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불쾌감은 하나가 아니다
성별 불쾌감(gender dysphoria)의 병리화는 현대 '젠더'를 둘러싼 문화전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다. 여기에는 정말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몇 가지 주요한 주장을 꼽을 수 있다. 먼저 비 병리화를 주장하는 측은 주로 트랜스젠더 활동가들이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특정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을 가지고 있으며, 소수의 사람들은 이것이 신체와 맞지 않기 때문에 고통을 받기도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리고 정체성이 신체적으로 드러나는 성별보다 더 진실에 가깝기 때문에, 병리화보다는 의료적 관리가 필요한 일이라 말한다. 여기에는 주로 존 머니(John Money)의 강제적 아동 성전환 실패 사례들과, 많은 트랜스섹슈얼(transsexual, 외과적 성전환자)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반대 성별임을 알았다는 진술 등이 근거로 쓰인다.
트랜스에 우호적인 사람들 중에서 병리화를 주장하는 측은 그에 비하면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성별 정체성의 문제가 '의학적 상태'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병리화가 가져올 사회적 낙인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트랜스젠더 활동가들의 주장에 반대하면서도, 섣불리 병리화를 외치기를 주저한다. 이것은 타당한 우려다. 병리화를 추진하는 인사들은 성별 불쾌감을 겪는 이들의 복지와 행복보다는, 이들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들인지'를 강조하는데 가장 열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트랜스섹슈얼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올바른 의학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병리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무엇이 전적으로 옳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모든 입장들이 나름의 의미 있는 관점을 포함하고 있다. 분명히 어떤 사람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반대 성별의 사람이라 선언하기도 한다. 나는 이것이 타고난 성별 정체성의 근거라는 주장에는 부정적이지만, 무언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게 타고난다는 것만은 사실이라 생각한다. 또한 몇몇 트랜스들이 반사회적이고 위협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성별 불쾌감을 겪는 이들을 비인간화하는 근거로 쓰인다면, 거기에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트랜스에 친화적이거나 적대적인 모든 유형의 활동가들은 성별 불쾌감에 대하여 부정확하게 묘사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의도적으로 왜곡한다. 많은 경우 이런 태도는 자신들이 원하는 이념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개념의 일부분만 차용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때문에 나는 이 질환을 둘러싼 어떠한 정치적인 해석도 거부한다. 내 의견을 먼저 밝히자면, 성별 불쾌감은 정신장애이며, 이 자체로는 결코 어떤 이념적 가치나 성차별주의 내면화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가지지 않는다. 병리화는 환자를 악마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병인을 이해하고 적절한 의료적 도움을 제공하기 위한 최소한의 틀이어야 한다. 현재 성별 불쾌감은 극도로 정치적인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우리는 임상적 관점에서 이 개념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고 믿는다.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APA)는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의 최신판인 DSM-5-TR(2023)에서 젠더와 성별 불쾌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젠더(Gender)는 소년/소녀, 남성/여성, 기타 젠더의 역할로 살고 있는 대중적이고 사회문화적(항상 법적으로 인정되는)인 용어로 사용된다. 생물학적 요인이 사회적 · 심리학적 요소와 상호작용을 통해 젠더 발달에 기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 젠더 불쾌감(Gender Dysphoria, *성별 불쾌감)은 일반적인 기술 용어로 개인의 경험되고 표현되는 젠더와 부여된 젠더 사이의 불일치로 인한 고통을 말한다. — 미국정신의학회, 2023, pp. 563-564 (학지사)
이 정의는 흔히 '사회가 부여한 젠더와 개인 경험의 충돌'로 해석되며,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성별 불쾌감을 사회적 억압의 산물로 이해한다. 만일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든 젠더를 규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한다면, 그 누구도 성별 불쾌감을 느낄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성기 불쾌감을 느끼며 성전환 수술을 갈망하는 이들의 극심한 고통을 설명하기 어렵다. 생물학적 성별은 사회적으로 부여되지 않으며, 드러나고 관찰되는 것이기에 '부여된 젠더' 설명은 여기에 적합하지 않다.
