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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Feb 12. 2017

거짓이 진실보다 쉬운 사회

영화 <재심>을 보고

재심이란, 확정된 판결에 대하여 사실 인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경우에 당사자 및 기타 청구권자의 청구에 의하여 그 판결의 당부를 다시 심리하는 비상수단적인 구제방법을 말한다. 한마디로 잘못됐다고 판단되는 심판에 이의를 제기하고, 다시 판결 내릴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영화 <재심>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바로 그 재심을 요청하고 싸워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 한 편에 다 담아낼 수조차 없는 장장 16년에 걸쳐 일어난 일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워야 했던 수많은 난관들과 시선들, 밝히고자 했지만 밝혀지지 않았던 답답함을 표현하는데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믿을 수 없지만, 실화다. 


사실 실화를 다루는 영화들에는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감동과 이야기가 좀 더 진실성을 수반한다는 것, '실화에 기반합니다'라는 짧은 문구만으로도 관객들의 집중도를 한 층 높일 수 있다는 것, 영화를 본 관객들이 영화에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들을 좀 더 찾아보고 이야기하며 좀 더 오래 회자될 수 있다는 점들이 장점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실화 기반 영화들의 경우 오히려 실화에서 벗어난 이야기들을 많이 다루게 될 경우 오히려 좋지 않은 평을 듣기 마련이다.


영화를 보기 전, 중, 후로 나 역시 이 영화의 실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영화가 기반하는 사건은 2000년도에 일어났던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이다. 간략히 줄이자면, 경찰의 폭행과 강압에 의해 15세 소년 최모군이 약촌오거리에서 택시 기사를 살인했다는 거짓 자백을 하고 누명을 쓴 사건이다. 심지어 사건 3년 뒤 진범과 그를 목격한 진범의 친구가 군산서에 자수를 하러 갔지만, 이마저도 좌절되어 결국 최모군은 10년 만기 출소를 했고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형 변호사의 도움으로 결국 작년(2016년) 11월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영화의 촬영 기간이 2016년 여름부터임을 감안하면, 영화의 촬영 시기와 실제 재심 시기가 어느 정도는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실화와 영화 내용을 비교해본 결과 핵심적인 스토리들은 거의 대부분 실화에서 차용된 듯하다. 심지어 배우 정우가 맡은 변호사 역의 이름이 '이준영'인데, (실제 변호사 이름은 박준영) 재심이 무죄 판결로 결론지어지기를 바랐던 제작진의 감정 이입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거짓과 진실의 관계


개인적으로 나에게 요즘 '한국 영화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라고 한다면, '거짓이었으면 좋겠는 진실'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실화든 아니든, 국민들이 느끼는 우리나라와 우리 사회에 대한 답답함이 어떻게든 영화에 담겨 있다.


그래선지 한국 사회를 다루는 영화들이 좀 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성공작을 만들어야 하는 영화계에서는 계속해서 이런 현실 반영 영화들을 만드는 모양이다. <내부자들>부터 시작해서 최근 <더 킹> 그리고 이번 <재심>까지, 어쩜 이렇게 답답하고 비현실적인 거짓 이야기들이 현실처럼 느껴질까 하는 생각에 속상한 요즘이다.

영화 내에서도 등장하지만 <재심>은 SBS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다뤄졌던 이야기이다. 심지어 2003년, 2013년, 2015년 세 번에 걸쳐 이야기를 방영했지만 진실은 16년이나 늦은 2016년 11월에야 겨우 되돌아왔다. 다행은 다행이다. 하지만 역시 안도의 한숨을 쉬고만 끝낼 수는 없는 이야기이기에 왠지 속이 답답해졌다.


요즘 들어, 최모군의 억울한 사연을 포함하여 이 사회는 결국 진실을 감당할 수 없는 사회 인가하는 의문이 든다. 수많은 거짓들로 점철된, 아름답지 못한 사회의 모습들에서 우리는 진실을 감당할 용기가 없어 거짓을 택하는 추한 얼굴들을 뚜렷이 볼 수 있다. 분명 최모군의 사연에서도 의도가 어떻듯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해왔다. 가장 핵심적인 박준영 변호사로 시작해서 자수하러 왔던 김 모 씨와 그의 친구 임모 씨(결국 그는 자살했다), 진범을 잡고 다시 사실을 밝히려 노력했던 2003년의 많은 경찰들, 누구보다도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자 노력했던 최모군 본인까지.


어찌 보면 진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코앞에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밀고 당기고 끌어올리며 중요한 자들의 눈앞에 턱 하니 가져왔다. 그저 눈만 뜨고 똑바로 바라보기만 하면 될 그 진실을, 결국 바라볼 용기가 없는 자들이 만들어 낸 거짓이 가려버렸고 거짓은 또 거짓을 낳았다.


마치며


영화 <재심>은 분명 진실과 허구의 이야기들이 섞인 '영화'다. 관객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여기저기에 재미있는 혹은 과장된 연출이 보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재심>을 100점 만점에 100점짜리 영화라고는 할 수 없겠다.

<재심>은 언급하다 말았던 실화 기반 영화들의 단점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을 몇몇 포함하고 있다. 변호사들 간의 권력 다툼에 관한 이야기들이나, 다소 영화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었던 장치들, 아쉬운 몇몇 배우들의 연기들은 솔직히 이야기에 집중하기 힘들 게 만들었다. 실화인 데다가 피해자에게는 상처가 된 영원히 남기는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이기에 담백하기만 했었어도 좋았을 텐데, 부자연스러운 몇몇 요소들이 가미된 것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주고자 했던 메시지들,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들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영화'이기에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났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상처를, 현실을, 진실을, 그리고 그를 밝히려 노력한 영화를 별점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관객들의 마음에 거짓된 현실에 답답함을 남기고 밝힐 수 없었던 진실에 대한 울분을 심어놓는 것이 되려 이 영화의 진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기준에 관한 한 <재심>은 합격점이다.   



It is better that ten guilty persons escape than that one innocent suffer.
열 명의 범죄자가 달아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 윌리엄 블랙 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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