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겨울에 피어난 꽃

- 겨울에 태어난 마음

by 갈대의 철학
모르시나요. 다비치

겨울에 피어난 꽃

- 겨울에 태어난 마음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봄산에 올라보았다


봄꽃이 좋아

봄산에 오르니

여기저기 봇물 터진 꽃들에

바라보기 눈코 틀 새가 없어라


해가지도록

산의 초입만 들락 말락 거리다

진작에 갈 곳을 못 가고

마음을 둘 곳을 잃어버렸네


여름산에 가보았다


여름꽃이 좋아

모든 마음 벗어던진 채 떠나와

가다 말다 쉬어가는 계곡마다

풍월을 읊조리다


시원한 계곡

낙화수에 발을 담그고

떠나온 시름에 탁주 한잔 걸치니


마음은 이미 저 하늘 구름 벗 삼고

떠가는 구름 한 조각 따다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떠나네


봄 여름산을 업고

가을산에 올라보았다


가을꽃이 좋아

울긋불긋 피어난 꽃들에

시샘을 할 사이도 없이


바람 불어 봄여름 꽃들은

바람 잘 날 없듯

미쳐 준비 없는 이별에

꽃들은 저마다

다음 생을 기약하니


일찌감치 가을 숲 속 길

접어들기 전에

월계관을 씌운 채


벗어버리지 못해

생의 길목을 넘나드는

어느 나그네의 발걸음은

고갯마루 사연에

나 홀로 넘는다


쉼 없이 부르지 못해

꽃다운 꽃이라 부르지 못할

단풍길 따라 걸어가는

님의 발길이 되어준


가을 산의 꽃은

진정

그대의 마음이 아니었나니


겨울산에 가보았다

겨울에 입문의 서


사계절 으뜸인 꽃 중에 꽃

너의 이름을 불러본즉


눈꽃

상고대

눈바람 불어 준 눈사람


그래도 난

너를 이름 없는 꽃으로 불러 본다

너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중간적인 존재


눈이 내리는 겨울산에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은

신들이 잠든

고요한 숲 속을 깨우지 않는다


눈 위의 설원에 불어오는

눈보라에 갇힌

설인의 마음이 되어


산천초목 얼어있는

산의 위용 앞에 신들조차

깨울 수 없는 위대한 포문은

언제나

눈과 바람의 몫으로 남긴다


신은 떠났어도

그곳에 가면

언제나 기다리는 마음 하나 있으니


떠나간

겨울철새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네안에서 찾았음이다


2023.12.19 치악산 향로봉 가는길에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