물론 우리가 DSM에 적힌 내용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DSM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없애기 위해 이 질환에서 '장애'라는 명칭을 제거했다. 따라서, 이 정의도 마찬가지로 조심스러운 용어로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전 버전과 비교하여 명칭과 정의만 바뀌었을 뿐, 대상이 되는 환자군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또한 미국정신의학회는 DSM을 평가하고 사용함에 있어서 의사들이 항상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의존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분야에서 가장 큰 성과를 냈던 성과학자 레이 블랜차드(Ray Blanchard)와 그 동료 학자들의 연구 및 이론은 그 '지식'으로써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 그들의 연구는 수십 년간의 논쟁 속에서도 여전히 임상적-경험적 설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레이 블랜차드는 성별 불쾌감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성별 불쾌감(gender dysphoria, Fisk, 1973)이라는 용어는 자신의 생물학적 성에 대한 불만, 반대 성(opposite sex)의 신체를 갖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타인에게 반대 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욕구를 가리킨다. 트랜스섹슈얼리즘(transsexualism, 성전환증)은 이러한 성별 불쾌감이 상당 기간 동안 변동 없이 지속되는 극단적 형태로 정의될 수 있으며, DSM-3에 따르면 그 기간은 2년이다. — Blanchard et al., 1985, p. 295
미국정신의학회와 다르게, 블랜차드는 성별 불쾌감을 정의함에 있어서 사회적 성 개념인 '젠더'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이것이 단순한 사회적 역할이 아닌 반대 성(opposite sex)이 되고자 하는 욕구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그는 커트 프로인트(Kurt Freund)가 제안한 교차 성별 정체성(cross-gender identity) 개념을 도입하여, 이 고통이 무엇인지 더 명료화시켰다:
교차 성별 정체성(cross-gender identity)이란 반대 성(opposite sex)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망적 환상이 거의 지속적으로 나타나거나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상태를 말한다. — Freund et al., 1982, p. 49
교차 성별 정체성과 성별 불쾌감은 같은 현상에 대한 인지적, 정서적인 측면이다. 스스로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실제와 다른 성(sex)이라고 믿거나,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별 불쾌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과 유사하지만 보다 널리 알려진 개념인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과 다른 점은, 이 현상을 내면적인 정체성이 아닌, 하나의 욕망과 집착적 상태를 기준으로 정의했다는 사실이다. 블랜차드는 이와 반대되는 용어로 '일반 성별 정체성(normal gender identity)'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반 성별 정체성(해부학과 일치하는 정체성)은 교차 성별 정체성과 대칭적인 현상이 아니다. 일반 성별 정체성은 감정적 색채가 있든 없든 자신의 생물학적 성을 간헐적으로 의식하는 것이다. 교차 성별 정체성은 끊임없이 갉아먹는 집착이다. 누군가는 만약, 정상적인 남성이나 여성이 마법처럼 반대 성별의 신체로 바뀐다면 그들 역시 성별에 집착할 것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그렇다면 후천적으로 실명하거나 청력을 잃거나 마비가 된 사람들이 결국 적응하듯이, 그들 또한 결국 적응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 Blanchard, 2019
교차 성별 정체성은 어떤 사람이 신체와 반대되는 성별의 '정체성'을 가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일반 성별 정체성 또한 자신의 신체와 일치하는 '정체성'을 가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대 의학은 정신과 신체를 분리된 실체로 보지 않는다. 우리의 정신은 신체라는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 따라서 아무리 잘못된 몸을 가졌다고 느끼더라도, 교차 성별 정체성은 다름 아닌 그 신체에서 기원한다.
실제로 성별 불쾌감을 겪지 않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어떤 성별이라는 '느낌'을 갖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성별 정체성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내가 그 성별이라는 '느낌'이란 대체 뭘까? 우리는 그런 느낌을 별도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 게다가 어떻게 자신이 아닌 것에 대한 '느낌'을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의문은 교차 성별 정체성을 통해 성별 불쾌감을 설명했을 때 해소된다. 더욱 진실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다른 성이 되고 싶다는 느낌을 알고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성별 불쾌감이란, 반대 성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망적 환상이 지속된 결과, 반대 성의 신체를 갖거나 그 일원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좌절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불쾌감을 뜻한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그들은 반대 성이 되고자 하는가? 여기서 병인론(病因論)이 출발한다.
어떤 사람이 고열이 난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단순한 감기에 걸렸을지도 모르지만, 홍역이나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었을 수 있으며, 극단적으로는 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을 단지 '열이 난다'라고만 표현한다면, 증상의 원인이 되는 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며, 치료방법에 대하여도 논할 수 없다. 성별 불쾌감은 같은 증상을 공유하는 서로 다른 병의 집합이라 볼 수 있다.
정말로 이 병이 해결되기를 바란다면, '모든 체온이 정상'이라며 고열을 방치하는 사회가 아니라, '열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특히 젠더 담론이 확산된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성별 불쾌감까지 관찰되기 때문에, 지금 이것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논의하는 자세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트랜지션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크게 3가지 유형의 성별 불쾌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성별 불쾌감'이라는 표면적인 증상을 두고 논쟁하기보다는 그 증상을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병인을 구분해 보는 게 우선이다. 병인을 구분하지 않는 진단은 잘못된 치료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부터 이 서로 다른 유형에 대하여 설명하도록 하겠다.
