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녀 끝에 내리는 비
-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소리
추녀 끝에 내리는 비
-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소리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가을비 옷깃에 스며들다
추녀 끝에 떨어지며 튀어 오르는
빗방울의 나신이여
이른 아침 적막을 깨우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고요한 산사의
풍경소리를 찾아 해매 도는
가을비에 젖어들다
어디선가 들려오듯
추억의 향수에 각인된
한가로운 애처로움이여
추녀 끝에 내리는 빗줄기에
아랑곳하지 않을
도도함의 몸짓이여
고고한 자태를 잊혀 온 듯
한치 대오의 흐트러짐을
의식하지도 않은 채
자각의 함몰된 소리에 이끌러
내리는 비에 적셔올 때면
가을 풀벌레 울음소리만이
더욱 까마득히 내리는 빗줄기에 갇혀
헤어 나오지를 못하게 하는구나
참회하지 못해
이곳을 떠나지 못해 유랑하는
유희의 분신들이여
계곡에서 힘차게 들려오는
물줄기 소리가
그대들 안식처인양
극락왕생의 번민을 떠나가게
할지를 몰라도
단지 이곳이
오랜 수행의 도량으로 세월을 견뎌온
어느 노승의 해탈의 염불만이
석가의 부드러운 입가의 미소를
서려있게 만들었으니
곳곳에 정토 되어 맺힌
추녀의 끝에 떨어질
한 방울에 미련의 마음만이
무량수전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 대신 가을 빗소리가
떠나지 못할 마음을 더욱 부채질하여
세속을 잊히지 못하게
만들어 가는구나
2023.8.28 청계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