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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대의 철학 Dec 06. 2020

도선사 가는 길에서

- 삼도인

도선사 가는 길에서
- 삼도인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우이동 백운대 길 따라

접어드는 길목에

삼도인을 만나


삶의 철학에 대해 물어보았네


백운대 길 초입에

만난 노인이 대답하였네


도선사 가는 길이 이 길 이로이까


네 이길로 곧장 가면

그 길이 이 길이 되오


그러면

그 길에 오름이 있고

그 길 위에 내림이 있습니까


맞습니다


진정 오름이 있으려면

이 길 따라 걸어보아야 하오


그럼

제가 가야 할 길에 오름이

몇 번 있습니까


그 길은 가지 못할 길이 아니니

이 길로 걷다 보면

행여 지칠 기세라도 보이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오


삶의 철학은

가던 길을 멈추지 않는 마음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는

버려야 하는 마음부터 이어이다


백운대 길 도입에 만난

노승이 대답하오


도선사 가는 길이 저길 이오


내가 내려온 길에

이 길 따라 내려오니

나 역시 두 길로 접어들었지 뭐요


그래도

내림의 길은  어디를 행하여도

언젠가는 만나지 않겠소


그것이 단지

쉽고 어려움의 차이와

옳고 그름의 차이와

길고 짧음의 차이와

험준하고 안하고의 차이일 뿐


크다고 하면 클 것이오

작다고 하면 작은 것이

보이는 세상의 눈이 되어가오


삶의 철학은

오름과 내림의  차이일 뿐

차이는 매번 그대로 올 시다


마지막 오름 길에

세 갈래 길이 나와

이번에는 어느 누구없고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를 헤매게 되었소


이윽고

두 도인을 발품 병풍 삼아

당당하게 오름이 되었던 그 길에

마지막 길이기를 바라며


새벽을 지나

아침을 맞이하기까지


그 숲 속엔

겨울 초입이라

지나는 이 없고

겨울 동면에 접어둔 길목이라

한 노송만이 갈림길에 서있었네


이윽고

나는 보았네

나는 들었네

나는 느꼈네


노송은 말이 없고

세월도 말이 없나니


그  깊은 뜻을

감히 바람만이 안다고

자랑하지 말라하네


구름도  쉬어가다 보면

그곳을 지나리오

태양이 비추는 곳이라면


언제나

가야 할 길의 마음과

머물러야 할 마음들과

뒤돌아서서 바라보는  마음들이

모두 하나이니 말이오


노송은 죽지 않았소

노송은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았소


노송이 그곳을

못내 지키고 지켜온 연유에


단지,

오랜 화석의 마음이

굳어 지켜온 것뿐이라면서


단지,

오랜 세월의 풍파 속에

자연스레 삶이 녹아 스며들어

오름과 내림의 갈 길에

이정표가 될 수 없었을 뿐이라는 것을


다가올 눈보라 속에 묻어난

하얀 갈라진 등가죽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하리라 여기려오


2020.12.6 도선사 가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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