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난 가을이었다

- 나에겐 넌 지난 여름이 되었다

by 갈대의 철학

너에게 난 가을이었다

- 나에겐 넌 지난 여름이 되었다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불어오는 바람에

살포시 네게 기대었다

가을바람에 가을이 익어갔다

그 여름날 없었던

아기 솜털이

못 미더운 사랑만큼 자라서

내겐 그 혹 서리된 여름이

이 가을을 더욱 농익게하고

금세라도 만지면

폭발할 것 같은

벌어진 알밤의 가시였다

너를 살포시 만졌던 기억이 오래 남는다

봄날 장미의 가시에 찔렸을 때보다

영글대로 영글고

익을 대로 익어가는

풍만한 성채에 숨겨진 너의 비밀의 화원

그 속에서

너에게 난 가을 이었고

그 속에서

나에게 넌 지난 여름이 되었다

그래서 이날이 오면

네 눈물 대신

하얀 첫서리 맞이하듯

떠나보낸 네 눈물보다 맑고 고운

흰 이슬 내린 백로(白露)가 되었다

난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2019.9.8 태풍이 지난 자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