아동기 발현 성별 불쾌감의 가장 큰 특징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성 역할 비순응이며, 이는 성별에 따른 행동 방식이 드러나는 시기와 거의 동시에, 항상 자발적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이들은 뒤에서 설명할 다른 두 유형과 다르게 어떤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반대 성의 성별 정체성'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나중 글에서 보다 상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하지만 모든 성별 비순응적인 아동들이 성별 불쾌감을 경험하지는 않는다. 이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높은 확률로 동성애자로 확인되기 때문에, 동성애적 성별 불쾌감(Homosexual gender dysphoria)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아이들은 반대 성별이 되고 싶다고 간절히 원하며, 실제로 자신이 반대 성별이라 선언하기도 한다. 남자아이의 경우 드레스와 같은 여성복, 그리고 여성적인 놀이와 역할에 대한 강한 선호, 여자 아이는 이와 반대되는 선호를 가진다. 그러나 이 아이들의 문제가 단순히 사회적 고정관념이나 소외-괴롭힘의 산물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많은 성별 불쾌감 소년들은 단지 여자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불행하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드는지는 명확하진 않지만, 성과학자들은 주로 선천적인 뇌 간성 및 그와 유사한 상태와 관련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발현 시기가 너무 빠르고, 양육방식과 관계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그들이 ‘여성의 뇌’를 가졌다는 주장은 아니다. 그들은 많은 면에서 남성성 또한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캐주얼 섹스에 대한 강한 관심이 그러하다. 오히려 남성 동성애자의 뇌를 가졌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남성 동성애자다.
몇 차례의 추적 연구에 따르면, GD 아동이 성인기가 되었을 때 트랜스섹슈얼이 될 확률은 10~40% 정도로 알려져 있다(Wallien&Cohen-Kettenis, 2008; Singh, 2012; Steensma, 2013). 최소 수치를 기준으로 보면, 대다수(90%)는 성인기에 이르러 자연적으로 불쾌감이 소실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위험성을 과소평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체 인구에서 성별 불쾌감의 유병률이 0.1% 미만이라는 DSM-5-TR의 추정치를 고려하면, 일반 인구에 비해 적게는 100배, 많게는 400배의 확률로 성인기에 외과적 성전환을 선택한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성별 불쾌감을 겪는 이들 중 모두가 성전환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두 집단 간의 격차는 실제로 더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에게는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 이 주제는 몹시 논쟁적이다. 성에 대한 사회적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가치판단보다도 무엇이 아이의 장기적인 삶의 질 개선과 행복에 더 이로운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아동 성별 불쾌감 환자를 치료-연구해 왔으며, 토론토 중독 및 정신 건강 센터 (Center for Addiction and Mental Health in Toronto, CAMH)에서 GD 아동들을 치료해왔던 케네스 주커(Kenneth Zucker)는 아동 성별 불쾌감 환자들이 자신의 성(sex)을 받아들이도록 돕고, 트랜스섹슈얼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주요한 치료 목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관점을 지지한다면, 아이에게 스스로의 성별을 단호하게 인지시켜야 하며, 사회적으로 반대 성별로 행동하도록 허락해서는 안된다. DSM-5-TR은 조기 사회적 전환이 청소년기에 성별 불쾌감이 지속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만일 성별 불쾌감이 청소년기까지 해결되지 않으면 아이가 성전환을 선택할 확률은 매우 높아진다.
여기에 더해 주커는 아이를 치료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지침 또한 강조했다(남자아이의 경우):
주커는 간단히 말한다. “바비 인형은 치워야 합니다.” 물론 그는 바비 인형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더 일반적인 의미를 말한다. 바비 인형을 비롯해 여자아이의 신발, 드레스, 가방, 공주 드레스 같은 여성적인 장난감과 장신구들은 집 안에서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되며, 아이를 위해 새로 사주는 일은 더욱 없어야 한다. 주커는 여성적인 놀이와 복장을 용인하거나 장려하는 것이 아이가 자신의 남성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한다고 믿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인형을 가지고 놀고 싶은 욕구가 너무 커서 아버지의 분노나 또래의 조롱을 감수하는 소년이라면, 금지와 허용, 심지어 장려가 뒤섞인 일관성 없는 반응으로는 행동을 바꾸기 어렵다. 이런 식의 일관되지 않은 양육 태도는 원하지 않는 어떤 행동이라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 — Bailey, 2003
이러한 치료방식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남자아이가 바비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잘못일까?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소위 남자답다고 일컬어지는 행동만을 해야 한다는 말은 몹시 성차별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이 옳은가'라거나, '무엇이 성차별적이지 않은가'라는 식의 가치 판단이나 사회 운동이 아니며, 이미 성별 불쾌감을 가진 아동이 성인기가 될 때까지 그 상태가 유지되지 않도록 돕기 위한 치료적 조치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성별 불쾌감은 분명 극심한 고통이다) 서문에서 말했듯 나는 이 문제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인 해석도 거부하며, 환자가 더 행복하기 위한 치료적 접근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성전환 의료는 필연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외과적 조치를 포함한다. 그런 조치 없이 불쾌감을 해결할 수 있다면, 이 치료법이 금지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이 아이들이 건강한 신체로 자신의 성(sex)을 긍정하며, 행복한 동성애자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도록 돕는 것은 선의에 기반한 치료적 선택이다.
