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존재가 되고자 했던 남성들
성별 불쾌감(gender dysphoria)이란, 자신의 생물학적 성에 대한 불만, 반대 성의 신체를 갖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타인에게 반대 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욕구를 뜻한다. 트랜스섹슈얼리즘(transsexualism, 성전환증)은 이러한 성별 불쾌감이 상당 기간 동안 변동 없이 지속되는 극단적인 형태로 정의할 수 있다 (Blanchard et al., 1985). 현재 남성의 성별 불쾌감은 2가지 주요한 형태로 분류할 수 있는데, 각각 동성애적, 자기여성애적 유형으로 명명되어 있다. 이 중에서 자기여성애는 매우 논쟁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자기여성애(autogynephilia)란, 자신이 여성이라는 생각이나 이미지에 성적으로 흥분하는 경향을 가리키며, 성과학자 레이 블랜차드(Ray Blanchard)가 처음으로 제안했다. 그는 이 유형의 환자들이 어린 시절부터 두드러진 여성성을 보이는 '동성애적(homosexual)'유형과 완전히 구분되는 병리적 특징을 가진다고 보았다.
블랜차드의 이론은 타당성의 문제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수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성전환자의 동기가 순수하게 정체성의 문제라는 기존의 관점과 대치될 뿐 아니라, 트랜스 여성의 일부를 단순히 성도착증을 가진 남성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나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전환한 트랜스섹슈얼(transsexual)이다. 10여 년 전에 성전환 수술을 마쳤고, 현재는 사회적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또한 나는 스스로를 자기여성애자로 이해하고 있다. 블랜차드의 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는 내 삶 전체를 의심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이론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이것이 사회적으로 수용될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블랜차드가 자기여성애를 성도착증으로 정의한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동시에 그는 이것이 성적 지향의 일종임을 강조했다. 마치 달의 뒷면처럼 가려져 있던 이 '지향'으로서의 측면이야말로 자기여성애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으나, 정작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대화의 당사자 중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생산성 있는 논의를 위해서는 이 측면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결국엔 불가피하다. 이 글은 그 이해를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설명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 성별 불쾌감과 관련된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기여성애는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그 모든 사례들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내 경험은 이 이론의 핵심적인 측면을 상당히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나는 90년대 지방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에서 유일한 아이였던 나는 동네 어른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놀이는 뒷산에 가서 고사리를 캐는 것이었다. 나는 5살쯤에 근처의 도시로 이사를 갔고, 거기서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다. 나는 양쪽 성별의 친구가 모두 있었다.
나는 여성적이라는 평을 듣던 아이는 아니었으나, 유난히 순하고 말이 없는 아이였다. 내 부모님은 지금도 내가 어린 시절에 너무나 얌전하고 거칠지 못했다는 말씀을 종종 하신다. 나는 남자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잦았다. 남자아이들이 장난감 총을 가지고 뛰어놀고, 반 대항으로 전쟁놀이를 할 때 나는 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 성격을 알고 괴롭힘 당할 것을 걱정하셨기 때문에 공부를 잘해 다른 아이가 우습게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내가 처음으로 여자가 되고 싶었던 때는 언제였을까? 나는 종종 5~6살 정도로 이야기하곤 했다. 선생님이 내 여성적인 면을 알아봐 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나잇대의 기억이 얼마나 정확할지 지금은 회의적이다. 보다 명확하게 내 바람이 행동으로 드러났던 시점은 10살 때였다. 당시 나는 집에 아무도 없을 시간대를 체크하여 습관적으로 여장을 하곤 했다. 나는 어머니의 옷을 입고 매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안방 화장실 거울을 쳐다봤다. 나는 거울 속의 내가 긴 머리카락을 가졌다고 상상하며, 스스로가 여자처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려 했다. (나는 매우 순종적인 아이였기 때문에 머리를 기르고 싶다는 마음을 실천한 적은 없었다) 당시 나는 어머니의 속옷도 입어보곤 했는데, 성기가 튀어나와 보이는 것이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나는 성기가 사라져 사타구니가 매끈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내 처음이자 마지막인 여장에 대한 기억으로, 이후 성전환을 시작하기 전까지 한 번도 다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강렬하게 존재해 왔다.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손을 모은 채 아름다운 모습의 여자가 되었다고 상상하곤 했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이며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지금 당장 저를 여자로 바꿔주세요. 제발요. 아멘" 물론 그런 기도가 이뤄질리는 없었다.
중학생이 되자 나는 목소리가 굵어지고 몸에 털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슬펐지만 그것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자아이들을 강하게 질투했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의 행동과 특성을 따라 하기 시작했고, 그중 하나는 글씨체였다. 심한 악필이었던 나는 반장이었던 여자아이의 글씨가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속 따라 쓰기 시작했고, 그것을 내 글씨체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부모님은 내 글씨가 남자답지 않다고 걱정하셨지만, 바로 그게 내가 원하던 바였다.
