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는 모든 것을 감춘다
- 꼭 살아있거라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너는 행운이냐
풍운아서 그러냐
운명이냐
그러면 타이밍이냐
운칠기삼이
너에게도 도착하였구나
가을이 되던 날
잡초 시즌에
처량하다시피 한
옆 동무가 칼날에 스쳐지나
추풍낙엽 떨어지듯 쓰러져간다
칼을 든 자
칼을 빼어낸 자
칼을 휘두른 자
칼을 베어낸 자
나무 풀들이
깨끗하게 청소되었으니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구나
시원스레 시원하다이다
슬프게 말이다
내 사랑하는
그대를 닮은 꽃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가을바람 모셔오지도 않았었다는구나
찬바람이라면
날리다 떨어지기라도 할 텐데
그래도
1년은 버티고
잘리지 않고 연명하게 되었구나
축하해야 할 일인지
다행스러워야 할 일인지
다음 해에 살아있을 때까지
꼭꼭 숨어라
그렇지 못하면
너는 내 모습을
나는 네 인연을
찾을 수도 볼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며칠 전에
산에서 나무 하나를 주워 들어
그 나무 이름을
생과사로 명명하였네
왜냐하면
한쪽은 죽은 나무인데
다른 쪽 살아있는 쪽이
죽은 나무를 감싸고 있었어
그 나무는 뿌리도 하나요
가지도 하나인데
몸과 영혼만이 나뉘어
연리지의 마음이 되어 갔던 그곳
그곳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충분한 마음이 되어갔던 그곳
그곳에서
우리 다시 시작하는 거야
그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2020.9.14 둔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