물론 주커의 치료법이 아니더라도, 대다수의 GD 아동들은 청소년기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성별을 받아들이게 된다. 성 역할 비순응적 아동, 특히 남자아이의 경우 또래의 괴롭힘이나 사회적 압력 같은 부정적 반응을 통해 일종의 치료적 효과를 경험한다. 이는 가혹한 과정일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아이가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에 순응하게 만든다.
반면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사회가 성 고정관념을 없애고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놀 수 있는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확실히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아이들이 스스로의 본성을 미워하게 될 이유는 없을 것이고, 도덕적으로도 더욱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더 많은 성인 트랜스섹슈얼을 탄생시킬지도 모른다. 아이가 다른 성별이 되고 싶다는 집착을 고쳐야 할 필요성이 더욱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허용적 환경은 아동의 교차 성별 정체성을 강화한다.
이 모든 조치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기까지 성별 불쾌감이 지속되는 경우, 아이가 트랜지션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그럴 경우에 부모는 이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아동기 GD에 대한 치료법은 전적으로 아이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트랜스섹슈얼이 되도록 지지하는 것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더 나은 해결책일 수 있다. 결국 선택은 치료의 방향이 아니라, 아이가 어떤 삶을 살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처럼 선천적인 문제에 기인할 것으로 추정되는, 매우 이른 시기의 성별 불쾌감이 있는 반면, 청소년기에 이르러야 처음 나타나기 시작하는 성별 불쾌감 또한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자기여성애적 성별 불쾌감이다.
이 두 번째 유형의 성별 불쾌감은 청소년기와 성인기의 남성에게서만 나타난다. 자기여성애(Autogynephilia)란 남성이 스스로 여성이라는 생각을 통해 느끼는 성적 흥분으로 정의된다. 아동기 발현 성별 불쾌감이 뚜렷한 성 역할 비순응적 행동으로 조기에 드러나는 것과 달리, 이 유형의 사람들은 비교적 평범한 아동기를 보낸다. 아동기 발현 성별 불쾌감 그룹과 다르게 이들에게 근본적으로 여성적이라 불릴만한 부분은 없다. 이 그룹 또한 뇌 특이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것은 여성화된 방향은 아니다.
자기여성애자들은 스스로를 이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끌림은 여성이 된 자기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모두 이성애자라고 볼 수 있다. 자기여성애란 여성이 된 자신에 대한 사랑, 즉 남성의 내면화된 이성애다. 먼저 자기여성애를 이해하기 위해 유념할 점은, 이것이 성 도착증이면서 동시에 성적 지향이라는 사실이다. 한번 발현되면 고정되어 사라지지 않으며, 여타 성적 지향처럼 '치료' 가능하다는 증거는 없다. 그리고 시도되어서도 안된다. 이 부분은 내 다른 글에서 상세히 설명하였다.
자기여성애적 성별 불쾌감의 가장 강력한 징후는 '성적 흥분이 동반된 비밀스러운 여장'이다. 대부분의 자기여성애적 트랜스섹슈얼들은 10대 시절 반복적인 여장 경험을 보고한다. 성별 불쾌감은 자기여성애와 함께 점진적으로 강해진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부모(혹은 아내)에게 자신이 사실 남자의 몸에 갇힌 여자라고 고백하는 식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너무 갑작스럽더라도, 실제로는 아주 오랜 기간 불쾌감이 지속되었을 수 있다.
모든 성 역할 비순응적 아동이 성별 불쾌감을 가지지는 않았던 것처럼, 모든 자기여성애자들이 성별 불쾌감을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여성이 되는 상상을 통해 성적 흥분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와 성을 바꾸려는 시도는 서로 동일하지 않다. (호르몬 요법과 성기 절단은 성적 흥분을 느끼는 능력을 크게 훼손시킨다) 오히려 많은 자기여성애자들은 "왜 남자로 사는 것이 불편해야 하죠?"라고 되묻기도 한다. 그들은 단지 여성복을 입는 것 만으로 만족한다. 그렇다면 누가 성별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 걸까? 한 연구에 따르면, 주로 여성의 몸을 갖는 환상에 각성했던 자기여성애자들이 더 어린 나이에 젠더 클리닉에 찾아왔으며, 또한 가장 심한 성별 불쾌감을 느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Blanchard, 1993).
