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따러왔다

- 치악이 단풍에 물들다 2

by 갈대의 철학

가을을 따러왔다

- 치악이 단풍에 물들다 2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치악이 단풍에 물들어 오면

나는 나의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했던

기다리지 않는 마음이

되어 가기로 하였습니다


샛바람 살랑살랑 불어오는

그대 치맛자락이

나풀나풀 뭍에 흔들릴 때도


내 마음 흔들어 놓지 못해

떠난 그대였어도

나는 기다리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마파람의 험준한 태백산맥

계곡 사이사이

사잇길 타고


불어오는 바람의 위용이

훼방을 놓고 넘나들어와도

못 찾을 님이 아니었기에


치악산 비로봉 바라보며

넘나들던

옛사랑의 고갯길도


굳이 애써 기다리지 않는

사연이 되어가는 것은

아리랑 길을 염려해 두는 마음이

되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미더운 마음이 앞서서입니다


하늬바람 불어오는 계절에

꽃바람 타고

연지 곤지 찍어 보여주며

떠나간 님소식도


붉게 물들어 가는 치악의 단풍에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던

그대 마음도


어느새 입술에 묻어난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치악 단풍인양 하며

돌아온다던 그대도

나는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여린 마음에

치악산 종주길에 우연이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대 인양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그저 스쳐 지나는 인연이

또다시 만남이 되어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은

늘 이곳을 지나는

신들의 장난으로 다가옵니다


치악에 단풍이 물들어 오면

나는 지난 산 정상에서

하지 못한 말들을

오랫동안 보물 감추듯

용기 내어 꺼내놓으려고 합니다


단풍보다 더 진한

사랑을 하고 싶다고 말이에요


윗바람 불어오는

초겨울이 다가오면

그 많던 단풍의 마음은

모두 떨어지고 날리어

다른 세상을 꿈꾸겠지만


이것만은 잊지를 않기로 했어요


책갈피에 꽂아둔

붉게 물들인 치악의 단풍을

곱게 접어들고

님 오시는 발길에 물어 물어

떠나간 치악산 넘지 못한 바람

한 점일랑 벗하여


원통재 넘나들던 바람이 잠시

이곳을 쉬어갈 때면

나 또한 못다 한 청춘을

이곳에서 붙잡지 못한

원통한 마음을

달래어 보기로 말이에요


님 오시는 먼발치서

바람의 장난으로 흔들릴

나뭇가지 사이로 움직임들을

그대인가 싶어


지평선 끝이 어딘 줄 모르고

한 없이 그곳을 바라보며

기다림에 지쳐

그리움을 달래어 가고 있는

이 고개 길목 나루터의 마음을


그대를 그토록

사무치게 하는 원동력도

나의 마음을 달래어 가기에

부족함의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치악의 가을에

만추가 오기 전에

당신과의 단풍 같은 사랑을 꿈꿔요


그대 사랑

단풍 같은 마음을

그대 마음

단풍 같은 사랑을


치악에 단풍이 내려오기 전에

나는 다시 그대와


소싯적 봉숭아 물들인 사랑을

치악의 단풍에 물들일 사랑으로

다시 가꾸어 갑니다


2023.10.7 치악산 하프 종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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