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떨어질 때

- 낙엽들의 만찬(晩餐)

by 갈대의 철학

낙엽이 떨어질 때

- 낙엽들의 만찬(晩餐)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가을은

낙엽 물들어 떠나간 그리움이 생각나게 하고


가을은

낙엽 떨어져 잊혔던 추억이 되살아나게 하며


가을은

그대 머릿결 따라 흩날려온

낙엽의 바람이 되어 떠나가게 한다





낙엽 다지고 나면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리


낙엽 한 두 개 떨어질 때

그리움이라고 불러보고 싶었다


낙엽이 더 이상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몹쓸 가을바람에 뿔뿔이 흩어져 버릴 때쯤

제 갈길로 날아가는

철새들의 고향으로 나는 날아가련다


애써 붙들려고 했던 마음도

이제는 그리움도 떠나보내야 시간들 앞에

얼마 남지 않을 성난 파도와 암초에 좌초되어

어느 외딴 기슭에서 만나면

네 봉분일랑 벗하여 그곳에 잠시 쉬어가리라


너의 마음은 떠나는 시간의 분배에서

빌헬름 텔의 사과에 갇혀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늘 만날 듯이 못 만난다


꿈같은 세월들은 처마 끝에 매달린

서리 맞고 찬바람에도 버틸 수 있는 용기가

내게는 아직도 남아있을까


이제는 정리할 이별의 시간들에

다음 기약을 알리는

12번의 종소리가 울러 퍼지면


매달린 낙엽

거미줄에 걸린 낙엽

나뒹구는 낙엽

비에 젖어버린 낙엽

바람에 날아가는 낙엽

중력에 떨어지는 낙엽

하얀 눈에 덮여버린 낙엽


낙엽들에 최후의 만찬이 끝이 나면

나도 너도 다음이라는

기다림이라는 미명 하에

절체절명의 말을 하지 않기로 하고

남겨두기로 하세


2021.11.7 치악산 영원사 가는 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