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진 기억들
돈키호테
- 사라진 기억들
시. 갈대의 철학
“모든 준비를 갖추고 나자. 씻어버려야 할 불명예, 바로잡아야 할 부정, 고쳐야 할 무분별한 일, 개선해야 할 폐단과 해결해야 할 부채가 있는 이상 하루라도 지체하는 건 세상에 대한 손실이라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으므로, 자신의 의지를 실천에 옮기는 데 더 이상 머뭇거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무더운 7월의 어느 날 동도 트기 전에 로시난테에 올라탔다. 자기 생각을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그는 조잡한 투구를 쓰고, 방패를 들고, 창을 거머쥔 채 마당 뒷문을 통해 들판으로 나갔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것이 너무나 쉽게 이루어진 게 무척이나 만족스럽고 기뻤다.
그러나 들판에 들어서자마자 무서운 생각이 엄습하여 하마터면 이제 막 시작한 계획을 그만둘 뻔했다.
그는 자신이 정식 기사가 아님을 기억했던 것이다…………….”
재치 넘치는 돈키호테가 드디어 고향을 떠나는 이야기 중에서……..
세상의 끝 [ The End Of The World ] 노래 가사처럼
나 돈키호테여
그대 여정의 길 끝은 가까워져 오는가
그대의 꿈이 다가설수록
나의 희망도
나의 이상도 쓰러지나니
자신의 미련함과 어리석음은
어디를 두고 왔어야만 하였는가
방황과 고독을 향해
비로소 눈을 떴어야만 하였는가
고향으로 돌아와 잘못을 뉘우치고
조용히 세상과 이별을 고하여만 하였는가
그대의 꿈이 있어 행복하였나
꿈을 좇아 찾아 헤 메이던 기억을
더듬었어야만 하였는가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좋지 않을거라고
외쳐 불러보고 싶었는가
세상이 뭐라 하여도 그대의 가슴에 불붙은
열정과 정열은 어디로 가고
비로소 조용히 눈을 감아
죽음으로서 속세를 떠나야만 했었는지
대신해 전해 달라하는 것이 무었이었더냐
그대가 말하고 불러보는 것이
무엇의 의미를 남겨두려 함인가
그대의 숨쉬는 곳은 결국
세상을 한 바퀴 돌아오는 것에 그치며
세상과 조용히 작별의 여정길에
사랑의 이별 길이 함께 하였는데
마치고 말았더구나
결국에
나 자신이었구나 돌아오는 것이
그대의 호위무사는 어디를 두고
산초가 늘 벗인양 하였던 것도 못 미더웠더냐
아무 쓸모없는 먼지 투성의 오래된 갑옷과
창과 방패
그리고 칼과 로시난테도
꿈과 허망과 먼지에 불과한 것이었던 것을
그대의 이상과 반대였던 이데아를 꿈꾸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대를 두고
세상에 달관한 그대를 그 누가 뭐라 하리오
멀리 노스탤지어처럼 꿈꾸는 바다와 같이
그 씁쓸함을 영원히 기억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는 것인가
하지만
나 돈키호테도 흐르는 세월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피할 수는 없었더구나
세상을 유유자적 떠나는 네모습에 반해
풍자하는 인자함과
사랑의 놀림과
사랑을 찾아 떠나는 그대가 있어
행복하고 슬퍼할 겨를도 없었더구나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네 마음의 고향길에
마지막 마음의 여정길이
그대 옆에 고이 잠든 너였으면 바래보는구나
나 돈키호테여
아직까지 그대가 있어 행복하였노라고
그리고 나 또한 사랑이라는
두 글자의 커다란 굴레에서
잠시 쉬었갈 수 있는 너의 여력이었으면 한다
갈대의 철학 중에서……
카라스코라는 학자가 돈키호테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이곳에 한 굳센 기사가 누워 있도다.
그의 몸은 비록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나
드높은 용기와 열정은 영원할 것이다.
그는 세상을 우습게 알았으나
마음만은 어린아이처럼 맑았도다.
이제 긴 여행을 마치고 참모습으로 돌아갔으니 우리들의 영웅, 돈키호테여, 편히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