당시의 나는 확실히 성별 불쾌감을 앓고 있었다. 나날이 남성스러워지는 몸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고, 내 몸을 바라보지 않고 걷기 위해 고개를 살짝 들어 허공을 응시했다. 성기에 대한 거부감도 두드러졌는데, 성기를 끈으로 묶어서 괴사시키려는 행동을 반복했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진 못했다. 나는 매일같이 여자가 되기를 꿈꿨고, 교실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내가 여학생이라고 상상하곤 했다. 나는 성적 지향에서도 특이했는데, 누군가에게 끌린다는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또래 아이들이 이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전혀 이해가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께 이런 고민을 토로하며, 반 아이들의 변화를 이해할 수 없으며, 누군가와 사귀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성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나는 내가 남자로서 기능하는 것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내 성적 공상 속의 나는 항상 여자이거나, 여자가 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점을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내 성별 불쾌감은 너무 심해져서 학업에까지 지장을 줄 정도였다. 나는 내가 여자라는 가정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남성에 대한 끌림을 약하게나마 경험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동성애혐오적인 욕설을 듣곤 했다. 게이라는 소문이 돌던 아이들이 내 주변에 찾아오기도 했는데, 그 아이들은 아마 내가 게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끌림은 너무나 막연했고, 여전히 어떤 성적 파트너도 만들지 않았다. 내가 경험한 남성에 대한 끌림은 꽤나 추상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주로 남자 친구들과 어울렸으나, 그 쯤부터 여자 친구들과 더 자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애적인 관계로 발달하는 경우는 없었다. 나는 여자들과 동성 친구처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이런 상태는 성인기까지 계속되었으며, 결국 극단적으로 심해진 성별 불쾌감으로 인해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트랜지션을 시작하게 되었다.
블랜차드의 이론은 기존 연구들에 대한 면밀한 재해석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몇 가지 주요한 관찰 결과가 그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자기여성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블랜차드 이전 트랜스섹슈얼 이론의 검토
먼저 블랜차드는 그 이전까지 존재하던 모든 남성 트랜스섹슈얼 유형론들을 검토했다. 블랜차드가 유형론을 만들기 전에도 많은 학자들이 제각기 다른 기준과 병리적 해석을 바탕으로 남성의 트랜스섹슈얼리즘을 분류했다. 트랜스섹슈얼 유형론은 대체로 성적 지향을 기준으로 구분되었다. 유형의 수는 분류 방식에 따라 적게는 두 가지에서 많게는 다섯 가지까지 다양하게 존재했고, 누가 진정한 트랜스섹슈얼인가에 대한 의견도 서로 달랐다. 그러나 주목할만한 주요한 공통점이 한 가지 있었다. 남성의 트랜스섹슈얼 유형론은, 어떤 학자가 어떤 병리적 이해를 기준으로 분류했더라도, 동성애적 유형을 다른 성적 지향 유형보다 더 일관되게 구별했다.
그가 다음으로 주목한 개념은 마그누스 히르슈펠트(Magnus Hirschfeld)가 사용한 개념인 오토모노섹슈얼리즘(automonosexualism)이었다. 히르슈펠트는 남성 트랜스베스타이트들을 성적 지향에 따라 다섯 가지로 분류했는데, 이성애적, 동성애적, 양성애적, 무성애적, 그리고 오토모노섹슈얼들이었다. 히르슈펠트는 오토모노섹슈얼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들은 자기 바깥에 있는 여성에게 끌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여성에게 끌린다" (Hirschfeld, 1948, p. 167). 이것은 자기여성애 이론의 개념적 토대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블랜차드는 커트 프로인트(Kurt Freund)의 유형론을 검토했다. 프로인트는 남성의 교차 성별 정체성(cross-gender identity)이 동성애적인 유형과 이성애적인 유형 단 두 가지만 존재하며, 교차 성별 페티시즘(cross-gender fetishism)은 거의 전적으로 이성애적 유형에게서만 나타난다는 사실을 관찰했다(Freund et al., 1982). 교차 성별 페티시즘이란, 남성이 스스로 여성이 되는 환상을 동반할 때 나타나는 성적 흥분을 말한다. 이 개념이 사실상 히르슈펠트의 오토모노섹슈얼리즘과 동일한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이 관찰은 오토모노섹슈얼리즘이 이성애성과 관련 있다는 말과 같았다.
