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저에게 있었던 일과 앞으로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저는 비록 남자로 태어났지만, 성전환 수술과 법적 조치를 거쳐 지난 10년간 사회적으로 여성으로 살아온 트랜스섹슈얼, 즉 의료적 성전환자입니다.
저는 지난 10년간, 트랜스섹슈얼은 물론이고, 트랜스젠더로서도 아무런 입장을 내놓은 적이 없습니다. 어떤 논란이 불거져도, 저는 그것을 전부 다 무시했습니다. 유튜브에 트랜스젠더 관련 내용이 혹시라도 나오면 어김없이 "관심 없음", "추천하지 않음" 옵션을 사용해 철저하게 그 세계와 멀어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온갖 이해할 수 없는 "젠더" 시리즈가 미디어에 등장했지만 그 모든 것을 무시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범한 여성으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치 애초부터 여자로 태어났던 사람처럼 살아왔습니다. 실제로 거의 가능할 뻔했습니다만, 더 이상 이걸 무시하기 힘든 지경까지 와버렸습니다.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 잘못이었던 걸까요?
처음 비수술 성별 정정 논란이 나올 때도 겁은 났지만, 그렇다고 목소리를 내면 제 삶이 망가질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때는 트랜스 커뮤니티와의 완전한 단절만이 과거를 모두 없었던 일로 만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실제로 저는 과거가 없는 사람처럼 살아왔습니다. 영화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의 주인공 지현처럼요.
그렇지만 과거는 없었던 일로 치부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점점 남자로 살던 시절의 저와 지금의 저를 완전히 분리하여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치 옛날의 제 삶 자체가 완전히 타인의 삶처럼 느껴졌어요. 저 남자애는 누굴까... 이런 감정이죠. 저는 제 모든 삶을 하나로 통합하고 싶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트랜스 개념에 대하여 잘 몰랐습니다.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어요. 그냥 살면 되는 거였으니까요. 그래서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그래, 아예 트랜스젠더로서의 나를 받아들이자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에 대하여 욕했습니다. 여성의 권리를 침해하고, 여성을 모방하는, 그 옛날 블랙페이스와 같은 행위를 하는 여성 모욕자. "우먼페이스"일 뿐이다. 저는 그 말에 반박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여성을 모욕하고 싶어 한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결론은, 제가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부른다면, 필연적으로 여성에 대한 자의적 정의가 동반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도 그걸 피할 수가 없었어요. "나는 여성이다, 왜?"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일단 여성을 생물학적인 무언가가 아닌 다른 것으로 정의하는 과정 없이 거기에 답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때부터 저 자신을 "진짜 여성"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미소지니의 최종판처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입니다.
그때쯤 우연히 일본에서 GID들과 트랜스젠더들이 대립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일본에서 GID란, DSM-IV에 수록된 성동일성장애의 영문 진단명인 'Gender Identity Disorder'의 약어로, 의학적으로 성동일성장애를 진단받고 성전환수술 등을 거쳐 사회에 녹아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됩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성전환증이 장애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DSM-V에서 개정된 이름인 성별 불쾌감(Gender Dysphoria, GD)이나, ICD-11의 성별 불일치(Gender incongruence, GI)보다 기존의 명칭인 GID를 선호합니다. 트랜스젠더는 주로 성전환의 의료종속화를 반대하며, 선언만으로 누구나 자신의 성별을 결정할 수 있는 셀프아이디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일본의 트랜스젠더들은 "죽어버려! GID"라는 표현까지 쓰며 성별의 자기 결정권을 외쳤습니다. 저는 GID들의 목소리에 공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수술을 하고 여성으로 살게 된 이유는 남자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몸 자체가 저를 부정했기 때문에 진정으로 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항상 불가능했습니다. 오랜 기간 고민했고,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서 결국 트랜지션을 시작했던 거예요. 일본의 GID들은 스스로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들은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며 공존의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GC(Gender Critical) 계열의 사람들이 "그래봐야 너희도 남자일 뿐이다"라고 말하며 조롱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며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15분 진단 젠더 클리닉 퇴치', '성범죄를 일으킨 GID의 호적변경 취소 및 진단기록 추적' 등의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관점을 한국에도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여성을 자의적으로 정의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정신질환에 대한 배려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 그렇게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 그건 제 모습과 일치했습니다. 처음 이 관점을 한국에 소개했을 때 많은 여성분들께서 지지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반발이 나온 건 다름 아닌 트랜스 커뮤니티에서였습니다. 그때의 저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제 입장은 다분히 트랜스 메디컬리즘적이었고, 현대 트랜스 권리 운동의 주류는 젠더 이데올로기였습니다. 그들은 제 존재를 불편해하고 배척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물론 반발이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메디컬리즘을 말했을 때 지지해 주는 사람들은 100% 여성들뿐이었습니다. 트랜스들은 아무도, 그 누구도 제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성기 디스포리아가 없는 비수술 트랜스젠더는 이미 트랜스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들을 배척했으니 저는 차별주의자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힘들었으니까, 정체성의 혼란에 견딜 수 없어서, 몸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시작한 게 제 트랜지션입니다. 그걸 떼어놓고 생각하는 건 저에게 있어서 너무 이상했습니다. 다양성이요? 아니요. 성별 불쾌감이 없다면 그건 그냥 다른 경험입니다. 특히 남성기를 포함한 자신의 몸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사람들은 저와 같은 걸 느끼는 게 아닙니다. 전혀 비슷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여기서 물러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이제 저 자신을 트랜스섹슈얼이라고 부릅니다. 트랜스섹슈얼이란 일본의 GID와 같은 의미지만, 서양권에서 보다 전통적으로 쓰였던 용어입니다. 기존에는 의료적 성 전환자만을 뜻했던 이 단어가, 최근에는 젠더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며, 병리적 현상인 '성별 불쾌감'을 겪고, 의료적 성 전환만을 실제 트랜지션이라 생각하는 사람으로 통용되는 추세입니다. 저는 이것이 제 경험을 온전히 담는 표현이라 느꼈습니다. 제가 겪은 고통은 젠더보다는 신체에 대한 문제였기 때문에 더 납득이 갔습니다. 젠더를 바꿨다기에는, 법적 성별을 제외하고는 제 행동과 생활은 전혀 바뀐 게 없습니다. 바뀐 건 몸입니다. 거기서 모든 부수적인 변화가 따라옵니다.
