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의 책 보다 뱅크시의 그래피티 하나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흔히 그래피티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혼돈, 무법, 무질서, 빈민가, 불법 행위, 더러움. 하지만,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는 그러한 그래피티의 부정적인 면모들을 도리어 역이용한다. 심지어는 길 위의 지저분한 전봇대, 튀어나온 철사, 오래된 스피커까지 관대하게 품어가며, 뱅크시는 가난과 전쟁과 절망과 정치를 말한다. 멈춰있는 그의 그래피티들이 주변의 행인들 혹은 거리의 물건들과 소통하며 역동적인 풍자로 다시 태어난다.
무슨 계기로 뱅크시를 알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특유의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풍자적인 그래피티들, 그래서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의 몇몇 작품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 뱅크시에 대해 더욱 알아보게 됐고, 그의 작품들에 자연스레 더 매료됐다. 더욱이나, 그는 비밀이 많은 남자다. 공개된 정보가 별로 없고 얼굴을 본 이들도 극히 드물다. 갑자기 거리에 그의 그림만이 마법처럼 그려져 있을 뿐이다. 웹사이트를 통해서만 뱅크시의 작품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스스로를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부른다.
더욱 나를 사로잡았던 점은, 그의 예술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높이 있는 것을 낮은 곳에 추락시키고, 지저분한 것은 격상되는 그의 '역설'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일반 대중에게도 재미를 주는 예술이란 쉽지 않은데도, 전쟁을 비판하는 수십 장의 칼럼, 수백 편의 책, 수만 분의 영화들보다도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는 말 그대로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다. 가명인 '뱅크시'라는 이름으로 홍길동 마냥 이곳저곳에 그래피티를 남기고 다닌다. 독특한 캐릭터와 풍자적인 작품들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어, 2010년에는 스티브 잡스, 버락 오바마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위 안에도 들었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길거리의 낙서'로 불리는 그래피티 하나로 얻은 이러한 인기는 그의 뛰어난 풍자 능력과 재치와 창의력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하튼, 그는 email 등의 창구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숨긴다. 그의 마지막 대면 인터뷰는 2003년에 진행됐고, 그 이후로는 그의 얼굴이 공식적으로 공개된 적은 없다.
그림을 그리는 기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는 '스텐실 기법'이라는 독특한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다. 인터뷰를 찾아본 결과 뱅크시는 그래피티를 그리다가 경찰에게 쫓기는 도중 한 시간 가량 트럭 밑에 숨어있었는데, 연료 탱크 밑에 있던 스텐실을 보며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빠르게 그릴 수 있음은 물론이고, 스텐실이라는 소재가 가진 역사 때문이었다. 스텐실은 혁신을 이끈 소재이자 전쟁을 멈추는 데 사용돼 왔던 소재였다. 이를 통해 뱅크시는 단순한 장난 수준의 '낙서'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은 걸까.
사실 뱅크시가 다루는 장르는 그래피티만은 아니다. 그는 영화감독이기도 하고, 행위예술가, 미술가이기도 하다. 그가 2010년에 제작한, 자신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았고 한국에서도 개봉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사상 최고의 불평 분자가 아닐까 싶다. 그의 비판적인 예술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은데, 그중 하나는 예술을 관람하는 관람객들의 오만함에 통쾌하게 복수한 사례이다. 미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도 않으면서 미술관을 찾는 것만으로 똑똑한 척하는 모든 사람들을 비웃어버린 것이다. 그는 루브르나 대영박물관, MOMA(Museum of Modern Art) 등에 몰래 변장하고 들어가 어처구니없는 자신의 작품을 몰래 진열하고 도망가고는 했다. 쇼핑하는 원시인이 그려진 돌이나 스마일 스티커가 붙여진 모나리자 같은 것들을 말이다. 웃기게도, 이러한 작품들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거의 한 달 가까이 전시됐다고 한다.
이런 게 바로 뱅크시의 스타일이다. 굉장히 짓궂고 웃기는, 장난 같은 그의 예술들. 하지만 단순히 웃어넘겨지지만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 답은 멀지도, 어렵지도 않다.
긴 말이 필요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그의 웹사이트에 가보면, OUTSIDE(실외 작품)와 INSIDE(실내 작품) 두 가지 카테고리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보면서 감격스러웠던 사진들을 저장했는데, 저장하고 보니 수십 장이다. 고르고 골라 가장 뒤통수 맞는 듯한 기분이 드는 작품들 열몇만 뽑았다. 딱히 설명조차 필요하지 않다. 자세히 한 번 보기만 하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냥 스크롤하지 말고, 하나하나 자세히 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 사진 클릭해서 슬라이드 가능)
사진은 모두 뱅크시의 개인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이며 이 외의 작품들도, 간단한 구글링이나 웹사이트에서 쉽게 감상할 수 있다. 아주아주 많다.
