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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대의 철학 Aug 15. 2017

설악산에 가거들랑(설악 백두대간 종주길에서)

-  님 소식 좀 전해 주오

[2017.8.12.토/설악산 대청에서의 저녁 노을]

설악산에 가거들(설악 백두대간 종주길에서)

-  님 소식 좀 전해 주오


                                             시. 갈대의 철학[蒹葭]


설악에 가거들랑

살방살방 다녀오소  

오르는 내내 혼자 오른다고

너무 흥에 겨워도 하지 말고

그렇다고 삼수갑산이 바로 여기로구나 하여

나를 잊고 떠나왔다고도 말하지 마소


나 홀로 산중에 어중이떠중이 되어

길을 잃고 방황하며 떠나는 나그네처럼

방살방 다녀오


설악에 가거들랑

님 소식 좀 전해주오


하나는 떠났을 때 마음에

함께한 마음이었

다른 하나는 떠난 마음이

그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

그리운 마음이었


설악에 들리걸랑

어떤 마음이었는지 말해주오


예전에 이곳에서

떠나왔던 마음이

아직까지 서성거리지 않고

바람의 나라에 머물러 있었는지를

살펴주오


설악에 오르걸랑

사랑타령 고개 타령일랑 하지 마소


사랑했던 마음을 주고

정만 남겨주고 떠난 이유를

그때는 차마 눈빛만 봐도 좋았잖소


미움도 그리워할 사이도 남겨두지 못하고

운무에 갇혀 헤매었던 마음을 두고

잠시 쉬어 가라 더디 가라 하며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사랑

스쳐 지나 구름에 잠시 머물며 쉬어가던 그곳

곳을  그냥 지나치지 말아주오


설악에 오르걸랑

이것만은 알아주오


기서 일등이 꼴등이오

꼴등도 일등이 된다오

그러니 힘내어 열심히 오르라고

말하지 마소


오르다 보면 가는 이에게

말 한마디 건네주다 보면 더디 가기도 하며

힘들면 가다 쉬다 반복하여

지나가는 새들과 구름과 바람과 벗 삼다 보면

아예 엉덩이를 털썩 내려앉아

요산요수하다 보니 시 한 편 써야 되지 않겠소


설악에 도착하걸랑

해발 1244m의 봉정암에 들려보소


산사에 높은 대웅전 적멸보궁에 들려오는

어느 산사의 풍경소리에 이끌려

이곳으로 인도하니


이곳이 천하의 요새요

반야의 시작이요

해탈의 끝에 오르는

설악 봉정암[鳳頂庵 ]에 오르는 길이 외다


설악 봉정은

고행의 길이며

수행의 길이며

정진의 길이요


막바지 봉정골 500미터 남겨두고

고행의 끝 쓴 맛을 느꼈을 때

비로소 참 열반에 들어온즉 하여이다


설악에 머물걸랑

이것만은 꼭 잊게 해 주오


3대가 덕을 쌓아야 본다는 일출을

여기서는 한 세기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노을이 있잖소


그러하니 일출이 떠오르지 못하였다고 

올라왔던 한을 풀어야 된다는

넋두리는 그만두시오


그러한 마음을 늘 지니고 다니면

떠오르는 마음은 언제 두고

지는 석양을 어찌 곁에 둘 수 있겠소  


설악에 도착하거든

이 마음은 늘 변치 말아주오


이곳에 서면

자연의 진리와 순리도 변할 수 없게 하거늘

신의 선과 악도 바꿀 수없게 하거늘

인간의 마음으로도 가지고 얻지 못하는 것이

창조의 신이라고 어찌 들어줄까 외면하더이다


구름 뒤에 운무 속에 갇혀있는 해를 두고

떠오르지 못할

기다리지 못할 그리움에 대한

애석한 마음만 가진다고 신세타령만 하면 어떡하겠소


구름 타령 비 타령 하늘 타령은 그만하고

다 모든 게 내 탓이오

다 모든 게 자연의 이치이거늘

그 누구를 원망하고 사뭇힌 사랑을 읊조린다고

떠나간 사랑인들 돌아오겠소


그래도 지는 마음과

떠오르는 마음을 사이에 두고

정초 없이 걸어왔었던 지난날들이 좋지 않았겠소


저 물결치는 바다보다

잔잔히 흐르는 그대에게 줄듯 말듯한

기다림의 여명이 있어서 좋을 때가

