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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대의 철학 Aug 06. 2024

입추(立秋)라 말하기엔

- 가을이라 부르기엔

입추(立秋)라 말하기엔

- 가을이라 부르기엔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입추라 말하기엔

아직도 내 마음은

떠나온 봄의 청춘을 감춘

부드럽고 뜨거운 사랑을

추억한다


마지막 남은

여름 몸짓을 기다리며

하나 남짓 남몰래 숨기고

가지고 들고 온

가을을 배웅하러 떠나가고 있다


그러기에 너무 오랫동안

익숙해진 너와의 지난여름 사랑

기다리고 또 기다려와도


사랑할 때는

밀려오는 파도가 되고

사랑이 떠나갔을 때에는

언제 그랬냐 듯이 태연한 척

말없이 떠나는 썰물이 되어가듯


사랑의 아픔은  파도가 되고

사랑의 흔적은 은빛 백사장

사랑의 상처는 바다가 품는다


보고 싶고 그리워해 걸어온 길

나는 그 계절에 사랑의 노예가

이미 되어간


그 길 위에

불어오는 바람 한 점에

나는 익히

가을을 기다려 왔음을 기억하고


닷바람 불어오는

어느 부둣가  항구에

만선의 기쁨을 하나 가득 안고

출항하는  어부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저 멀리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가

어쩌면 너와 나와의 이정표


만선은 우리 사랑의 증표

나는 이름 모를 떠나가는 배에게

안부와 안녕을 말하고 싶지 않는


가을이라 부르기엔

아직도 너의 마음은 덜 성숙한

매미의 절규를 애처로이 바라보는

지난여름의 사랑을

모두 다 알지 못하는


품에깨어나 눈을 띄지 않은

작고 여린 어린 새가슴


훗날

서풍의 갈바람이 불어오면

너는 일찌감치 기지개를 켜고

해지는 서쪽바다로 떠나는

어느 바다새의 활공짓하고


저 푸른 창공의 허공을 무한히

바라보며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기나긴 언약을

네가 떠남으로써


이 여름의 빈 둥지를 털고 떠나간

어느 작은 바다새의 마음을


나는 다가올 이 가을의 문턱에서

너를 다시 기다리는

서풍에 펄럭이는 고깃배의

만선의 깃발이

네 치맛자락에서 흐느낄 때

이미 가을은 내 것이 아니었다

20205.7.30 만리포 모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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