그리고 위에는 없지만, 뱅크시의 작품에는 아이들, 유명인들 외에도 '쥐'가 굉장히 자주 등장한다. 뱅크시의 거의 뮤즈 같은 존재랄까.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존의 유명한 그래피티 아티스트 Blek de Rat과 유사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뱅크시가 쥐를 소재로 많은 작품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밤에만 나타나는 쥐의 특성이 뱅크시와 닮았기도 하고, 범죄자 취급받으며 언제나 추방의 대상이 되는 쥐가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숙명과도 비슷하다. 또한 뱅크시가 자주 던지는 메시지인 정치나 허세 등의 소재에 우리가 가장 깔보는 동물 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이 쥐의 모습이 우리를 거울과도 같이 비치며 반성케 한다.
뱅크시는 그 외에도 다른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전시를 여러번 열었다. 2003년에는 '지역 다툼(Turf War)' 전시회를 열었고, 최근 2015년 여름에는 디즈멀랜드(Dismaland - Dismal은 울적한이라는 뜻이다)를 오픈했다. 이름에서도 느낌이 오다시피, 디즈니랜드를 뒤틀어버린 놀이공원이다. 뱅크시도, 어린이에게는 부적합한 가족 테마 파크라고 이 디즈멀랜드를 소개한다. 뱅크시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유명 작가들과 협업했는데, 그중에는 그로테스크 예술의 끝장이자 상어 전시로 유명한 데미안 허스트도 포함돼있다.
작년에 이 디즈멀랜드가 오픈했다는 소리를 듣고 굉장히 굉장히 가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전시는 36일 동안만 진행이 됐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후기 영상이나 글들을 올려줘서 여러 개 봤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분위기는 음울하지만, 재밌었다는 평도 상당히 많다. 밑은 디즈멀랜드 소개 영상이다.
물론 진짜 놀이공원은 아니기 때문에, 즐거운 탑승용 놀이 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어린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동화 속 이야기들과 재미있는(것으로 보이던) 놀이 기구들이 뱅크시의 소재로 택해졌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이다. 행복해야 할 놀이 공원은 완전한 절망의 공원으로 탈바꿈한다.
호박 마차를 타고 궁전으로 향하는 신데렐라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녀를 돕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녀를 향하는 것은 따뜻한 도움의 손길도 동정의 눈길도 아닌,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다.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비난이 여기서 다시 등장한다.
또 한편에는 난민들을 태운 배들 사이로 보트를 조종하는 게임이 배치돼있다. 우울하고 지쳐 보이는 난민들이 빼곡히 타고 있는 배들에, 높은 속력의 보트는 계속해서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들을 다치게 하고 괴롭히는 것은 다름 아닌 보트 조종사인 나 자신이 된다.
이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들이, 음울하고 조용하게 관객들을 기다린다. 비록 하루에 4000명의 입장객만 받았지만, 이 전시는 SNS 등을 타고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메시지를 줬다. 직접 갔던 사람들에게 역시 뱅크시 예술의 일부가 되어보는 엄청나지만 우울한 경험이 됐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디즈 멀랜드는 큰 인기를 끌어 예매 사이트가 반복적으로 다운됐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이마저도 뱅크시가 일부러 만들어낸 아이러니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시하지만, 어쨌든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끈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번 달인 2016년 5월 사우스 뱅크 스카이 예술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에게는 호평과 혹평 모두를 받은 전시였지만, 어쨌든 관람 희망자(?)이자 일반인으로서 이 전시는 분명히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술이 꼭 고상하고, 아름다워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공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를 준 것만으로도 뱅크시의 디즈멀랜드는 엄청난 성공이었다.
뱅크시가 한국인이었다면, 어떤 그림을 어디에 그렸을지 참 궁금해진다. 뭔가를 어딘가에 그렸다고 해도, 끌려가지만 않았으면.
그는 분명한 '그래피티 투덜이'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인 투덜거림은, 인간에 대한 증오나 혐오감에서만 기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와 행복, 평화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이 오히려 그의 풍자적 예술의 근원이지 않을까.
그의 계속되는 작품들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예술가의 세상에 대한 진지한 걱정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모두들 꼭 잃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