블랜차드의 가설, 그리고 자기여성애의 개념화
블랜차드는 기존의 트랜스섹슈얼 유형론이 동성애적 유형들을 더 일관적으로 식별했다는 사실, 그리고 히르슈펠트가 오토모노섹슈얼리즘이라고 불렀던 교차 성별 페티시즘이 이성애성과 관련 있다는 관찰을 바탕으로, 양성애적 유형과 무성애적 유형이 실제로는 이성애적 유형의 변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저자는 이러한 하위 유형들이 이성애적 “상위 집단”으로부터 구분되는 것은 두 가지 서로 다른 과정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본다. 무성애적 트랜스섹슈얼리즘에서는, 그 기저에 있는 이상 현상인 교차 성별 페티시즘이 여성에 대한 성적 끌림을 압도하거나 그것과 경쟁하게 되어, 개인이 타인에 대해 거의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이성애성은 잠재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 양성애적 트랜스섹슈얼이 겉보기로 존재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은 다소 다르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개인들에서는 교차 성별 페티시즘으로 나타나는 성적 이상이, 여성으로서 남성과 성교를 하는 환상 속에서도 표현된다. 그러나 실제로 작용하는 성적 자극은, 진정한 동성애적 끌림에서처럼 남성의 신체 그 자체가 아니라, 남성에 의해 삽입되는 환상 속에서 상징화되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생각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상상하는, 혹은 경우에 따라서 실제이기도 한 남성 성적 파트너는, 여성의 의복이나 화장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되는 환상을 돕고 그것을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 Blanchard, 1985, p. 249
블랜차드는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트랜스섹슈얼들의 성적 지향에 따른 교차 성별 페티시즘 이력을 조사했다. 만약 그의 가설이 옳다면, 동성애적 유형을 제외한 나머지 유형들은 서로 간에 유사하게, 더 많은 페티시즘 이력을 가졌어야 한다. 연구 결과 동성애적 유형은 전체의 15%만이 여장과 관련된 성적 흥분을 인정한 반면, 이성애적, 무성애적, 양성애적 유형을 합친 경우는 73%에 달했다. 이는 통계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결과였다(Blanchard, 1985).
이 결과는 후속 연구(Blanchard, 1989b)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되었다. 블랜차드는 여성의 해부학적 신체를 가지는 것에 대한 성적 각성 이력을 측정하는 핵심 자기여성애 척도(Core Autogynephilia Scale)을 고안하여 4가지 성적 지향에 따라 결과를 분류했다. 마찬가지로 비동성애적인 세 집단이 동성애적 집단에 비해 더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블랜차드는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자기'를 뜻하는 접두어 auto-에 성숙한 여성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Gynephilia를 결합하여, 자기여성애(Autogynephilia)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기존의 오토모노섹슈얼리즘과 구분되는 점은, 이들이 외부의 대상에 끌리지 않는다는 측면을 분리했다는 점에 있었다. 사람에 따라 자기여성애가 완전히 이성애를 대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무성애적 유형), 비교적 잘 공존하는 경우 또한 존재했기 때문이다(이성애적, 양성애적 유형). 타인에 대한 끌림 정도는 비타인성애성(Analloeroticism)이라는 개념으로 별도 정리되었다. 비타인성애란 타인에 대한 성적 끌림은 거의 없지만, 성적 욕구 자체는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자기여성애자 중에서 내면의 여성이 외부의 여성을 완전히 대체한 경우, 비타인성애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자기여성애는 페티시즘인가?
자기여성애자들이 대체로 여러 가지 페티시즘적 흥분을 느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여장을 한 상태에서 자위를 하는 가장 잘 알려진 형태부터, 생리대를 사용하며 월경을 한다는 생각, 혹은 단순히 다리를 면도하거나 화장을 하는 행위까지, 여성성을 상징하는 모든 행위가 여성이 된다는 관념 아래 성적 흥분을 일으킨다. 때문에 블랜차드 이전의 많은 학자들이 남성 트랜스섹슈얼의 유형이 동성애적 유형과 그 외 페티시즘적 유형만으로 나뉜다고 생각한 것은 자연스러웠다(Money, 1970-1971; Buhrich and McConaghy, 1978; Freund et al., 1982).
그러나 만일 자기여성애자의 동기가 여성성의 페티시화에만 있었다면 블랜차드의 이론은 새롭게 제시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가 제안한 자기여성애 이론의 핵심은, 이것이 단순한 페티시즘을 넘어서는 현상이라는 점에 있었다. 이것은 블랜차드가 처음으로 자기여성애라는 단어를 사용한 두 편의 논문에서도 이미 분명하게 드러난다.
자기여성애라는 개념은 자기여성애적 남성들이 항상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할 때나 여성의 옷을 입을 때, 혹은 거울 속에서 크로스 드레싱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성적으로 흥분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사랑에 빠진 남성이 연인을 볼 때마다 항상 발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짝을 이룬 거위들이 끊임없이 교미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 Blanchard, 1989a, p. 323
자기여성애는 이성애, 동성애, 소아성애와 마찬가지로 성적 자극화된 대상에 대해 음경 발기로 반응하는 개인의 경향에 의해 편의상 지표화될 수 있지만, 그 대상과의 유대 형성(또는 그와 유사한 것)을 할 수 있는 능력 또한 포함한다. — Blanchard, 1989b, p. 616
즉, 블랜차드는 자기여성애를 단순히 여성성을 페티시화하여 성적으로 흥분하는 능력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런 행위를 동반할 수 있는 어떤 성적 지향상의 결함으로 가정했다. 이것은 자기여성애 이론이 히르슈펠트가 사용한 오토모노섹슈얼리즘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러편의 논문에 걸쳐 히르슈펠트의 오토모노섹슈얼리즘에 대한 묘사를 반복해서 언급한다: "그들은 자기 바깥에 있는 여성에게 끌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여성에게 끌린다" 블랜차드는 여기서 두 가지 가설을 도출했다.
