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미 타락(墮落)
장미 성(城郭)의 몰락(沒落)
- 장미 타락(墮落)
시. 갈대의 철학[蒹葭]
그대여
장미의 마음을 잃어버린
사방이 가시로 둘러싸인
장미의 성城을 본 적이 있나요
행여 혹시나 하는 여린 마음 때문일까요
알아도 모른 척하시는
그녀가 위험에 빠질까 봐서
그녀를 알아도 모르는 체 해야만 하는
장미를 닮은 그녀를 아시나요
그대가 내 곁을 떠나갔을 때
어느 이름 모를 한 장미 성城에 갇혀버린
한 공주가 살고 있었습니다
난공불락의 이 성城에는
그녀를 지키는 수호천사인
장미의 가시 군사가
그녀를 호위하여
이제껏 그녀를 위해 도와준 수많은 사람들은
가시에 찔리어 목숨을 내놓아야만 하였습니다
장미의 성城에 도착하였을 때
이미 겨울이 시작되었고
장미의 군사들은 몸에 박힌 가시를
성城 곳곳에 눈과 함께 올라오지 못하게
장미 가시로 둘러싸인 성곽으로 진을 쳤습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추위와 매서운 겨울폭풍을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때 이른 겨울 지나 이른 봄을 맞이하고
장미의 성城에는 하나둘씩 잎이 돋고
그녀를 구하기 위한
또다시 장미꽃이 피기 전에
장미의 가시가 더욱더 단단하기 전에
장미 줄기를 타고 성곽城郭을 오를 수 있는 기회가
곧 전개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곽城郭에 둘러싸인 채
하나둘씩 하늘에 매달린 동아줄 인양
장미 넝쿨을 붙잡고 올랐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장미의 군사들의
최대 무기인 가시에 찔리어도
다친 사람은 있어도 죽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장미의 군사들과 격전 속에
장미의 성城에서 그녀를 구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시작되었고
그녀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 헤매기 시작하였습니다
장미의 성城은 몰락되었지만
그녀가 있을만한 곳에
아무리 헤집고 찾아본들
그녀의 소식은 아직도 없었습니다
무너진 장미 성城에는
장미 가시에 찔러 죽은 이들과
이들로 인해 흘러내린 피는
봄비에 씻기고 땅으로 스며들어
이듬해 다시 찾은 장미 성城에는
그녀를 상기하게 하는 장미 빛 보다 더 붉은
아름다운 장미 성채城砦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남아있었습니다
그녀가 떠나간 후에
다시 옛 모습을 찾은 장미 성城 동쪽 끝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에는
그녀를 닮은 어여쁜 장미 한 송이가
바다를 멀리 바라보며 외로이 피어났습니다
훗날에 그대가
내 곁을 영원히 가버렸을 때
장미가 남기고 간 마음은
나의 타락을 부채질 하기 시작하였고
성채 위 바닷가 언덕 위에 장미 한 송이도
모질게 불던 그해 겨울에
쓸쓸히 그 모습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내가 아는 그대는
장미가 피기 전에
이미 떠날 채비로
나의 장미를 타락의 나락으로 떨구고 갔습니다
그리고 장미가 지기 전에
이미 나의 마음은
나의 장미의 몰락을 예견하기 시작하면서
그대는 아직
장미의 불완전체로 남아 있길 원했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가시덤불 숲으로 이루어진
장미의 성城에 오래전 갇혀버린 뒤였습니다
그대의 장미는
지금쯤 어느 마음을 두고 떠나갔나요
[2018.5.27 둔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