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악산 영원사 가는 길에
무너진 성 (城) 무너지는 마음(心)
(치악산 영원산성)
- 치악산 영원사 가는 길에
시. 갈대의 철학
천 년을 기다려온 네 모습에 반해
만년의 돌담 길을 걸어왔어야 하였는가
돌아오지 않는 마음을 치악의 한 자락인
치마 바우 처마 밑에 묻어두고
돌아오지 못하는 양 계곡을 사이에 두고서
어느 하나 두 손 자락에 매어놓지 못한
한이 서려있구나
경복궁의 경회루가
구중궁궐 궁녀들의 돌담길이라면
덕수궁의 돌담길이
연인들 사랑의 돌담길일까 서도
영원산성의 무너진 옛 성길이
지나온 과오의 오랜 네 모습이라면
이름도 모르고 네 발자취도 없는
차마 오르기 조차 민망할까 하더이다
부끄러움이 앞서는 내 마음이야
다시 찾은 네 성토 길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내 발걸음이 네 발취 쫓아 오르는 마음이 아닌가 싶더구나
너의 사연 한 번쯤은 들어줘야 하지 않겠느냐
물어봐도 들어보아도 이 산천 초야에
오랜 세월 네 목소리와 함께 해왔거늘
지금에 올라서야 잠시나마 너를 안다는 것이
가히 하늘이 매서울까 두려운 감도 없지 않으니
예전의 내 귓가에 스치는
기구한 역사의 산물들만 이 산에
공허하게 메아리만 되어 되돌아 올뿐
너의 발자취 따라 이 곳을 떠나왔건만
나를 반기는 너의 400계단 앞에
오르는 마음보다 더 애달프다
그날에 있음 직한 너를 생각하며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며
그때 밤새 치악을 걸었던 기억들에 스쳐 지난다
너를 12년 만에 다시 맞이하는 것이
사랑하는 이를 곁에 두고
먼산 바라보는 내 심정과 같은 것이 아닐진대
그리움이 밀려오는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이라고 할까
찾아온 세태 속에서
너에 대한 그리움들이 잔뜩 묻어나고
함께 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더구나
그렇게 울고 나면 속이라도 후련할 텐데
말없이 천년고도를 지켜온 것이
울어봐도 소용없고
차라리 너의 마음에 쌀 한톨이라도
들어갈 마음의 웅덩이라도 있었으면
그날에 그렇게 밤하늘 별빛들이 나린 언덕에서
너의 숨소리 너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기도
한시적 네 곁을 지날때
그때의 사랑은 네 마음 따라 흘러간 사랑이요
그곳을 지났을때의 사랑은
나의 마음이 변했을때의 마음 이었더구나
왠지 그날들이 서글피 울어오는 것은
밤의 적막에 휩싸인 채 네 곁을 옆에 두고
떠날 수 밖에 없는 내 처지가 몰골이더이다
밤하늘 은하수 길 따라 흘러 떠나온
너의 운명의 장난들을 밤새워 이 밤을 지키는
너의 수호신들과 함께 합장하며 노래를 부를 수 있을 텐데
너를 만나면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무슨 말부터 건네야 하는지
오랜 세월 발이 묶여
오고 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이곳에서
영원사의 풍경(風磬) 소리만이 내 안의 너를 위로해주는 오랜 벗이 되었더구나
간혹 지나는 산 짐승들의 울부짖는 소리도
멀리 들려오는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저 하늘의 울림소리조차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애석 하다마는
그 누군가 오랜 세월 같이 동행도 없었으니
한낱 스쳐 지나는 바람소리와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리들이 전부 인 양하는
네 모습을 기다리며 바라볼라치면
오랜 빛바랜 퇴색된 돌무덤의 그림자들 속 이끼들이
그날에 우리들의 잔상들을 기억하게 만들어가는구나
너를 다시 찾아오는 마음이
떠나오는 무거운 발걸음도
내 등짝에 실려 떠나오는
배낭의 무게보다도 못하는지라
전날 소풍 가던 마음으로
근심반 체념반 하는 심정으로 다가서는
너에 대한 나의 무심한 배려가 되어 달라고 하는
나의 이기적인 욕심된 마음이
네 곁을 지나칠 수 밖에 없게 만들게 말았더구나
너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두 눈은 그날의 흔적을 지우려 두 눈멀게 했고
두 귀는 그날의 아픔을 잊으러 두 귀 잃게 했네
그날의 바람의 흔적은
어느 못다 이룬 석공들의 이야기로 다시 꽃을 피우지만
대대손손 내려오는 업보야 애써 지우려 한다지만
너의 못다 이룬 무너진 성을 쌓기가
천 년을 지탱해 온들 무너지는 마음 앞에
다시 성을 이루려 하는지
영원산성 가는 길은
금대계곡 20 십리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치악의 깊고 깊은 울창한 숲길을 지나면
영원히 이곳에 갇히게 될 것만 같은 영원 계곡을 만나게 되고 네게 다가서는 이유가 된다
때로는 가다가 자연에 심취해 혼취해 방황하다가
때로는 유리알 속의 내 마음보다 더 맑은 공기와 맑은 물소리가 옥구슬 굴러가듯 바우에 부딪혀 가면
남대봉에서 흘러내려오는 여러 물줄기들의 합세에
치악의 매력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니 말이다
영원사 가는 길에 다다르다 보면
이내 한쪽은 익숙한 길에 묻어나며
다른 한쪽 길은 예전과 같이 먼산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심정이다
갈림길이 나온다
한쪽 길은 치악 상원사 가는 길이요
왼쪽 길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영원히 잠들 것만 같은 영원사의 영원산성이 숨쉬어 있는 곳
잠시 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대웅전 처마 끝에 풍경(風磬) 소리가 서로 호흡을 맞추듯 제각각 바람의 흔들림에 소리를 맞춘다
예전에 이곳은 대웅전만 덩그러니 지나온
치악의 한 자락을 지키며
꺼져가는 마음을 달래어 주었지만,
이제는 한쪽 옆에 또 다른 불당을
목공들이 열심히 천공작업과 일일이 나무를 깎고 다듬고 이음각을 맞춰간다
그들의 쉼 없는 작업은 역시나 장인들의 몸짓이 가히 치악의 품을 더욱더 불사를 행할지도 모른다면서
동쪽을 바라보며
네 얼굴인양 맞이하는 내 모습은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기꺼이 마다하지 않음이다.
대웅전 앞뜰에서의 눈부신 아침햇살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의 의미가 남다른 것은
영원사 영원산성의 길로 쉽게 접어들지 못하는 것이
아직도 깨달음에 대한
반야의 전라 된 열반의 길은
그리 치악을 넘는 것 보다 험준하고 어려우며
천년 아닌 만년의 성심(城心)을 다 이루지 못하고 쌓을 수 없는데서 생기니 마음이니
그러한 마음을 가꾸고
이것을 지키는 것은
지금껏 무너진 성을 다시 쌓을 수 있는 근간이 되려하려오
잠들어 있던 그대 바람이 불어 영원사의 꽃 단청이
그대 가슴에 다시 온기를 불어 나비되어 떠나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