자기여성애는 방향이 잘못 설정된 이성애적 충동이다
첫 번째는 자기여성애가 방향이 잘못 설정된 이성애적 충동이라는 가설이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동성애적 유형에 비해 비동성애적 유형에게서 자기여성애적 흥분이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아야 했다. 이것은 앞서 살펴본 연구를 통해 강하게 지지되었다. 비동성애적 유형은 동성애적 유형에 비해 교차 성별 페티시즘 이력을 보고할 확률이 높았고, 이성애적, 양성애적, 무성애적 유형은 이를 비슷한 수준으로 보고했다(Blanchard, 1985).
자기여성애는 정상적인 이성애성과 경쟁한다
두 번째 가설은 더 중요한데, 자기여성애가 정상적인 이성애성과 경쟁한다는 예측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첫 번째 연구를 통해 이미 그 윤곽을 드러냈을지도 모른다. 무성애적 유형이 교차 성별 페티시즘을 다른 비동성애적 유형만큼 많이 보였다는 사실은, 그들이 이성애성이 억제된 자기여성애자의 가장 순수한 형태라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블랜차드는 이 경향을 증명하기 위해 보다 정량화된 연구를 한번 더 수행했다(Blanchard, 1992). 만일 자기여성애가 이성애로부터 발생했으며, 동시에 이성애와 경쟁하여 이성애적 끌림의 수준을 떨어트린다면, 이성애적인 끌림(즉, 여성애적 끌림)이 가장 높거나 가장 낮은 수준에서는 자기여성애가 적게 관찰되고, 중간 수준에서는 높게 관찰되는 역 U자 형태의 양상을 보여야 했다. 블랜차드는 이것을 검증하기 위해 자기여성애의 수준을 측정하는 핵심 자기여성애적 척도를 포함한 8가지 경향에 대하여 여성애(gynephilia) 수준과 비교하였다.
연구 결과는 블랜차드의 예측과 일치했다. 핵심 자기여성애 척도(주로 여성의 몸을 가지는 것에 대하여 흥분하는 경향을 측정함), 그리고 자기여성애적 대인 환상 척도(여성으로서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찬사 받는 것에 대하여 성적으로 흥분하는 경향)는 여성애 수준에 대하여 역 U자 형태의 경향성이 관찰되었다.
이 결과는 자기여성애가 정상적인 이성애성과 경쟁한다는 가설을 지지했다. 블랜차드는 이것을 더 세분화하여 이 경쟁이 발달적 경쟁과 역동적 경쟁,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진다고 보았다. 발달적 경쟁이란 자기여성애가 성심리적 발달과정에 영향을 주어, 이성애적 자극에 대한 반응성에 영구적인 영향을 남기는 것을 의미한다. 역동적 경쟁이란 발달적 문제와 관계없이 이성애와 관련된 상황에 따라 자기여성애적 욕구가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자기여성애자들은 사랑에 빠진 여성이 있을 경우 교차 성별 욕구가 줄어들지만, 이내 격정적인 사랑의 감정이 줄어들고 보다 온화한 것으로 변화하면 다시 교차 성별 행동을 보이게 된다. 이것이 자기여성애와 이성애성의 역동적 경쟁이다. 블랜차드는 이 연구 결과가 발달적 경쟁을 반영한다고 보았는데, 일반적으로 연애에 성공하여 자기여성애적 충동이 가라앉은 시기에는 젠더 클리닉에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연구에서 블랜차드는 예상치 못한 추가적인 사실을 한 가지 발견했다. 복장도착적 자기여성애로 간주되는 트랜스베스티즘의 경우, 여성애적 수준이 가장 높은 부분에서 감소하는 경향은 보였지만, 그 정도가 아주 작았기 때문에 그냥 유지되는 것에 가까웠다. 블랜차드는 이 발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나의 연구 결과는 정상적인 이성애적 끌림과 경쟁하는 것이 트랜스베스티즘 그 자체라기보다는, 트랜스베스티즘에 흔히 동반되는 해부학적 자기여성애일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 Blanchard, 1991, p. 276
나는 이 결과가 많은 것을 설명할 잠재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자기여성애가 실제로 잘못된 방향의 이성애적 충동이라면, 트랜스베스티즘은 왜 이성애성과 경쟁하지 않을까? 물론 해부학적 자기여성애를 가진 사람들은 대다수 트랜스베스티즘의 병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페티시즘적 크로스 드레서들이 반드시 트랜스섹슈얼이 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자신의 성향을 이성애적인 관점에서 잘 바라본다는 사실은 현실에서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어쩌면 자기여성애적 성별 불쾌감은 트랜스베스티즘 그 자체와는 그다지 관계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블랜차드 또한 이 의문을 똑같이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기여성애적 남성 환자 238명에 대하여, 나체의 여성이 된 자신의 이미지에 가장 흥분하는 그룹(나체그룹), 속옷을 입은 여성이 된 자신의 이미지에 가장 흥분하는 그룹(속옷그룹), 그리고 완전한 옷을 입은 여성이 된 자신의 이미지에 가장 흥분하는 그룹(의복그룹)으로 나눠 성별 불쾌감 및 기타 요소들의 수준을 측정했다(Blanchard, 1993b). 첫 번째 그룹은 트랜스섹슈얼로, 두 번째와 세 번째 그룹은 트랜스베스타이트로 간주되었다.
