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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May 06. 2016

어른답다?

어른임을 겨우겨우 유지하기 위한 발버둥

갑자기 초등학교 때 일기를 써가던 경험이 기억이 났어. 방학 숙제로 몰아 쓰는 일기 말고, 하루하루 적는 그런 일기. 그리고 나만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일기 쓰는 모종의 규칙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아. 무조건 마지막은 오늘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을 적는 거였고, 나는 대부분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었어.  그리고 요즘도 나손으로 쓰는 일기를 가끔씩 적고는 해. 하루하루가 너무 쏜살같이 그리고 무의미하게 흘러만 가는 것 같아서, 얇은 종이 위에나마 하루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거든. 그런데 문득 내가 쓴 일기를 읽다 보니까 사실 초등학생 때 쓴 일기나 별반 다를 것 없는 거야. 괜히 우습더라고. 단어만 바뀌고 등장하는 사람만 바뀌었지 결국 내가 쓸 수 있는 일기라는 건 이미 초등학교 때 결정이 나버렸구나 하고.


일기뿐만 아니라, 가끔 내가 진짜 어른이 된 게 맞는 건지, 다른 어른들도 진짜 어른인 건지 의문이 생길 때가 많더라.


일단 회사를 다니다 보니까 더 그런 질문이 잦아졌어. 초등학생 때, 아니 심지어 대학생 때만 해도 '회사인'이라고 하면 되게 어른인 느낌이 들었거든. 회사라는 곳은 대학생들이 하는 일과는 차원이 다를 것 같고 모든 것이 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그런 느낌도 갖고 있었고. 근데 정작 회사인이 되고 나니까 이상하리만치 변한 게 없더라. 나는 그냥 여전히 시끄럽고 덜렁대고 감정적이고 고집 센 한 사람인 거야. 회사도 사실 컴퓨터처럼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야. 어렸을 때 싸웠던 그런 이유들로, 회사에서도 똑같이 싸움이 나기도 하더라고.


정말 어른다운 게 뭘까?



아이의 모빌, 어른의 모빌

사실 잘 살펴보면, 어른은 그냥 갓 태어난 아기와 비슷한 점이 아주 많아. 특히 아기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나 좋아하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른들이 좋아하는 것들, 우리가 일상에서 습관처럼 하는 것들과 무척이나 닮아있어.


아기들이 누워서 볼 수 있는 천장에 모빌을 달아두는 건 움직이는 무언가를 보는 것을 좋아해서래. 즉 눈 앞에 일어나는 '새로움', '변화'라는 걸 좋아하는 거지. 어릴 땐 그런 변화를 인지하는 방식이 단순한 '시각'이기 때문에 시각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모빌을 좋아하고, 엄마 아빠들이 얼굴을 가렸다 보여주면서 '엄마 없다, 아빠 없다' 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난에도 까르르 웃는 것일 뿐이야.


어른들은? SNS, 네이버 메인 페이지 같은 것들이 어른들의 모빌이 된 것 아닐까? 조금 머리가 큰 어른들은 이제 시각적인 변화로만은 만족할 수 없어. 더 센 변화를 원하는 거지. 이런 욕구 때문에 우리는 네이버 메인에 수도 없이 들락날락거리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채 새로고침 버튼만 계속 누르게 되나 봐. 흔들리는 버스에서 또 지하철에서 휴대폰 들여다보면서 손가락을 두들기는 어른들의 모습이나, 아기 침대에 누워서 모빌을 향해 손을 뻗는 아기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

결국 아기들처럼 어른들도 생각보다는 이성적이진 않은 존재인 거야. 그저 뇌에 닿는 새로운 자극들을 갈구하고 거기에 반응하면서 '나만의 모빌'을 찾는 데 열중하는 거지. 무언가 항상 계획하지만, 결국 잠들기 전에 돌아보면 즉흥으로 가득한 하루였던 적도 많잖아. 하려고 했던 일을 안 하고 불쑥 기분 탓에 자리를 떠 버렸다던가, 갑자기 생각지도 않던 양말 무더기를 인터넷에서 주문해버렸다던가. 또 항상 엄마의 관심을 갈구하는 아기처럼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바라고 관심을 원하는 게 어른이고, 무엇이든 '많이'를 좋아하는 것도 꼭 아기를 닮았어. 눈 앞의 대상과 당장의 감정에 충실한, 몸이 좀 클 뿐인 아기들이 이 사회를 견인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참 신기하고 재밌지. 물론 진짜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도 몇몇 있겠지만.

