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로봉 가는 길에서

-백치의 순백

by 갈대의 철학

향로봉 가는 길에서

-백치의 순백


시. 갈대의 철학



새벽 일찍 문을 나서니

어제 내린 비로

고둔치 가는 향로봉길이

깊어가는 이 가을을 더 재촉한다


고둔치 입구 지나

사람 한 두 명 올라가는 이 시간은

숲 전체가 오케스트라다


오솔길 지나면 길가에 가을 들꽃들이

이른 새벽 햇살을 기다리며 목을 쭉 빼고


다람쥐, 귀뚜라미, 새소리, 계곡 물소리


그리고

터벅터벅 뚜벅뚜벅

내 발길 따라가는 등산화 발자국 소리들과


협협계곡 오를 때마다 좁아지는 계곡 사이로

바람이 불어 그들과 동화되니 한 하모니 일구어 낸다


땀은 계곡물에 씻겨 흘러가 더 큰 물줄기 보태며

여기저기 마중 나온 길벗들에 인사하기 바쁘네


산을 나서면 앞만 보고 오르지 말라고 한다

때로는 뒤도 살피며

지나온 여운이 주는 느낌에 따라오는

감흥에도 젖어보라 하네


떨어진 산밤들과 다람쥐와

그것을 겨울 곡식 곡간 채우는 그들이 있기에


그들만이 이 숲을 지탱하며 오랜 세월 동안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힘든 고비를 넘어갈 때마다

작고 쓰러지고 버려진 쓸모없는 고사된 나무일지라도 건너기가 어려워라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말 못 할 이야기와 사정 하나둘씩 어깨에 짊어지고 가며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가슴아픈 사연 하나쯤 묻어두고 살며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마음 한편에 슬픈 사연 하나쯤 품어 살며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말하고 싶은 말과 함께 사연 꺼내 놓고 싶어 하며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가슴 한편에 숨기고 싶은 사연 동종처럼 딸랑딸랑 바람에 실려 살아가고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숨겨 놓은 이야기 때가 되면 누군가에게 꺼내놓고 싶어 하며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그냥 아무 말없이 살아가는 것이 이유가 이유일 때가 있다


그러한 것을 하나둘씩 보따리처럼 헤어지고 풀어헤쳐 놓으면 끝이 없는 사연들이 된다


어디에 간들 사연 없는 사연이 없고

어디에 있든 사랑 없는 사랑이 없으며

어디에 머물든 기다리고 떠나가는 삶 또한 없더라


향로봉에 오르면

탁 트인 시야와

시원한 바람과

구름을 달관하는 푸른 창공과

그 속에서 속세의 연을 이어주는 네가 있어


순백의 백치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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