연구 결과 가장 높은 성별 불쾌감은 나체그룹에서 나타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것은 블랜차드가 앞선 연구에서 이성애적 끌림이 해부학적 자기여성애와 경쟁한다고 추측한 것과 부합해 보인다.
이 연구에서 또한 예상치 못한 추가적인 사실이 발견되었다. 먼저 의복 그룹의 경우 젠더 클리닉에 찾아온 연령이 가장 높았다. 이 결과는 해부학적 자기여성애가 트랜스베스티즘의 심화된 형태라는 가설이 잘못되었을 수 있음을 나타냈다. 또한 속옷 그룹의 경우, 유의미하게 성별 불쾌감이 낮았으며,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높게 관찰되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지만, 블랜차드는 자기여성애자들에 대한 새로운 분류체계가 필요할지 모른다고 언급했다(Blanchard, 1991, p. 246). 여기서 우리는 적어도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알 수 있다: "자기여성애는 정상적인 이성애성과 경쟁하며, 여기서 자기여성애란 주로 해부학적 자기여성애, 즉 여성의 신체를 가지는 관념이나 이미지에 흥분하는 경향일 가능성이 높다"
자기여성애는 성적 지향의 일종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블랜차드는 히르슈펠트가 관찰했던 오토모노섹슈얼리즘을 기반으로 자기여성애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또한 이것이 내면을 향한 이성애이며, 동시에 외부를 향한 정상적인 이성애성과 발달적 경쟁을 한다고 추론했다. 연구 결과 이성애성과 경쟁하는 자기여성애는 해부학적 자기여성애일 가능성이 높았다. 블랜차드는 나중에 이것이 성도착보다는 성적 지향으로서 더 잘 설명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자기여성애는 성도착(paraphilia)보다는 성적 지향으로 더 잘 규정될 수 있다. ‘지향(orientation)'이라는 용어는 성행동과 연관되어 있으나 그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개인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성애자 및 동성애자 남성의 경우, 이러한 지향과 관련된 행동에는 구애, 사랑, 선호하는 성의 파트너와의 동거 등이 포함된다. 자기여성애자 남성의 경우, 이러한 행동은 의복, 호르몬 치료, 수술 등을 통해 자신의 성적 환상 속 이상적인 여성 이미지에 부합하는 외모를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포함한다. — Blanchard, 1993a, p. 306
자기여성애란 외부의 여성이 아니라 ‘여성이 된 자신’을 향한 이성애적 끌림이다. 이 점에서 보면, 자기여성애자가 보이는 성적 행동들은, 일반적인 이성애가 외부 대상에게 향하듯, 그 방향만 바뀐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기여성애란, 내면의 여성이라는 비전형적인 대상을 향한 성적 지향, 즉 성도착적 성적 지향(Paraphilic sexual orientation)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여성애적 성욕과 트랜스섹슈얼리즘은 서로 모순되어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자기여성애가 단순한 페티시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많은 트랜스섹슈얼들이 이 이론을 받아들이기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이것이 성도착이며, 자신이 여성이라는 생각에 대치되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개념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래, 많은 트랜스섹슈얼들이 자기여성애적 성적 흥분 이력은 인정하면서도 이 이론을 수용하지 않고, 대안적인 설명 방법을 추구해왔다. 나 또한 이 이론을 바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자기 자신이 성도착증을 가졌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군다나 인생의 많은 것들을 희생하여 성전환을 선택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자기여성애적 트랜스섹슈얼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속단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이들이 시도하는 성전환의 목적을 단순한 성적 흥분의 차원에서 설명하는 것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자기여성애적 트랜스섹슈얼들의 동기에는 분명 성적인 것 이상의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도 타당하다. 호르몬 요법과 성기절단은 성적 흥분을 느끼는 능력을 크게 훼손시킴에도 불구하고, 성을 바꾸고자 하는 욕구에는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성욕 상태가 되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블랜차드는 이런 모순에 대하여 중요한 언급을 했다:
자기여성애와 트랜스섹슈얼리즘의 병인을 연결하는 어떤 타당한 이론이든, 다음과 같은 잘 확립된 관찰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 비동성애적 젊은 남성들에서 성별 불쾌감은 보통 자기여성애와 함께 나타나거나, 자기여성애 이후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후에는 자기여성애적 성적 흥분이 약화되거나 사라질 수도 있는 반면, 트랜스섹슈얼적 욕구는 그대로 남아 있거나 오히려 더 강해질 수 있다. 이러한 병력 서술은 성별 불쾌감 환자들에 의해 흔히 제시되지만, 트랜스섹슈얼적 동기가 자기여성애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성을 획득하거나, 본질적으로 어느 정도 독립성을 지니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데에 반드시 자기 보고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다. 같은 결론은 외과적 거세와 에스트로겐 치료가 성별 불쾌감 환자들에서도 다른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성욕을 감소시키지만, 여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이나 그 역할에 머물고자 하는 결심에는 보통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시사된다.