성과학자들은 자기여성애자가 성별 불쾌감을 가지게 되는 기전을 'ETII(Erotic target identity inversion)' 개념을 통해 구체화했다(Bailey&Hsu, 2023). ETII란, 개인이 에로틱하게 느끼는 대상과 동일시하여 그 대상을 모방하거나, 그 대상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뜻한다. 자기여성애자에게 ETII란 곧 성별 불쾌감이다. 만일 누군가가 성적인 맥락에서만 여성이 되는 상상을 한다면 그것은 자기여성애다. 그러나, 정체성과 신체 자체를 바꿔 일상생활에서도 그 상태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ETII고 자기여성애적 성별 불쾌감의 발현이라 볼 수 있다. 자기여성애자는 생애 초기에 남성의 핵심 성별 정체성(core-gender identity)을 가지며, 그들이 겪는 교차 성별 정체성은 초기에는 단순한 열망으로 보인다. 그러나 ETII를 겪고 충분히 강해진 교차 성별 정체성은 이를 대신하여 지배적인 정체성으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이 유형의 환자들에게는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 우선적으로 환자에게 자기여성애 개념을 알려주고, 스스로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 성적 지향은 너무 특이하기 때문에, 겪는 사람조차도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일단 환자가 자신에 대하여 알도록 도와주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환자 스스로 자신이 자기여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성전환을 선택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 실제로 마이클 베일리는 자기여성애적 아들을 둔 부모에게 이 방법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자기여성애 성향이 있는 아들을 둔 부모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마도 “어떻게 하면 이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도울 수 있을까?”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첫 단계는, 아이에게 자기여성애라는 개념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나는 부모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조언한 적이 있고, 때때로 그들의 아들은 “맞아요, 그게 저예요”라고 반응하기도 한다. 그러면 성별 불쾌감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 어떤 아이는 “나는 진짜 트랜스가 아니에요. 나는 성적 페티시가 있는 거예요. 더 이상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자기여성애를 이해하면서도 여전히 성전환을 원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성전환이 올바른 결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깊이 존경하는 한 어머니는, 자기여성애 성향이 있는 아들을 위해 란제리와 그 외의 물품들을 사주며, 그의 감정을 탐색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아들에게 솔직하게 말했지만, 결코 강요하지는 않았다. 현재 그 아이는 성전환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 Bailey, 2019
이것은 성별 불쾌감을 줄일 뿐 아니라, 설령 추후에 트랜지션을 선택하더라도 자신에 대하여 더 잘 이해하도록 만드는 효과도 있다. 내 주변에는 최근에서야 자기여성애 개념을 깨닫고 괴로워하는 자기여성애적 트랜스섹슈얼들이 몇몇 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은 자기여성애 개념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가 여자라는 생각에 전혀 의심이 없었으며, 트랜스 여성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기여성애에 대하여 알았을 때는 예외 없이 충격을 받았고, 현재는 자신이 여성과 다르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 이렇게 뒤늦은 깨달음이 너무 큰 충격을 주기 때문에, 자기여성애자라면 어떤 경우에서든지 이 개념을 미리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이 개념을 알려주는 게 자기여성애적 성별 불쾌감에 대한 완벽한 치료법이 될 수는 없다. 몇몇 자기여성애자들은 자신의 성향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르몬 요법을 통해 자기여성애적 흥분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 흥분감이 여성으로서의 자아 이미지를 훼손하고, 오히려 성별 불쾌감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수준의 성별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트랜지션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트랜지션은 이 외에도 현실적인 면 또한 고려해야한다)
지금까지의 두 유형은 20세기 후반까지의 성과학에서 비교적 잘 정리된 전통적인 형태의 성별 불쾌감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전까지는 관찰되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이 주목받고 있다. 그것은 급발현 성별 불쾌감, ROGD다.
성별 불쾌감의 병인론이 중요해진 이유는 바로 이 새로운 유형이 관찰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트랜스섹슈얼은 앞에서 설명한 두 유형, 아동기 발현 GD와 자기여성애적 GD가 대다수였으며, 환자의 대부분은 출생 시 남성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로 기존과는 다른 양상의 새로운 환자 집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급격한 발현을 특징으로 하는 이 새로운 유형의 성별 불쾌감은 2018년 리사 리트먼(Lisa Littman)에 의해 처음으로 급발현 성별 불쾌감(ROGD)이라 명명되며 연구가 시작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이 새로운 유형이 아니라,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수용이 높아진 덕분에 뒤늦게 드러난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성별과 연령대를 막론하고 유사한 증가 추세가 관찰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사회적 젠더 담론의 확산 이후 청소년기에서 20대 초반의 여성들 사이에서 성별 불쾌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증가를 넘어, 성비 구조 자체를 뒤바꾸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과거 문헌에 따르면, 젠더 클리닉에 내원하는 환자 기준으로 성별 불쾌감을 겪는 사람의 비율은 출생 시 남성은 24,000~37,000:1, 출생 시 여성은 103,000~150,000:1로 남성에서 훨씬 더 흔했다(Meyer-Bahlburg, 1985). 또 다른 조사에서는 출생 시 남성은 10,000~100,000:1, 출생 시 여성은 30,000~400,000:1로, 마찬가지로 남성에게서 훨씬 흔했다(Zucker&Green, 1992).
