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우산 속을 걸을 때면
- 처마 끝에 맺힌 마음
가을비 우산 속을 걸을 때면
- 처마 끝에 맺힌 마음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가을비를 사랑하는 자
가을단풍을 기다리지 말자
나는 가을비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럴 가치가 없다
다 익어가는 벼이삭을
쓰러뜨리게 만들고
나로 하여금 점점 깊은 나락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보다
구슬구슬 구슬 피게 내리는
가을비에 젖다 보면
하얗게 내 머리 결에 내리는
흰 눈 내리는 겨울날을 기다리게 하고
나를 떠난 이유를
너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쏴아아 쏴아아
소낙비 되어 내리는
그해 여름날
그러면 나는
내리는 비에 젖어도 아프지 않을
여름 장대비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좋을 테니 말이다
가을비 내리는 거리에
한 처마 끝에 떨어져 맺힌
물방울에서
나는 가을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흰 겨울에 사랑이 얼어붙을
기다리는 마음도 가져본다
그리고
추운 겨울이 오면
그 자리에서 수정 고드름이 되어 맺힌
너의 맑은 수정의 눈물에
나의 사랑은 떠나간 것을 알았다
이윽고
태양에 녹아내리는 네 눈물에서
나의 아픈 가슴에는
그날 이후로
그곳에 한 사랑의 꽃이 다시 피어나
그와의 사랑을 꿈꾸기 시작한다
2023.9.13 가을 소낙비 내리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