저는 트랜스젠더가 아닌 트랜스섹슈얼입니다.
이제 한국의 트랜스젠더들은 성전환 수술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은 비수술 성별정정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심지어 GC의 말까지 인용합니다. "남성기를 제거하고 성기성형을 받는다고 여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의 말을 더 붙입니다. "그러나 젠더 정체성이 이미 여성이었기 때문에 원래부터 여성이었으며, 수술은 사회의 강압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이게 지금의 한국 주류 트랜스의 입장입니다. 저는 이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성기 수술을 받는다고 해서 성별이 바뀌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고, 오로지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사회가 수술을 강요한 게 아니라, 수술한 사람에 대한 배려로서 성별정정이 시행됐었다. 나는 진짜 여성이 아니라고 맹세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쾌감을 다스리기 위해 성전환수술은 필수적 의료조치였고, 바뀐 외형으로 이미 여성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법적 성별 정정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다."
셀프아이디를 주장하는 젠더 이데올로기는 이런 입장을 철저하게 무시하며 성전환수술의 성별 불쾌감 완화 조치로서의 측면을 완전히 제거하고, 법적, 사회적 강압으로 리브랜딩 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의 최종적인 목표는 섹스를 해체해 그것을 젠더로 대체하는 것이며, 생물학적 성별 기반의 법과 제도를 젠더 정체성 기반으로 개편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생물학적 여성에 대한 보호조치는 여성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에 대한 보호조치로 대체됩니다. 저는 그런 활동에 결코 동조하고싶지 않습니다.
아래는 2023년 2월 25일 비수술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신청 허가에 대한 기사 일부분입니다. 주류 트랜스젠더계의 입장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재판부는 트랜스젠더 당사자 의사에 반하는 수술을 강제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 또 “당사자 의사에 반해 생식능력 박탈과 외부성기 변형을 강제한다면 인간의 존재 이유이자 가장 기본적 욕구인 재생산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박탈하게 된다”고 했다. [...] 장서연 변호사는 14일 “이제 더 이상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법적 성별 정정을 위하여, 원하지 않는 수술을 강요당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이번 결정이 다른 법원에도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 플랫팀 기자.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허가한 법원···“수술 강제는 인간 존엄 침해”, 2023년 3월 15일
이런 식이라면, 개인의 성별 결정권이 중시되기 때문에 철저한 정신과 진단의 필요성이 지금보다 더욱 무시되어 결국 사라지는 방향으로 이끌어지게 되며, 호르몬 요법과 성전환 수술이 단순한 미용요법으로 간주되어 보험 및 복지 적용에 대하여 권리를 요구할 수 없게 됩니다. 아래는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외국의 MtF 트랜스섹슈얼 당사자의 글입니다.
여기에는 곤란한 선택지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선택지 1 : 트랜스섹슈얼 치료와 수술은 전적으로 선택적인 것으로, 어떤 미용 성형수술이나 시술과 다를 바 없이 간주됩니다.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고, 즉각적인 의학적 위험이 없다면 누구나 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건강보험 혜택도 없고, 법적 성별 인정도 없습니다. 이것은 안면성형이나 모발이식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선택지 2 : 성전환증을 의사가 진단하는 의학적 상태로 간주합니다. 이 상태의 고통스럽고 기능을 저해하는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치료가 제공됩니다. 그리고 법적 성별 인정이 치료 효과를 갖는다는 논거를 형성합니다.
이 두 가지가 우리가 현재의 경로를 계속 따른다면 가까운 미래에 실현 가능한 유일한 선택지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의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 Laura T [@Laura_tee_mdgi] / ChatGPT 번역
이러한 두 요구의 충돌은, 트랜스라는 우산용어 아래 서로 상반된 두 부류의 사람들이 뒤섞여있음을 시사합니다. 외국에서는 어디서나 이 충돌이 상당히 격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왜일까요? 이상하게도 한국만은 모든 트랜스들이 젠더 이데올로기 아래 집결해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저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의 상황이 나아질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저는 어쨌든 평범한 일상을 지켜야만 하는 개인입니다. 제 삶 자체를 위협받으면서까지 이 행동을 할 동력은 단언컨대 저에게 없습니다. 저는 그냥 제 생각을 쓰고 있을 뿐이에요. 단지, 이런 주장을 하는 트랜스가 저 혼자이기 때문에 필요이상으로 주목받고 있고, 거기에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몇몇 여성분들께서 저를 지지해 주시는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지금은 그냥 한 분이라도 이런 제 생각에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 늘어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앞으로 저는 트랜스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공부한 글을 적으며, 대중들 사이에 퍼져있는 개념의 혼란을 바로잡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트랜스 논쟁이 왜 의미없는 다툼만 계속되고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하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플랫팀 기자. (2023).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허가한 법원···“수술 강제는 인간 존엄 침해” [기사].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article/202303151528001
Laura T [@Laura_tee_mdgi]. (2025). There is an unenviable choice being offered here… [Post]. X. https://x.com/laura_tee_mdgi/status/1937533944909496576
최초 작성 : 2025.6.25
일부 수정 : 2025.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