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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간 소년

- 산으로 간 소녀

by 갈대의 철학

바다로 간 소년

- 산으로 간 소녀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산골짜기 소녀는

어느 날 밤바다가 그리워

계곡으로 떠났다


그 소녀는

산으로 떠나 십이선녀탕에

멱을 감는 선녀의 옷을 가져가

은하수 물결을 타고 내려온

한 선녀 옷을 대신 입고


바다로 떠난 소년을 찾으러

날갯짓하며 바다로 향해

다시 떠나갔다


이윽고

산으로 떠난 한 소녀는

오랫동안 하늘로 날아가

더 이상 날개를 펼칠 수 없어

어느 이름 모를 섬에

도착하였다


그 섬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라는 것을

알았을 때


홀로서기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떠나온 뒤에야

후회를 한들 늦은 마음을

달래어 가기도 전에

운명의 장난을

서서히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이곳에서 살아가야 할 큰 위안을

이 섬에 나 아닌 다른 사람

아니 다른 나처럼

날개가 있어도 날아갈 수 없는 존재


닭처럼 생긴

낭떠러지에 집을 짓는

바다 직바구리가 있었다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깎아지른 절벽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너의 처지는 지금

나와 다를 바 없는 동병상련의 길


캄캄한 밤이라 보이지 않던

마치 기적과 같은

현실이 일어났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고

나는 그제야 안도와 희망을

너에게서 되찾았음이다


그것은

섬이 뭍으로 이어진

다리가 있었으니


천리포 숲에서 바라본 그 섬이

바로 바다로 떠난 한 소년의

더 이상 날 수없어 정착한 섬


그는 그 섬을

낭새 섬이라고 불렀고

한 소녀는 하루에 두 번 그를 만났다


그리고 어느 날

깎아지른 절벽에 지은 집은

풍랑과 거센 파도에 의해

저 멀리 바다로 떠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듬해

천리포 앞 숲에는

빨간 해당화가 피어났는데

나는 그 꽃을

바다로 떠나간 한 소년의 마음을

기리기 위해


오늘도

하루에 두 번 뭍에 건너와

뜨거운 태양아래

빨갛게 피어나는 그 꽃을 바라보며


수평선 끝으로 멀리 떠나간

낭새가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그 꽃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천리포.낭새섬
닭섬.낭새섬

2024.7.31 천리포 수목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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