내가 뭘 안다고, '장애인들은 영화를 볼 때 맨 뒷자리를 좋아할 거예요. 이제부터 맨 뒷자리를 장애인석으로 합시다!'라든가 '자폐증이 있는 관람객들을 위한 장애인 상영관을 만듭시다!'라고 외치는 건 어불성설이잖아. 게다가 이런 주장은 결국 장애인들의 진짜 목소리를 빼앗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야.


다만 한 가지 우리가 항상 염두했으면 좋겠다는 건 있지.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처럼 이제 곧 개봉할 마블의 <시빌 워>를 왕십리 아이맥스 명당자리에서 보고 싶어 할 수도 있다는 것. 비장애인들이 어두운 곳에서 영화를 보는 게 편한 것처럼, 장애인들은 그 반대가 편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차이들은, 최소한 비장애인들이 '개성'이라고 부르는 것만큼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 단지 그 뿐이야.


생각보다 글이 길어지고 복잡해진 것 같지만, 오늘 영화관에서 겪은 그 일을 그냥 나만의 감정 나만의 생각으로만 남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글로 옮기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 특히나 영화를, 영화관을 좋아하는 나라서 더욱 감정적으로 쓰게 됐던 것 같기도 해. 혹시 이 글을 읽으면서 잘못됐거나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수정할 테니 주저 없이 댓글로 알려줬으면 좋겠어.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볼 수도 있는 플랫폼이니까 더욱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어쨌든 긴 글 읽어줘서 고맙고, 이 글을 읽은 오늘 하루만이라도 조금만 더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글 마칠게.



추가로 이 밑의 글은 예전에 우연히 읽었던 글인데 왠지 오늘 겪은 일과 비슷한 사건이었어서 자연스레 기억이 났고 한 번쯤 다들 읽어봤으면 해서 공유하는 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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