이론적으로 보더라도, 남성에게만 나타나는 자기여성애에 대응하는 여성적 유형, 즉 여성의 자기남성애(autoandrophilia)는 사실상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그와 유사한 형태인 자기동성애적(autohomoeroticism, 게이 남성이 되어 게이 성관계를 하는 상상에 기반한 에로티시즘) 성별 불쾌감은 극히 드문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2000년대 이전까지 성별 불쾌감이 출생 시 남성에게서 더 일반적인 현상이었다는 사실은 문헌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확인되는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패턴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붕괴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지표에서 성비 역전 현상이 나타났으며, 2010년대 중반부터는 진단 건수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이 변화는 출생 시 여성에게 더욱 두드러졌다. 현재 성별 불쾌감은 과거와 달리,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흔히 관찰된다.
이 변화 중 출생 시 남성 그룹의 증가는 대부분의 경우 앞서 설명한 자기여성애적 성별 불쾌감으로 설명 가능했다. 그러나 여성 그룹의 증가 양상을 살펴보자면, 이들 대부분은 아동기 성별 불쾌감으로 진단된 적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자기남성애가 관찰된다는 증거도 없었다. 리트먼은 256명의 부모를 모집하여 ROGD와 관련된 여러 요인을 확인했다. 먼저, 친구 무리에서 성별 불쾌감이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군집현상이 관찰되었다(21.5%). 또한 이들은 아동기 성별 불쾌감 진단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으며(96.1%), 단 하나의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80.4%에 달했다. 성별 불쾌감이 발생하기 전 트랜스젠더 미디어 환경에의 강한 몰입이 관찰되었다(63.5%). 이전부터 다른 정신건강 문제로 진단받은 비율이 높았다(62.5%).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한 경우, 절반가까이가 심리사회적 기능이 악화되었다(47.2%). (Littman, 2018)
리트먼은 청소년 및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의 성별 불쾌감이 기존의 정신질환과 사회적 전염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 현상에 대한 대규모 연구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섣부른 단정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저명한 임상의들을 포함한 학계 내외의 수많은 인사들이 ROGD에 부정적이다. 이 연구가 특히 비판받은 점은 표집방식인데, 자녀의 트랜지션에 반대하는 부모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표본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이앤 에렌사프트(Diane Ehrensaft)는 이 표집방식을 “흑인의 열등함을 증명하기 위해 KKK단이나 대안우파사이트에서 사람을 모집하는 것과 같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설문에 참여한 부모들의 88%는 트랜스젠더 권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Why are so many teenage girls appearing in gender clinics?”, 2018).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용 가능한 자료만 보더라도 특정 환자군의 경우 기존의 두 유형과는 다른 병인적 경로를 지닐 가능성은 높다. 다음 사례들은 이것의 현실적인 예시다(Littman, 2018):
한 12세 출생 시 여성은 사춘기를 일찍 겪는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 이에 대해 부모는 “그 결과 딸이 자신이 뚱뚱하다고 느끼며 가슴을 싫어한다고 말했다”라고 적었다. 그녀는 인터넷에서 “가슴을 싫어하는 것은 트랜스젠더의 징후”라는 내용을 접했고, 자신의 일기를 수정해(기존 내용을 지우고 새로 써넣어) 마치 자신이 항상 트랜스젠더라고 느껴왔던 것처럼 꾸몄다.
14세 출생 시 여성과 세 명의 출생 시 여성 친구들은 함께 매우 인기 있는 코치에게 그룹 레슨을 받고 있었다. 그 코치가 트랜스젠더임을 밝힌 지 1년 안에, 네 명의 학생 모두 자신도 트랜스젠더라고 선언했다.
한 출생 시 여성은 16세 때 성폭행을 당하는 트라우마를 겪었다. 사건 이전 그녀는 밝은 성격의 소녀로 묘사되었으나, 이후에는 위축되고 두려움이 많아졌다. 사건 발생 몇 달 후, 그녀는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며 트랜지션이 필요하다고 부모에게 말했다.
우려스러운 지점은, 앞선 두 유형과 달리 이 세 번째 유형의 경우 트랜지션이 장기적인 삶의 질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가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흔히 “성별 불쾌감의 유일한 치료법은 트랜지션뿐이다”라는 말을 접하게 된다. 이는 앞의 두 그룹 중 일부에게는 사실이다. 20세기의 게이트키핑 치료모델에서는 다른 심리치료적 개입이 충분히 시도된 후에도 고통이 지속될 때, 환자의 행복을 위해 신중하게 트랜지션이 고려되곤 했다.
그러나 ROGD 사례에 트랜지션이 효과적이라는 일관된 근거는 없다. 오히려 가장 최근에 이뤄진 대규모 연구에 의하면, ROGD로 추측되는 청소년 그룹은 트랜지션 이후 정신건강이 크게 악화되었다는 보고가 지배적이었다. 이 결과는 성별 불쾌감이 정서적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을 지지한다(Diaz&Bailey, 2023). 이는 앞선 두 유형—아동기 성별 불쾌감, 자기여성애적 성별 불쾌감—과 달리 트랜지션이 권장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의료적 조치는 최대한 미루되, 대신 필요한 것은 성별 불쾌감 발생 이전부터 존재했던 정신적-사회적 문제의 해결이다.
