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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광부의 꿈

- 사랑은 검은색

by 갈대의 철학

어느 광부의 꿈

- 사랑은 검은색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어둠 뚫고

지하 2킬로미터 광산

또 다른

세상에 인연과의 만남


산소통 없이

마스크 한 장에

목숨 건 사투의 현장에서는


오늘도 가족을 위해

이마에 흘치던 땀은

피가 되어 흐르고


한줄기 빛이 비치는 것은

아직도 꺼지지 않는

사랑의 심장이

살아있다는


당신과 나의 다짐이

되어갔습니다


헤드렌턴 하나

의지한 채

석탄을 캐는

광부의 꿈은


만선 하나 가득 기쁨에

채굴 석탄을 싣고 나오는

당신의 행진이었습니다


한아름 한 보따리

아름드리 한 광주리에

머리에 이고 지고 떠나온


사랑님의 새참 기다리듯

마음은 이미

안방을 드나들고 맙니다


오늘도

목숨 건

갱내의 석탄 채굴 현장에서


또 다른

세상과의 문을 이어주며

한없이 끝없이 써 내려가는

막장 인생의

역전드라마 승자를 쓰듯


당신의 갱부가 채굴한

석탄을 싣고 나오는 광차는

어둠을 뚫고 한 줌의 빛을

싣고 나오는 마지막 행운은


가족의 실낱 같은 소원

되어갔습니다


오늘도 무사히

두 손 모아

간절히 안전을 기원하며

살아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철부지 막둥이의 재롱둥이에

그 고난은

갱내 막장 무너지듯

사그라지고 맙니다


마치

이산가족 상봉되듯

당신의 만남은

하루하루가

고달픈 인생 역전에


막장의 사투를 뚫고

전장의 혈투를 뚫으며


고단한 몸을 이끄는

어느 병사의 녹슨 철모처럼

막장 인생에 먼저 떠나간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한 채


마지막 광차를 기다리며

타고 나오는 애절한 마음은

가족의 끈을 이어주는

사랑의 탄차가 되어갔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어둠 속 한 별빛보다

더 빛나는 막장에서의

당신의 두 눈은


어둠을 밝히는

사랑의 등불이 되어갑니다


당신이 벌어다 준

피 같은 돈은

두 눈에 닭똥 같은 눈물이

피눈물 되어


쉼 없이 메마름이 없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밤새 당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리 재간둥이들의 잔치는

어머니의 정성스럽게 지어 놓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윤기 나는 밥은

밤도 지새울

자식들의 뜬눈의 기다림이

되어갔습니다


재잘거리며 밥 달라

새끼 제비 마냥

히루 세끼 입을 벌릴 때마다


당신은 그 맛으로

그 멋으로

인생 역전을 막장에서

지내셨습니다


남들 모양새에

입에 풀칠하랴

늘 걱정하시던 당신


입에 거미줄 칠까

당신이 늘 사랑하는 것은

가족의 안녕뿐이었습니다


그 험준한 산맥을

당신은 갱내 탄차가

들어가지 않는 곳에서

더 깊숙이 들어가셨습니다


그렇게 내게는

당신의 사랑은 빨강이 아닌

검은색이었습니다


잠시 후,

저희 아버지는 어디 있어요

같이 타지 않으셨어요


마지막 버스는 떠나가고

구급차 앰뷸런스 소리만이

요란하게 울리며

광산으로 급히 올라갔습니다


늘 당신의 뺀또(도시락)를 들어주던

나의 어린

고사리 같은 손은


더 이상 나는

당신의 아무리 씻기어도

지워지지 않는

당신의 검은색 손을 잡을 수 없었고


늘 내손을 고이 잡아주시던

당신의 검은색 사랑의 손도장은

그날은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의 사랑은

언제나 내게

빨간색이 아닌


하얀 화선지 위에 그려진

한 점의

마지막 획을 수놓는


붓의 현란함도 아닌

마지막 끝에 이어진

마침표는

사랑의 끈을 이어주는

마지막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당신의 검은색 사랑은
밤하늘 어둠을 지키고 불 밝히는

떠돌다 지친
길잃은 자의
영혼의 안식처의 길잡이가
되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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