위에서 언급한 발달적 순서는 자기여성애 남성들에서 특정한 정상적인 이성애적 행동들이 작동한 결과를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많은 남성들은 수년간의 결혼 생활 이후 아내에게서 느끼는 성적 흥분은 초기보다 줄어들지만, 여전히 아내에게 깊이 애착을 유지한다. 다시 말해, 일단 형성된 짝결속(pair-bonding)은 반드시 높은 수준의 성적 끌림이 지속되는 데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여성의 몸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이, 그 생각에 대한 성적 반응이 사라진 이후에도 지속되는 현상은, 두 사람 사이의 초기의 강한 성적 끌림이 대부분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을 수 있는 영속적인 사랑의 유대와 어떤 유사성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 Blanchard, 1991, p. 248
앞서 이야기했듯, 블랜차드는 이 개념을 처음 제안했을 때부터 자기여성애가 대상(여성으로서의 자신)과의 유대를 형성하는 능력을 포함한다고 말해왔다. 자기여성애적 트랜스섹슈얼리즘은 그러한 비성적 측면이 발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기여성애가 트랜스섹슈얼리즘의 주된 원인이라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이 비성적 요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몇몇 트랜스섹슈얼들은 자기여성애적 흥분을 불편하게 여기며, 호르몬 요법을 통해 그것을 제거하고자 한다. 다음 사례는 그런 측면을 잘 보여주고있다
나는 일부러 자기여성애를 덜 경험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여성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성적으로 흥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나를 깊이 무효화시키고, 성별 불쾌감을 유발한다. 나는 호르몬 요법을 시작하기 전에 '남자 몸에 갇힌 남자들(Men Trapped in Men's Bodies)'도 읽었고, 그래서 몇몇 서사를 읽고 정말 걱정이 되었다. 만약 내가 여성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지 않으면, 결국 남자가 되고 싶어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들어 몸이 떨릴 정도였다. 나는 자기여성애로 인한 성적 흥분이 사라지고, 그냥 여성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사실 예전에, 예쁜 드레스를 입고 예쁘게 꾸몄는데 성적으로 흥분하지 않았을 때 기쁨과 안도감에 눈물이 났던 적도 있다. 마치 무언가 사악한 것이 물러간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고, 앞으로도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주 명백히 성적인 맥락에만 스스로를 제한한다.
위 내용은 내가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고있는 외국인 트랜스섹슈얼 친구의 사례다. 그는 스스로가 자기여성애적이라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여성이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보다 강했다. 자기여성애자들의 이런 모순적인 경험은 버지니아 프린스(Virginia Prince)가 트랜스섹슈얼들을 비난하며 썼던 글, 「테스토스테론과 당신(Testosterone and you)」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크로스드레서를 살펴보자. 그는 여성적인 옷을 입을 뿐 아니라, 여성의 헤어스타일, 화장, 보석, 걸음걸이, 말투, 앉는 방식 등을 따라한다. 그는 그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잘 따라하려 노력한다. 사회적으로 여성성을 상징하는 것들을 최대한 흉내 내며, 토요일 밤의 칵테일 파티에서는 화려한 드레스, 헤어스타일, 화장을 완벽히 갖춘다. 여기에는 ‘최선을 다해 여성적으로 보이려는’ 남성적 경쟁심이 숨어 있다. 그는 단지 여성처럼 보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진짜 여성들보다 더 여성적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
이제 나는 수술을 받은 트랜스섹슈얼 여성들에게 묻는다. 수술 후 6~8개월이 지난 이들은 평상시나 특별한 날에 어떻게 옷을 입는가? 여전히 정장이나 값비싼 드레스를 입는가? 아니면 청바지, 운동복, 운동화,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타나는가? 내가 듣기로는 “나는 이제 진짜 여성이니까, 그런 것 안 입어도 돼”라는 말을 자주 한다. 정말 그런가? 이 질문은 내게 오랫동안 떠오르던 의문을 다시 상기시켰다. 왜 수술 전엔 예쁜 옷, 구두, 보석에 집착하던 이들이 수술 후에는 그것들을 잊어버렸을까? 왜 그들은 더 이상 꾸미지 않는가? 내 대답은 이렇다. 당신이 받아들이든 말든, 나는 이게 사실이라 믿는다. 그들은 사실 꾸며야 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 그들이 더는 테스토스테론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술은 고환까지 제거하므로, 더 이상 남성 호르몬이 생성되지 않는다. 이 호르몬은 그들이 남성적인 행동을 하도록 했던 원천이었다. 그래서 수술 후, 그들의 성욕과 동기는 거의 사라진다.