이미 언급했듯, 이 세 그룹은 같은 증상을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병인적 배경을 가진 서로 다른 환자 집단이다. 따라서 치료 원칙을 달리 적용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특히 최근 수년간 탈전환자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이들 중 다수는 성별 불쾌감이 발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호르몬 치료나 유방 절제술과 같은 비가역적 조치를 경험했다. 만일 의료적 개입이 환자의 장기적 행복을 보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면, 이를 재평가하는 것은 의료윤리적으로 필수적이다. 따라서 ROGD를 기존의 두 유형과 동일한 경로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현재의 접근은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병인론을 기준으로 성별 불쾌감의 주요한 세 가지 유형을 살펴봤다. 아직 더 많은 후속연구가 필요한 ROGD를 제외하면, 아동기 성별 불쾌감과 자기여성애적 성별 불쾌감은 오랜 기간 연구 및 체계화되며 실제 치료에도 개념이 참고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들은 꾸준한 반발에 부딪혀 왔다. 특히 트랜스젠더 활동가를 비롯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침해받는다고 느끼는 일부 트랜스섹슈얼들로부터 오랜 기간 부정되어 왔다. 마이클 베일리는 그의 저서 「The Man Who Would Be Queen(여왕이 되려던 남자)」를 통해 성별 불쾌감을 일반 대중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사려 깊게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요한 비난과 인신공격에 시달려야 했다(Dreger, 2008). 성별 불쾌감 연구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레이 블랜차드는 이 과정에서 HBIGDA(현 WPATH)의 대응에 환멸감을 느끼고 협회에서 자진 탈퇴했다. 케네스 주커는 아동의 성별 불쾌감 치료에 성별 정체성을 부정하는 방식을 포함했기 때문에 직위를 박탈당했으며(Singal, 2016), 수잔나 디아즈와 마이클 베일리에 의해 이뤄진 ROGD 후속 연구는 2000명에 달하는 연구자와 학자들이 이 논문을 지지하는 서명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논문이 철회되었다(Mondegreen, 2023).
이들은 왜 이렇게 격렬한 저항에 직면해야 했을까? 그 이유는 이 이론들이 공통적으로 '성별 정체성'의 고유성을 무시하고 병리화하거나 무효화했기 때문이다. 커트 프로인트는 '교차 성별 정체성' 개념을 통해 성별 정체성을 임상적 기준으로 재정의했고, 블랜차드의 유형론은 더 나아가 교차 성별 정체성을 비전형적인 성적 지향에서 비롯된 병리적 현상으로 설명했다. 리트먼의 연구 또한 성별 정체성의 기원을 사회적 전염과 환경적 요인으로 분석하려 했기 때문에 반발에 부딪혔다.
20세기의 트랜스섹슈얼 액티비즘과 그 이후 등장한 트랜스젠더리즘(transgenderism)의 핵심 가치는 개인의 성별 정체성 존중에 있었다. 1990년대의 트랜스섹슈얼들은 DSM-3가 성별 정체성을 장애로 규정한 것에 항의했으며, 트랜스젠더리즘은 트랜스섹슈얼을 포함하여 다양한 성 비순응적 개인들의 행동, 그리고 심리상태를 장애 및 페티시즘으로 간주한 정신의학계에 대한 반발에 가까웠다.
이것은 어느 정도 타당한 사회문화적 관점을 포함했다. 성 비순응적 행동을 교정하는 것은 페미니즘적 가치와도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떤 사회운동도 과학적 가치를 훼손하면서 이뤄질 수 없다. 트랜스젠더리즘이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성별 정체성'이 과학적 증거에 기반해야 한다.
그러나 성별 정체성은 점점 의미가 불명확한 개념이 되어가고 있다. 최초로 이 개념을 사용했던 로버트 스톨러(Robert Stoller)와 랄프 그린슨(Ralph Greenson)은 성별 정체성을 "자신이 어느 성(sex)에 속하는지 아는 감각"으로 정의했다(Stoller, 1964; Greenson, 1964). 이 정의는 현재까지도 유사한 형태로 WPATH 치료표준에 남아있다. "개인이 자신의 젠더를 깊이 느끼는, 내면적이며 본질적인 감각"이 그것이다(Coleman et al., 2022).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성(sex)이 젠더(gender)로 바뀌었다는 점인데, 이는 트랜스젠더리즘이 생물학적 성 개념을 부정하거나, 적어도 성별 정체성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젠더의 개념은 모호해진다. 성에서 생물학을 제외한다면 모든 행동적 특성과 해부학적 신체는 완전한 성별중립성을 가지게 되며, '젠더'는 설명할 대상을 잃게 된다. 따라서 현재 '성별 정체성'은 적어도 과학적 틀로 사용하기에는 의미가 지나치게 모호해져 있다.
