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한 자락에
- 떨어지는 미학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가을비 한 자락에
계곡의 운무가
신내림 칼 춤 시위하듯
너울성 파도처럼 널뛰다
가을비
구슬구슬 내리는 구슬비
구슬 피게 울어 제쳐야
떨어지는 미학의
네 눈물을 이해하다
가을비
보슬보슬 보슬비
아기 솜털처럼
네 살결에 타들어가는 부드러움
내 코의 치명상을 입힌다
가을비는 이슬비
한 점 없이 불어오는 바람
내리는 비에
쓰러진 내 어깨를 적시우고
네 존재의 가벼움은
이 가을을 더욱 채찍질하다
이무기 용천하듯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제 살을 깎아지고 게거품 훑듯
바위에 쏟아지는
계곡의 웅장한 물소리에 바위 가르고
더 이상 아파하지 않을
숙명 또한 가를수 밖에 없는
우리의 만남과 인연 또한
그러하다
살면서 슬프지 않았던 날들이
어디 있겠느냐
때론,
너의 슬픔을 다 헤아리지 못해
이별이라는 순간이 와도
떠나지 못했던 날들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한 톨의 정이
너에게서 남아 있다면
이듬해 피어나는 아지랑이가
나의 조그마한 뒷 텃밭에
춤추듯 새싹이 돋아날 테고
아직도 갈 곳을 잃어 헤맨
운무에 갇혀 떠날 듯이 보일 듯이
바위 끝에 매달린 노송의 마음이
곧 나의 마음이 되어가다
2023.9.27 치악산 영원사 가는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