더 매력적이었고 설렘 이어이다


오늘을 저버린 만큼 지는 이의 마음이었을까

아님 떠오르는 이의 마음을 두고 기다림이었을까


한시름 두 시름 숨고르기도 하면서

소청에서 바라볼 때의 마음과

용아장성 저편에 지는 석양의 마음과

동해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천불동의 협곡을 넘지 못하는 운해의 마음과

홍해가 모세의 기적을 낳았다면  

화채능선 사이 바다 갈림길에 놓여있는 다리는

천상의 다리요 오작교이지 않나 싶소


대청에 올라 공룡능선 사이로 넘나드는  운해가

가히 폭포의 절경이 떨어지는 것만이

나이아가라 폭포의 정수라 여길 줄 모르지 오만


여기서 떨어지지 않는 아리랑 고개 넘어가듯 하는

저 바다 결에 흘러 떠나오는 바람따라

안개속에 드리워진 운해의 폭포가

더 아름답고 절경이며 비경이오니 말이오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구름을 타고 바람을 가르니

과연 천국으로 들어가며 입문하는

비문의 빗장이지 않나 싶소


자, 그대의 빗장을 여시오

이곳에선

자아도

그대의 마음도

모두가 무아의 지경에 도취된

혼돈의 극락왕생이오


할머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니

우린 한배요


가방을 벗고

해우소에서 마음을 비우니

이제 것 올라온 것이 모두 다 허사로다


설악에 가거들랑

이것만은 알아주오


구름 떠올랐다고

능선에 바람이 구름 몰고 온다고

그 뒤에 숨겨진 것도

감춘 것도 아니라오


바람 멈추고

구름 멈추고 나면

떠오를 거라 생각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대 마음 이잖소


알 수 없는 것도 사람의 마음이야

구름  걷히는 것도

태양의 마음이라


산을 다녀봐야지만

산의 높이를 알 수가 있고

바다를 가봐야지

바다의 깊이를 알 수 있으며

운해 속을 헤매어 보아야

그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더이다


사람들은 모르오

설악은

운해도 아니요

운무도 아니며

바람도 아니며

일출도 아닌

저녁 석양을 바라보는 마음이라는 것을


산에서 만남은 인연이 아니어도 좋소

그저 스쳐 지나는 바람과 안개처럼

그러한 만남이 더 새롭더이다


그곳에서 잠시 머물렀고

가졌던 마음을 헤어질 때 업보라 여기며

다음 훗날 다시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날 언약된 약속이겠지만

 

산에서 마주오는 사람 보면 반가워라

잠시 가는 길목을 막지 않고

비켜 가면 나도 덕분에 쉬어가고 좋았어라


배낭도 쉬어가고

쓰러지지 않게 받쳐주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면

지는 이의 마음일까

마음을 안타까워하였을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

뜨는 이의 마음일까


말못하는이 넷 친구

서로 눈빛과 손짓으로 교환하며

바람이 불어 구름도 쉬어가라

서북능선을 넘지 못하네


삶도 빵처럼 오픈에 굽고

인생도 비빔밥처럼 비벼 먹고 해야 하오


그러하다 보면 어느새

마시다 만 물 한 모금과

술 한잔에 빚어낸 우정이


이 깊은 정초 없는 산야에

 기를 쓰고 올라왔어야만 하였는지를

그대는 모르지 오만


나를 두고 떠난  발길 돌리게 만든 설악은

항상 그 자리 멀리서

어서 다녀오시게나 하며

아련한 손짓과 발짓이

또다시 운해 속에 사라지게 하니 말 이외다

          

[2017.8.12~13일 설악산 백담사~영시암~봉정암~소청~중청(1박)~대청~한계령 종주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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