 

 참아야 어른된다


이렇게나 아기 같은 게 어른인데, 도대체 어떤 차이점이 우리를 어른이라는 이름 아래에 꾸역꾸역 집어넣게 된 걸까. 어른의 정의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이래. 그럼 다 자란 건 뭐지?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들지. 최소한 '만 19세가 되는 것'이라는 천편일률적인 법칙을 들이대면서 너는 다 자랐다 라고 하는 건 너무한 것 같고. 키나 몸무게로 다 자랐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닐 테고. 아마도 '정신적인 자람' 일 텐데, 그러려면 초등학생이나 어린아이들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무언가'를 키워낸 걸 말하는 것 같아. 그리고 나는 그게 '참을성'이라는 의미로 사회 내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고 있다고 봐.

어른의 정의

우리가 아이들보다 조금 나은 점이 바로 그런 것들이거든. 우리는 급하게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참을 수 있고, 갖고 싶은 걸 못 사도 참을 수 있고, 얄미운 친구를 때리고 싶어도 참을 수 있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해도 참을 수 있어.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삶의 철학에 대해 고민하는 건 어른의 필수 조건은 아닌 거야.


예전에는 그런 참을성에 대한 기준이 엄청나게 빡빡했어. 아이 같은 어른들을 보면 다른 어른들이 혀를 쯧쯧차면서 손가락질했지. 하지만 세상이 자유로워지고 포용적이어지면서, 많은 어른들이 참아왔던 '아이 같은 욕구'를 그나마 표출하기 시작한 것 같아. 예전에는 히어로나 애니메이션 같은 것들이 어린아이들의 전유물이고 유치하다고만 바라봤었는데, 이제는 그 어떤 콘텐츠보다도 어른들에게 인기 있는 문화가 됐어. 요즘만 하더라도 캡틴 아메리카나 주토피아 같은 영화들이 계속 영화 인기 순위에 올라있잖아. 피규어나 프라 모델, 각종 인형들을 모으는 어른들도 많아졌고, 이제는 이런 문화도 어른들의 문화 중 일부로 완전히 자리 잡은 걸로 보여.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른들에겐 참을 것 투성이지.


어릴 땐
 다 죽어도 나만 살 것 같았는데,
이제는 다 살아도 나만 죽을 것 같다


얼마 전에 아버지가 하신 말씀인데 너무너무 공감되고 맞는 말인 것 같았어. 어른다움을 결정하는 큰 부분은 '겁' 이랑 '눈치'라고 생각이 들어. 정말 어릴 때는 세상의 주인공이 나고 나는 일종의 '슈퍼 파워'를 갖고 있어서 위기가 닥쳐도 모든 걸 다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참 별의별 짓을 다 하고는 했잖아. 나는 친구들한테 가정통신문을 써서 나눠주면서 나랑 놀러 가려면 부모님한테 싸인받아오라고 그랬던 어처구니없는 기억도 있고,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위험한 놀이도 많이 했었어.


그렇지만 그런 놀이들을 지금 하라고 하면, 다른 무엇보다도 '겁이 나서, 눈치가 보여서' 못할 것 같아. 물론 지금 내가 위험한 짓을 못해서 안달이 나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가끔은 그때의 그 자신감과 무모함이 너무 부럽고 질투가 나. 정작 어른이 돼서 돈을 벌고 힘도 세지고 나니 아무리 흥미를 끄는 일이라도 겁이 나서 눈치가 보여서 못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꽤나 많아졌거든.


그리고 어른들이 가지는 이런 '겁'과 '눈치'는 이 나라와 사회의 틀, 그리고 나를 유지하는 단단한 장벽 같은 걸 거야. 그 누구도 세우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무너트릴 수 없는 엄청 단단한 장벽. 틀을 유지하고 질서 정연한 삶을 선물해주지만, 도전과 광기를 막는 협박의 장벽인 거지. '너는 어른이잖아'라면서.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글쎄, 답을 내릴 수 있을까?



결국 어른답다는 건,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니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만 더 참으면 되고, 조금만 더 겁내면 되고, 조금만 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줄 알면 되는 것. 그런데, 그렇게 어른답게 사는 게 행복한 삶으로 직결되지는 않는 것 같아.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서, 우리는 너무 많은 걸 참고 두려워하고 눈치 보면서 겨우겨우 어른임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어른답다의 반대말인 아이 같다 라는 말이 이전에는 유치하고, 철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살짝 틀어서 보면 그만큼 자신감 넘치고 하고 싶은 일은 당당히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아이다운 나의 모습이 건강함, 행복함의 원천이 되고, 어른다운 것은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의 근원이 된 적도 많이 있어. 누구나 그랬던 적이 있지 않을까? 남들 앞에서 어른스럽고 당당한 척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아이처럼 벌벌 떨고 혹시나 누군가 나를 욕하고 있지 않을까 눈치를 봤던 그런 경험. 어디까지나 나의 이야기지만, 요즘은 자주 용감하고 무모하고 해괴망측했던 어린 내 자신감이 너무 되찾고 싶어. 그때 가졌던 나의 '슈퍼 파워'에 대한 믿음,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긍정적인 예측들이 있다면, 오늘도 내일도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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