이런 생각은 단순히 트랜스포비아로 간주될 수 없다. 트랜스젠더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누구보다 적극적인 젠더 철학자들 또한 성별 정체성 개념의 문제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다. 캐서린 젠킨스(Katharine Jenkins)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어떤 사람이 ‘여성 성별 정체성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면, 그 사람은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한다는 뜻이라고 설명될 것이다. 그러나 질문자가 ‘여성’이 무엇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여성 성별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답하게 된다. — Jenkins, 2018, p. 714
성별 정체성이 단순히 그것으로 인식하는 감각 이상을 의미하지 못한다면, 정체성 기준의 성별 정의는 순환논리에 갇히게 된다. 로완 벨(Rowan Bell)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성별 정체성 개념을 과거 성과학자들이 고안해 낸 시스규범적 젠더 형이상학으로 규정짓고, 그것으로부터 탈본질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Hernandez&Bell, 2025). 어쩌면 머지않아 트랜스젠더를 설명할 때 성별 정체성 개념을 사용하는 일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DSM은 여전히 성별 정체성 개념을 통해 트랜스젠더를 설명하지만, 성별 불쾌감을 정의할 때는 그 대신 '경험되고 표현되는 젠더(experienced/expressed gender)'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성별 정체성 긍정에 기반한 권리운동은 현재 실질적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서론에서 나는 성별 불쾌감이 정치적인 논란에 휩싸여 있으며, 트랜스에 친화적이거나 적대적인 모든 유형의 활동가들이 이것을 부정확하게 설명한다고 언급했다. 트랜스젠더 활동가들은 주로 '젠더'를 중심으로 트랜지션을 포함한 모든 성별 비순응적 행동에 페미니즘적 가치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것이 생물학적 성별이라는 실질적 범주를 해체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면, 여기서 페미니즘은 어디에 있는가? 게다가 모든 성별 비순응성은 엄밀히 말하면 같지 않다. 앞서 설명했듯 성별 불쾌감조차도 다양한 병인을 가진다. 하지만 몇몇 극단적인 활동가들은 이를 '사회가 젠더를 부여했기 때문에 겪는 문제'로 일축해 버렸고, 그 결과 성별 불쾌감 없는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그러나 성별 불쾌감이 하나가 아닌 것처럼, 불쾌감을 겪는 사람과 겪지 않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굳이 불쾌감을 느낄 필요 없이 원할 때 원하는 젠더를 마음껏 골라 사용할 수 있다는 사람은 어떠한 사회적 가치에 봉사하고 있는 이념적 활동가이거나, 별도의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임상적으로 관찰되는 성별 불쾌감 환자는 그러한 가치에 기반하여 트랜지션하지않는다. 자신이 반대 성(sex)이라고 믿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페미니즘적 가치는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쓰일 순 있지만, 그렇다고 불쾌감의 원인이 반페미니즘적 환경이나 믿음에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병리적 상태에 있는 개인이 특정 이념적 가치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실제로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경험을 무효화하기 때문이다. 현재 트랜스포비아의 상당 부분이 트랜스젠더리즘과 그에 기반한 페미니즘에 대한 사상적-정치적 반발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환자 개인의 삶이 그 이념의 가치를 증명하기에는 경험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불충분하다. 성별 불쾌감을 겪는 사람들은 특정 가치에 종속되지 않은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며, 실질적 과학 위에서 논의되어야 이런 불필요한 논쟁에 존재가 위협받지 않게 된다.
나는 이 모든 문제를 현대의 트랜스젠더 활동가나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20세기 이래로 전개된 모든 형태의 ‘트랜스’ 인권운동이 교차 성별 정체성이 일종의 정신장애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성별 불쾌감을 겪는 개인의 행복을 지지한다면, 성별 불쾌감의 재병리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악마화와 구분되어야 한다. 병리화는 철저한 과학적 사실 위에서 성별 불쾌감을 가지는 개인들의 의료적 권리를 위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아동기 성별 불쾌감 환자가 스스로의 성을 받아들이도록 이끌 수 있으며, 자기여성애적 성별 불쾌감 환자들은 자신의 심리상태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더 통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ROGD 사례 또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료적 대응이 가능해진다.
‘성별 정체성’과 특정 이념적 가치에 기반한 인권운동은 정작 보호해야 할 대상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으며, ROGD 논의의 성숙 또한 가로막고있다. 이 문제를 올바르게 다루기 위해서는 성별 확증 모델(Gender-Affirmative Model)과 그에 기반한 권리운동의 방향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보호라는 명목으로,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한 것일지도 모른다. 존중받아야 할 것은 이념적 가치가 아닌 실제 환자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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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작성 : 2025년 11월 30일
일부 수정 : 2026년 1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