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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Mar 21. 2017

헌책방을 엿보다

<아주 오래된 서점>을 읽고

나에게 '책방'이라는 단어의 이미지는 아주 어릴 적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네 골목길에 위치했던 작은 가게였는데, 아이의 시선에서는 그 책방에 들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처럼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 서점이 활발했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해리포터 시리즈 몇 권이 서점에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려 직접 샀었다. 그 외에도 문제집들이나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그 비좁은 가게를 꽉 채우고 있었다. 책들 사이를 지나갈 때면 괜히 조심스럽고 신경이 쓰였던 기억도 남아 있다. 지금에서야 그 책방이 얼마나 작고 소박한지를 깨달았지만, 당시에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공간, 따뜻하고 설레는 공간이었다. 요즘 우리가 '서점'이라고 부르는 곳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나에게 헌책방에 대한 이미지는 사실 청계천 주변에 있는 20여 개의 책방 이미지만이 전부다. 그마저도 다른 종류의 가게들의 이미지와 뒤섞여 왠지 철물점과 비슷한 분위기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실제로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쉽게 발걸음이 향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는지도.



그런 내가 이번에 우연히 접하게 된 책이 바로 <아주 오래된 서점>이라는 책이다. <종이달>을 쓴 작가 가쿠타 미쓰요가 헌책도(道) 오카자키 다케시라는 작가의 가르침에 따라 헌책방 탐험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헌책도라는 말도 처음 들어봤는데, 책 껍데기의 작가 이력들을 펼쳐보니 일본에서 헌책을 하도 좋아해 관련 잡지를 펼 정도라고 한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런 마니아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고 새로우며 놀랍다. 거기서부터 책에 믿음이 갔다.


책을 읽으며 다양한 헌책방들을 소개받았다. 작가답게 섬세하고 예쁜 수식어들을 통해 각 헌책방이 가지는 개성, 어떤 책을 왜 구입하게 됐는지, 책방이 위치한 마을의 분위기까지도 고스란히 전달한다. 작가가 꽂힌 책이나 책방에 대해서 특히 열성적으로 설명할 때면, '아, 이 작가, 이 책방이 정말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게 됐다. 


헌책방에 대해 의외였던 점은, 헌책방에서 단순히 '헌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애초에 물건을 모으고, 좋아하는 것들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헌책방을 열기 쉬운 터라 예전 물건들도 함께 모아 파는 가게들이 일본에는 많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전문 분야를 다루는 헌책방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아동 서적을 다루는 전문 헌책방이라니. 왠지 어울리지 않는 두 대상이 억지로 붙어있는 느낌이 들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두근거린다. 요즘의 아동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언젠가는 아동이었던 우리가 그때 그 시간들에 읽었던 책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우리가 어른이 된 만큼, 책도 나이가 들었을 뿐.



단순히 헌책방 탐험기로만 보기에 이 책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책을 너무 사랑해 작가가 된 두 명의 작가들이 책을 대하는 태도는, 책을 넘어서 사물과 삶과 추억을 대해온 나의 태도를 힐끔 이나마 돌아보게 한다. 


이전 세대의 비판을 받지 않는 곳에서는 그 어떤 새로운 것도 태어나지 않는다.
- <아주 오래된 서점> 10쪽


헌책도라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 것이 역설적이긴 하지만, 헌책에 대한 개념 자체도 예전과 지금이 많이 다른 모양이다. 다양한 장르의 헌 물건들을 좋아하고 모으는 사람들에 대해 예전 장로들은 많은 비판을 했다고 한다. 100번 옳은 말이다. 비판이 없는 곳에 새로운 생각이 싹틀 리가 없다. 특히나 자신이 옳고 좋아하는 것을 비판 때문에 감수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다분히 부끄러운 태도다. 당당히 헌책도의 길을 걷고 있는 두 작가는 물론이고, 비판받으면서도 고통스러운 탄생을 위해 꿋꿋이 서있는 모든 사람들, 칭찬하고 응원하고 싶다.


니시오기쿠보 헌책방의 책장에 꽂힌 책은 전부 한 번은 누군가에게 읽힌 뒤 그 누군가를 완성시키는 작은 세포 하나가 되었고, 그런 다음 여기로 왔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묘하게 안심된다. 신뢰할 수 있는 친구에게 책을 추천받은 듯한 안도감이다.
- <아주 오래된 서점> 181쪽


다른 서점들은 몰라도 이 '니시오기쿠보 헌책방'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 구절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써, 이 느낌을 분명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그렇다. 나의 세포 하나, 생각의 길 하나를 새로 터주는 책들이 몇 권 똑똑히 기억난다. 아주 좋아하는 책들이기에 자신 있게 자주 추천한다. 그런 책들이 모여 이 헌책방을 채웠나 보다. 책의 한 장 한 장에서 전주인의 성장이 느껴지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사실 책이란, 그냥 새 책을 서점에서 사도 글자 하나 다를 일이 없지만(재편집되어 나온 게 아니라면), 왠지 누군가가 책의 첫 장부터 끝 장까지 몰두해서 읽은 흔적이 느껴진다면, 이 책은 믿을만하다고 나조차도 생각할 것 같다. 



책을 읽고 또 든 생각은, '왜 일본에는 이런 매력적인 헌책방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없지?'였다. 나의 실수였다. 보고도 지나쳤던 헌책방들이 수두룩했다. 내가 매일같이 지나던 신촌이나 심지어 내가 사는 동네에도 헌책방이 있었고, 번잡해 보이는 홍대나 저 멀리 지방에도 헌책방들이 꽤나 존재했다. 


이 책을 가이드 삼아, 언젠가 헌책방 모험을 하며 단돈 몇만 원에 책을 품 가득히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기분을 느껴봐야겠다. 그 뿌듯하고 설레는 경험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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