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진松津
외솔봉(제천 작은 동산 가는 길에서)
- 송진松津
시. 갈대의 철학
오랜 세월 아픔 품고
묵묵히 그 자리에 지켜 온 것이
무엇이었더냐
비단,
나를 맞이하기 위한 것도
아니요
네 모습이 구슬프고 처량하여
꽃이 피는 계절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도 아닐진대
바람 타고 온 너의 흰 마음도 아닌
노랗게 물든 송화가루를 휘날리며
나를 이곳에 오게 만든 이유가 있었더냐
동산에 올라서면 이곳이
옛 뒷동산에 오르는 멋인 줄 알았다마는
즐비한 낙락장송 숲을 지나다 보니
이곳이 과연 작은 동산인가 하는 게
제 눈을 의심케 하는구나
한 번은 병풍을 드리운 듯하는
바위에 놀라고
한 번은 외솔봉에 올라
병풍을 드리운 듯하는 청풍호에 반하고
한 번은 암반 위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것에
구름이 아닌 들 바람이 아닌 들 어떠하랴
식민 항거에 민족의 고통을 함께한
꿋꿋한 너의 너스레 한 세월 탓인가
만인의 외톨이가 아닌 외솔봉에
이름 모를 의로운 소나무 외솔아
네 모습은 하얀 매화꽃을 닮은
유관순 누나를 닮았으며
네 인상은 불의의 항거에 투척한
안중근을 닮았구나
너희들은 어찌할 말을 잊었느냐
너희들의 순국으로
멀리서 지켜보는 이들 때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인가
오랜 세월 말 못 할 사연을 두고
벙어리 냉가슴 시린 앓이 하는 마음을
몸에 베인 칼자국의 상처가
나의 심장을 도려낸 듯
일제 식민 찬탈에 항거한 침묵으로
민족의 혼과 살을 에어 쌓여 왔구나
혈 대신 민족의 상처된 마음을 아물리며
송진松津을 바르고 스스로 난 상처에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듯 함께하는 너는
역시 의자의 군자요
민족의 정신적 지주의 금강송 대들보라
외솔봉에 외솔아
꿈 많았던 청춘아
네 꿈이 컸던 만큼 나의 꿈도 커져가고
네 꿈이 사라진 날 내 꿈도 사라진다네
나의 청춘이 봄에 피어난
창꽃의 붉은 마음을 곁에 두어도
꽃다운 처녀시절에
한 떨기 꽃으로 낙화된 꽃 보다도 못하거늘
어이 이렇게 보냈나마 서도
너의 일송정에 비할 데는 아직 못되구나
외솔봉에 일송정아
너는 오랜 세월 모래고개 넘나드는 이에게
길목을 지키며 이겨레의 등불을 불 밝히며
힘이자 지킴 목이 되었다
자랑스럽고 인내를 달관해온
너를 잊지 잊지 않으마
그래도 오랜 세월
진달래가 네 벗이요
바람이 흔적을 남기지 않으니
누가 너의 아픈 상처를 보듬어 주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