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사랑비
- 갈대비 눈꽃비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가을비는 외로운 비
우산 없이 걷다
우연히 누군가
시나브로 다가오면
살포시 우산을 받쳐주길 바라는
인연과 만남의 비
가을비는 고독한 비
여름 내내 적셔와도
열정의 사랑을 식혀두지 못한 채
가을에 내리는 비에 젖을라치면
어느새 쓸쓸한 뒤안길에 남은
미완성의 길을 걸어온
이별과 작별을 고하는 비
가을비는 갈대비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내리는 비를 피하지만
여름날 장대비에 쓰러지도
다시 일어나는 너였기에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에
네 눈물인지 내 핏물인지
상처를 아우르고 씻겨주는
위로와 위안의 비
가을비는 사랑비
가을비에 젖어 갈대꽃이 피어나는
너를 바라볼 테면
만추날 흩트러지며 흩날릴 너를
차마 바라볼 수가 없어
다음 약속을 기다리는
그리운 마음을 달래주는 비
가을비는 눈꽃비
겨울비에 네 머리에 눈이 쌓여갈 때
나를 위로해 줄
가을비 우산 속을 걷다 보면
어느새
너를 한없이
애처로이 바라볼 수밖에 없어
단풍에 물들어 바람에 떠나가는
그리움 한 점에
긴 겨울날 설화꽃을 피우고
어쩔 수 없는 마음 한 자락에
지난 추억에 젖어 저절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너는
긴 겨울을 이겨낸
봄에 살갗을 돋우어 허물을 벗고
지난 허울을 잊힌 채
봄비에 상처를 보듬어 가는
아주 여린 대나무 순이 오르듯
스스로 네 삶의 연속성을 부여해 가며
점점 나를 닮아가는
가을비는 사랑비
2023.8.26 시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