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갈대의 철학 Dec 31. 2020

잘 가거라

- 잘 있거라

잘 가거라

- 잘 있거라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적악산에 올라보소

저 멀리 눈 덮인 산야에


그리운

고향 향수에 취해

떠나올 때 떠밀어 주는 이에게


그만 그만 그만

쥐너미재 고개에 넘나들지 못할

한 타령은  이제는 그만 넋두리하오


배 곪습니다


어이 한 숟가락 떠서

떠나가게 하소서


어 너머 머나먼 길

넘나들어 왔소이까


이 곳을 지날 때는

옛 적악사

내 등살 쥐 등살 되어오니

조심하시오


그나마 가지고 있던

못 미더운 마음까지

빼앗겨 가니 말이오


그 등살 

삼천 곡자  못다 채운 곳간

어딜 가나 바람의 흔적은

그 날을 잊지 않게 하더이다


하여 떠나가는

 나그네에게

지쳐가는 이에게 고하오


그대 떠나온 발자국이

무어라

탓하라

고행의 흔적이 남더라도

떠나지 못할

그리움도 남겨두지 말고 떠나


뒤 따라온 발자취에 묻어난

소똥구리 군더더기 한 살에

풍겨온 풍미에

건져볼 마음이라면


덧없는 마음 하나 건져볼 심산은

일찌감치 다가올 해에게

던져줌이 어떠하오


곳이 아련히 잊지 못할 

기억의 메아리가 되더라도

설령 그곳에

다시 얽매이더라도

모두 잊기에 충분하지 못하더라도


러나

이것 하나만은

잘살고 먹을 수 있었다고


그날의 회상은

늘 축제 분위기


나는 나는 나는

고기는 없어도 되오


고기 굽다 냄새에 취해

배곯아 터져도

그 숯불 향기와 연기에 심취해

그만 서서히 연기처럼 사라질지 모르오


너는 너는 너는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예사롭고 애처롭다 보이지만


그 뒤에 숨은 야성의 본능에

충실히 따르고  

슬프게 하니 말 이외다


왠지 아오

우리에겐 빵과 음악만이

살길이니 말이오


지는 해에게 고하오

뜨는  해에게도 말하리오


올해가 저물었다고

새해에 해가

다시 떠오른다는 것을 

늘 잊지 않길 바라오


새해가 밝아온다고

새해에 떠오른 해가  

어제의 그늘에 가린 마음을


영원히 태양빛이 

비추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도 말아 주오


이곳을 지나는 이에게 고하오

이곳을 지키는 이에게 말하오


이곳에 머무 이에게 

이렇게 큰소리로 불러주오


잘 있거라 태양아

잘 가거라 태양아


오늘의 지는 마음은

내일의 뜨는 마음을 지니게 하였지만


네가 멈추지 아니할 것을

나 또한 멈추지 아니할 것을

나그네 발길이 이방인이 되어가도


지난 걸어온 영혼은

늘 네 발길 따라 멈추는 곳이

언제나 내가 쉴 곳이 되어가니 말이다


달래

2020.12.31  치악산 자락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이 오기 전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