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와 순간

- 말하지 말자

by 갈대의 철학

위기와 순간

- 말하지 말자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위기의 순간을 잘 이겨냈다고

지나간 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도

말하지 말자


가을바람 불어온다고

가을을 미리 기다려왔다고

계절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도

말하지 말자


위기의 순간을 잘 넘겨왔으니

머나먼 망망대해의 바닷길에

돌아온 연어의 숙명처럼 여기어

떠나간 사랑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단정 짓지도

말하지 말자


위기가 순간이 아니었다고 말한들

운수대통이라고 말한들

순간이 지나갔다고 한숨 돌려

무용담을 수도꼭지 틀듯이

참을성 있게 줄줄이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말자


밥풀 같은 잔정이 남아있다고

남아있는 연정의 지난 마음이

봄맞이하듯 새살 돋아난다고

계단의 끝이 보이니

천국의 계단에 오를 수 있다고도

말하지 말자


나의 선택은 늘 위기가 있기에

지금에 이 자리가 있었다고

정상에서 전체를 바라보았다고

이미 예견된 가능성에 대해서

희망을 읽었다고도

말하지 말자


위기의 순간을 잘 버터 왔으니

내일이 오늘처럼 될 거라고

떠나온 물길에

지난 마음도 따라 흘러간다고도

말하지 말자


큰 물줄기를 잘 막았다고

작은 물줄기가 보이지 않아도 된다고

무척 다행스럽다고도

말하지 말자


위기의 순간은

그대를 기다리지 않는다

위기의 순간은

매회 다른 유형으로 찾아오니까


마치 따뜻한 손위에

눈이 녹아내려 녹듯이

원초적인 마음은

늘 사라지지 않고 변하지도 않는 거야


위기의 순간이 지나가면

또 다른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겠지


순간은 위기를 만들고

또 다른 기회를 만들고 말지


위기는 언제나

준비된 자에게

시험의 무대가 되어갈


순간은 언제나

위기를 방어하는 자에게는

관중 없는 무대가 독백이 되어가듯

무대는 곧 모험이 되어가니까


인생을 모두 담을 수 없으니 말이다.



2021.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