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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Apr 24. 2016

버스 기사 아저씨들의 인사

도로 위에서 인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때 나는 인사하기를 되게 좋아했던 거 같아.


중학교를 여자중학교를 나와서 반 애들끼리 다 같이 뭉치고 친하고 그런 문화가 없었어서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 아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다짐을 해서 그런가? 그거 외에도 왜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오면 마음가짐부터 달라지잖아. 교복을 입는 마지막 학교이기도 하고, 수능이라는 거대한 괴물도 기다리고 있고, 대학을 가기 직전이기도 하고 말이야. 대학교 가면 고등학교 친구뿐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마지막 친구를 만들 기회이니 친한 친구들을 많이 만들어 두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지.


다행히 마당발인 친구와 같은 반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학교 내의 많은 친구들과 '인사하는 사이'가 됐어. 사실 학교 내의 많은 애들과 안다고 해서 전혀 이점이 있는 건 아니잖아? 대학 갈 때나 시험 볼 때 아는 친구 많은 순으로 점수 매기는 것도 아니고, 학교 회장 선거에 출마할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면 말이지. 아 체육복 빌릴 때는 좀 좋았던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그중에 딱 하나 좋았던 게 말 그대로 '인사'하는 거였어. 서로가 서로를 알고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는 게 참 좋더라고. 특히나 학교 밖에서 우연히 마주치거나 할 때는 더 좋았지. 누군가가 나를,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반긴다는 그 감정, 서로 반갑게 인사할 때 생겨나는 그 감정이 너무 좋은 거야.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 말이야.


슬프게도 대학교를 가고 나니, 인사할 사람은 자연스레 적어졌어. 사실 적어졌다기보다는, 인사를 안 하게 된다고 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지난 학기에 잠깐 조모임을 같이했던 사람들이라던가, 군대를 갔다가 오는 바람에 서로 얼굴만 흐릿하게 기억해서 인사하기 좀 뭐한 사람들이라던가. 그게 아니더라도 하도 넓고 큰 사회라서, 누구나 인사 안 하려고 맘만 먹으면 그냥 모른 체 하고 지나갈 수 있는 게 대학이니까 말이야. 핸드폰을 보는 척을 하거나 할 핑계도 많고.


그러고 보니 좀 슬펐지. 인사라는 건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 그렇다고 내가 정치인이나 연예인이라서 다들 날 알아보고 인사해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인사하고 싶어도 그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을 것 같거나 하면 그냥 나도 인사를 안 하기 시작한 거야. 그렇다고 뛰어가서 얼굴 들이밀고 인사하는 건 좀 그런 것 같으니까.


그렇게 몇 년 내가 인사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지내왔는데, 문득 버스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내 아주 가까운 곳에 인사 덕후(?)들이 있더라고. 바로 버스 기사 아저씨들이셨어. 사실 그게 의무감에 하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같은 번호의 버스 기사 아저씨들끼리는 서로 항상 인사를 하시더라고. 반대편 멀리서 오는 버스 더라도 항상 멋있게 왼손을 흔들면서.


너무너무 부럽고 멋져 보였어. 도로 위에만 가면 사실 많은 사람들이 폭력적 이어 지거나 무법자가 되거나 하잖아. 차 속에 얼굴을 숨길 수 있으니까. 근데 최소한 같은 버스 번호를 탁 붙이고 있는 기사 아저씨들끼리는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는 게 정말 부럽게 느껴졌어. 그것도 반대편에서 오는 차랑! 그 큰 덩치의 버스를 모는 거라서 서로 모른 척할 핑계도 없고. 유치원 아이들이 신호등 맞춰 건널 때 오른손을 들고 좌우를 살피며 지나가는 그런 것처럼, 작지만 귀여운 규칙인 것 같아 보이더라고.


지금도 가끔 시내를 돌아다니고 할 때 아는 친구를 만났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하는데 나는 그런 운은 죽어도 없나 봐. 정말 시내 돌아다니다가 친구를 만난 적이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로 없어. 그런 점에서 버스 기사 아저씨들이 정말 부러워. 당당하게 인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니까. 버스 안에 누가 있는지 안 보여도 인사부터 하고 봐도 되는 그런 권리!


우리나라도 모르는 사람이랑 서로 인사해도 되는 문화 같은 게 생기면 참 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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