— Prince, 1993 , pp. 22-23
프린스는 트랜스섹슈얼들에게 테스토스테론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치장에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것이라 비난했다. 그러면서 수술을 받지 않은 크로스드레서들의 여성스러움을 예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랜스섹슈얼들의 그러한 태도는 오히려 성욕이 사라진 상태에서도 교차 성별 동일시가 유지되는 자기여성애적 모순이 드러나는 사례이기도 하다.
자기여성애적 낭만적 지향
과거의 트랜스섹슈얼 유형론 중에는 성적 페티시즘, 그리고 남성이나 여성과 성적 관계를 맺었다는 증거가 거의 없는 '프라이머리' 유형이 있었다 (person & ovesey, 1974). 프라이머리 유형은 블랜차드에 의해 무성애적, 혹은 비타인성애적 자기여성애자로 재분류되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성적 이력을 속인것일까? 반드시 그렇게 가정할 필요는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자기여성애는 내면화된 이성애다. 블랜차드는 자기여성애에 대한 모든 측면들이 정상적인 남성 이성애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Blanchard, 1991). 어떤 남성들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낭만적인 측면을 더 중시하기도 한다. 자기여성애자 또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앤 로렌스(Anne Lawrence)는 이 점을 착안하여 자기여성애에는 다른 성적 지향과 마찬가지로 에로틱한 끌림 뿐 아니라 낭만적 끌림이 함께 존재한다고 제안했다(Lawrence, 2007). 그리고 자기여성애적 트랜스섹슈얼리즘을 일종의 낭만적 끌림의 표현이라 보았다. 이것은 블랜차드의 이론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사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에 가깝다.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여성애자들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만든다. 자기여성애적 트랜스섹슈얼리즘이 실제로 그 프레임에서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여성애적 지향의 발생 원인
자기여성애가 왜 사회 전반에 받아들여져야 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성적 지향이 왜 발생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현재 여기에 명확한 답은 없다. 단지 성심리적 발달 과정에서 어떠한 결함이 발생했다고 추측할 뿐이다. 또한 그 시기는 상당히 이른 경우가 많다. 한 사례 보고에 따르면 세 살이 되기 전의 남자아이 두 명이, 이성의 옷을 입고 싶어 하고, 그러한 행위 중에 음경 발기를 보였다고 한다. (Stoller, 1985; Zucker and Blanchard, 1997) 실제로 자기여성애자들의 경험은 5~6세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으며, 10대에 성별 불쾌감을 일으키는 경우도 흔하다. 이것이 어떤 결함에서 발생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이 사람보다 사물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는 관찰(Laub, Fisk, 1974)을 기반으로 자폐적 성향이 영향을 끼친 것이라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 또한 모든 경우의 자기여성애적 남성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블랜차드는 이것이 뇌의 선천적 결함일 것이라 추측했다:
동성애자 및 이성애자 MtF 트랜스섹슈얼 모두의 뇌는 일반적인 이성애자 남성과는 다를 가능성이 있지만, 그 차이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동성애자 MtF 트랜스섹슈얼의 경우, 그 차이는 성이분화적(sex-dimorphic) 구조와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차이는 여성적인 방향으로의 이동이라는 특성을 가진다. 만약 어떤 형태의 신경해부학적 간성(intersexuality)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동성애자 집단에서 나타난다. 반면, 이성애자 MtF 트랜스섹슈얼의 경우, 그 차이는 성이분화적 구조와 관련이 없을 수 있으며, 구조적 차이의 성격도 반드시 남성–여성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 Blanchard, 2008, p. 437
실제 연구 또한 존재한다. 이 연구결과는 MtF트랜스섹슈얼들의 뇌가 '여성화'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며, 그저 일반적이지 않은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한편 MtF-TR은 양쪽 대조군 모두와 구별되는 특이한 특징들도 보였는데, 시상(thalamus)과 피각(putamen) 용적은 감소했으며, 오른쪽 측좌회(insular cortex), 하전두피질(inferior frontal cortex), 그리고 오른쪽 각회(angular gyrus)를 포함하는 영역에서 회색질 용적이 증가되어 있었다. 본 연구 결과는 MtF-TR의 뇌가 여성화(feminized)되었다는 주장을 지지하지 않으며, 오히려 MtF-TR에게서 관찰된 변화는 신체 지각(body perception)을 처리하는 신경망과 관련된 구조에 주목해야 함을 시사한다. — Savic & Arver, 2011
물론 뇌에 대한 연구는 항상 뒤집힐 수 있으며, 후천적으로 발생할 가능성 또한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의 설득력 있는 설은 없다.
