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주관적으로 선정한 리스트
벌써 '2018년'이란 단어가
과거의 범주에 속할 정도로
왠지, 생경해졌다.
나도 모르게 올해 봄에 있었던 일들을 '작년에 있었던 일'로 칭하기도 하고, 며칠 안 남은 2018년의 나날들을 거의 털어버리듯 별 의미 없이 소진하고 있다. 머릿속에서 이미 달력은 한 장 넘어간 지 오래다.
2019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계획, 새로운 목표들을 세우는데 여념이 없다가도, 잠깐 짬 내어 생각해보면 2018년은 왠지 특히나 빠르게 지나갔던 것 같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사태가 벌어지고 비트코인 시장이 찬란히 활성화됐던 2017년에 비해서는, 2018년은 꽤 잠잠하게 지나간 탓일까. 집값이 난리를 친 것 빼고는 (이마저도 사실상 젊은 혈혈단신 월급쟁이 직장인들에게는 딱히 큰 여파도 없었다) 돌아보면 그리 엄청난 사건들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기억의 양이 곧 시간의 양이라던데. 기억날 만한 사건들이 많이 없어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유독 2018년은 평탄하고 빨랐다.
그런 소소한 하루들이 지나가는 와중에도, 내 인생에 꽤나 도움이 되고 시각을 바꾸어 준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난 한 해기도 했다. 지나가는 말로 추천을 받았던 책, 그 책에서 언급해서 읽게 된 책,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책 등, 여러 인연으로 만난 책들이 많았다.
이전까지 나의 인생 책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참고로 그 유명한 '알을 깨고 나온다'라는 문구 때문은 아니다. 이름도 기억이 안 나서 방금 다시 찾아본 '피스토리우스'라는 인물이 내뱉는 몇 마디들이, 책을 읽을 당시 나의 고민들에 작게나마 답을 해줬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책은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타이밍이 참 중요한 상대구나 싶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책을 만나는 것은, 운명적인 연인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감사하고 기적적인 일이다. '다시, 책은 도끼다'라는 책 역시 좋은 타이밍에 나를 찾아왔다.
사실 처음은 '책은 도끼다'를 먼저 추천받아서 도서관에 갔었다. 하지만 누군가 이미 대여중이라는 알람과 맞닥뜨리는 바람에, 후속작이라면 후속작인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책은 도끼다'를 읽지 못해서 두 책의 차이는 잘 모르겠다. 다만, '다시, 책은 도끼다'는 베스트셀러의 후속작이라는 수식어로 한정 짓기엔, 훨씬 더 괜찮은 책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루하루는 이미 경험한 어제와 비슷하게만 느껴진다. 비가 내리는 일도, 길가에 떨어진 낙엽도, 과거 저편에선 나를 즐겁게 했던 것들도 점점 권태로워지는 것이다. 그 권태는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익숙해진 것들에 대해 더 이상 촉수를 세우지 않는 우리 자신의 탓이다. 그런 것들에 좀 더 사랑스러운 시선을 던지고 나의 하루 속에 품어 안는 과정은, 이런 '일상의 권태'를 깨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되찾아 준다.
이 책을 읽은 시점은, 직장 생활도 4년~5년 차에 접어들어 심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큰 변화 없이 안정적인 어느 날이었다. 이젠 대학생 때의 무모한 꿈도, 신입사원 때의 흘러넘치던 열정도 희미해졌고 동시에 작은 일에 흔들리는 미약한 멘탈도 어느 정도 든든해졌다. 새로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냥 비슷하면서도 다른 하루하루를 지낼 뿐이다. 불행하진 않지만 엄청 즐겁지도 않다. 박웅현 씨는 이러한 일상에서 '촉수를 곤두세울 것'을 말한다.
떨어져 있는 낙엽을 보고도 뭔가를 느낄 수 있는 시인의 감수성이 부러워졌고, 세상의 작은 것들을 좀 더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큰 변화는 아니었지만 왠지 그냥저냥 흘러가기만 하던 하루에 굴곡이 생기고 재미가 생겼던 것 같다. 책도 그냥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촉수로 흡수해 내 시선으로 왜곡시키는 과정을 즐기게 됐다. 책 읽는 속도나 양은 조금 줄긴 했지만, 전혀 안타깝지 않다. 그저 별 의미 없이, 내 눈과 머리를 지나쳐만 갔던 과거의 무수한 책들이 아쉽다면 아쉬울 뿐이다.
'독서'라는 행위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기만 하는 독자,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 독자들이라면 '다시, 책은 도끼다'는 아주 좋은 독서 여행 가이드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아주 좋게 읽었다고 하면, 왠지 모르게 사람들의 시선이 바뀐다. 왠지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존재를 보는 그런 눈빛이랄까. 이해한다. 개인주의는 곧 이기주의와 일맥상통한다고 나 역시도 생각했었으니까.
이러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인 사회에서 문유석 작가는 당당하게 스스로가 개인주의자임을 선언한다. 아주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선언을 하기까지의 생각들과 과정들을 보면, 아주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개인주의는 엄연히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내가 존중받을 수 있는 것처럼 타인도 존중받을 수 있으며, 그 역도 당연히 자연스럽게 성립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행복'이 잉태된다.
문유석 씨는 꽤 자주 서인국 교수의 '행복의 과학'과 북유럽 사례를 언급했다. 내가 북유럽 여행을 가기 직전이었어서 그런지, 그리고 행복의 과학 강의를 직접 서인국 교수님께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행복지수가 그리 높다는 북유럽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개인주의'는 아주 합리적이고 명확한 '행복의 길'이라는 작가의 생각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길은 그렇게 쉬운 길은 아니다. 군대 문화를 기반으로 한 조직 문화가 스며들어 있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개인주의는 말처럼 쉽지 않다. 단순히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의 삶만을 살고 싶은 개인주의자의 작은 소망은, 경쟁과 위계 속에서 처참히 짓밟힌다.
우리 사회가 크나큰 경제적 성장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사회라고는 할 수 없는 이유는 '합리적 개인주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작가의 시선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아주 냉철하고 객관적이고 간단명료한 판단들이 책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자기 계발의 함정', '자본주의 사회임에도 돈보다 지위에 집착하는 사회', '완벽하지는 않아도 자신의 목소리로 의견을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 등, 요즘 말로 뼈를 때릴 정도로 날카로운 시선들이 돋보인다.
많이 반성했다. 나 역시 내 진짜 모습이 아닌 것들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인정받으려 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는 충실했는지, 조금은 어리숙해보이는 다른 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긴 했었는지, 나 역시 위계에 그저 조용히 녹아들어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주진 않았는지. 그리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저 남 탓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나 개인부터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 작은 행복들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스스로가 외향적이라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많이 공감되고 와 닿았던 걸 보면, 외향 내향할 것 없이 모든 한국인들이 이 책을 접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해보면 좋겠다. 혐오와 비난이 넘치는 요즘 사회 분위기조차도 어쩌면 '합리적 개인주의'의 결핍에서 발생된 고질병일지도 모르니.
마무리하려고 보니, 나도 참 '행복'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구나 싶다. 행복에 집착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데, 사실 나는 그 말이 별로 와 닿지 않는다. 행복처럼 얻기 어렵고 잃기 쉬운 걸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는 없다. 눈은 좀 더 크게 뜨고, 촉수는 좀 더 세우고, 머리는 좀 더 써가면서 행복해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