설령 자기여성애가 선천적이지 않더라도, 이것이 치료가능한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성적 지향이 규범적인 이성애로 치료 가능하다는 증거는 없으며, 전환치료는 매우 위험한 접근법이다. 복장도착적 자기여성애자(트랜스베스타이트)들은 상황이 더 나을 수 있다. 그들은 여장을 통해 자기여성애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으며, 보다 이성애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성향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해부학적 자기여성애자들의 삶은 힘들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기여성애를 겪고, 해부학적 성별 불쾌감으로 고통받을 수 있다.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경우도 드물다.
자기여성애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이유
최근 트랜스젠더, 혹은 트랜스섹슈얼에 적대적인 사회단체들에서는 자기여성애자를 악마화하는데 상당한 정성을 들이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급발현 성별 불쾌감을 겪는 아들을 둔 부모들이 거기에 상당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의 아들이 자기여성애자라고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남성에게 여성과 같은 형태의 급발현 성별 불쾌감이 나타난다는 증거는 없다. 그 아들들은 자기여성애자다. 즉, 그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을 악마화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그것은 정말 비극적이다.
만일 그들의 바람이 반영되어 모든 남성들의 성전환이 금지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일이 일어날까. 트랜스섹슈얼리즘에 대한 수용은 과거로 후퇴할 것이다. 내가 트랜지션을 하던 시절에는 암시장에서 불법적으로 호르몬을 파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성전환 수술은 반드시 브로커를 통해 태국에서 받아야 했다. 모든 것이 그 시절로 돌아갈 것이며, 자기여성애자들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춘에 종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여성 또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트랜스섹슈얼에 비수용적인 환경에서 자기여성애자들은 자신의 욕구를 최대한 억누른 상태에서 여성과 결혼하게 될 확률이 높다. 이것은 신세대 트랜스 위도우(Trans widow, 남편이 성전환을 하여 과부가 되는 것)를 대량으로 발생시킨다. 때문에 성별 불쾌감을 앓는 자기여성애자는 차라리 일찍 트랜지션을 하는 편이 더 이롭다고 생각한다. 물론 청소년기의 성전환은 권장되기 어렵다. 누가 트랜스섹슈얼리즘을 가지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미래에 구별 가능해진다면 시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여성애적 트랜스섹슈얼리즘이 받아들여져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현재 동성애적 유형에 대한 부모의 수용은 꽤 진전되었을 거라 추측한다. 아이가 매우 어린시절부터 여성적인 동성애자일 경우, 과거에 비해 많은 부모가 그들의 성전환을 지지하고있을 가능성이 있다(이것이 바람직하냐에 대한 문제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 글에서 다룰 주제는 아니다). 자기여성애적인 트랜스섹슈얼들은 부모와의 갈등이 더욱 극심하다. 그들은 대체로 평범한 남성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자기여성애가 사회적으로 더 받아들여질 만한 지향임이 인정된다면, 그리고 부모가 자기여성애적인 아들을 "사랑하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부모들이 겪는 트라우마나 수치심 또한 더 잘 관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와 여러 다른 자기여성애적 트랜스섹슈얼의 부모들을 보고 내린 결론이다. 그들은 당사자들만큼이나 상처받고 수치스러워한다. 또한 자식을 수치스러워하는 과정에서 상호 간의 상처는 더욱 깊어진다. 동성애적 유형만큼의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는 자기여성애의 인식과 수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여성애자들을 위한 대중적 롤모델이 필요하지만, 그게 가능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자기여성애의 사회적 수용이 가져올 또 다른 이득은 자기여성애자 본인을 위한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내 주변의 자기여성애적 트랜스섹슈얼들은 트랜지션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르고 이 개념을 접했다. 그것은 몹시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내가 이 개념에 집중하는 이유 또한 이런 충격 속에서 어떻게든 나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 자기여성애적인 남성들이 트랜지션을 결정하기 전, 앤 로렌스의 자기여성애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 「남자 몸에 갇힌 남자들(Men Trapped in Men's Bodies)」을 정독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탐구하는 문화가 생기길 꿈꾸고 있다. 트랜지션은 반드시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자기여성애적 트랜스섹슈얼리즘을 가졌다는 사실이 도덕성을 따질 문제가 아니며,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성전환은 비록 우리의 성별을 실제로는 바꿔주지는 않지만, 성별 불쾌감의 완화 요법으로는 효과적이다. 단지 사랑하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는 사실이, 여성이 되려는 여성적인 동성애자보다 성전환에 덜 진실하다고 간주 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자기여성애자도 존재한다. 우리는 다른 성적 소수자와 마찬가지로, 자기여성애자 또한 그 성향이 아닌 행동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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