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의 탄생

성전환은 어떻게 이념이 되었는가

by 늘 Transsexual

랜스젠더의 사회적 처우에 대한 논의는 종종 서로 다른 지식 기반하에 대화되는 경향이 있다. 양쪽이 명확히 정의된 하나의 개념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봤었다면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식 기반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사실관계조차도 불확실했다. 나는 이것이 '트랜스젠더'의 정의가 명확하게 합의되지 않은 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트랜스젠더라는 말은 어떤 맥락에서는 의료적 성 전환자를 가리키고, 또 다른 맥락에서는 수술과 무관한 젠더 비순응자 전체를 가리킨다. 성별 불쾌감 또한 트랜스젠더들이 대표적으로 호소하는 감정이지만, 이것 또한 필수가 아니다. 그렇기에 이 용어의 혼란 속에서 성숙된 논 대신 반복되는 것은 소모적인 감정싸움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먼저 트랜스젠더가 무엇인지, 더 정확히는 트랜스섹슈얼이 어떻게 트랜스젠더가 되었는지에 관한 역사를 알아야 한다. 용어의 역사는 곧 개념이다. 본 글은 그러한 개념적 토대 위에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아마도 최초의 트랜스젠더? 트랜스섹슈얼의 역사


최초의 트랜스젠더는 누구일까?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기 위해 우리는 먼저 트랜스젠더의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 현재 트랜스젠더란 "성별 정체성이 지정 성별과 다른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본다면 인류가 탄생한 이래 성별이 타인에 의해 지정되는 첫 순간을 알아야 다. 아마 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것이기에, 일단은 최초의 트랜스섹슈얼, 즉 외과적 성 전환자를 기준으로 삼겠다.


최초로 외과적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은 도라 리히터(Dora Richter)다, 영화 「니쉬 걸(The Danish Girl, 2015)」로 흔히 알려져 있는 릴리 엘베(Lili Elbe)는 간발의 차이로 두 번째 인물로 기록되었다. 도라 리히터는 1922년 최초로 성을 바꾸는 수술의 일환으로 고환 절제술을 받았으며, 1931년에 음경 절제술과 인공 질 수술을 받았다. 그렇다면 도라는 최초의 트랜스젠더일까? 만일 트랜스젠더가 의료적 성 전환자를 뜻한다면 맞다. 그러나 당시에는 트랜스젠더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도라는 트랜스젠더로 불려본 적도, 자칭한 적도 전혀 없다.


(좌) 도라 리히터 (Dora Richter, 1892-1966), (우) 마그누스 히르슈펠트 (Magnus Hirschfeld, 1868-1935)


도라는 당시 성과학자 마그누스 히르슈펠트(Magnus Hirschfeld)의 연구소에서 가정부로 일했는데, 히르슈펠트는 다름 아닌 "트랜스섹슈얼"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트랜스섹슈얼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히르슈펠트는 성 일원론에 빠져있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하나의 성만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구분하는 성별이란 거기서 파생된 일종의 스펙트럼이라는 의견이다. 그는 이와 관련해서 많은 단어를 만들어냈으며, 거기에는 후대에 트랜스베스타이트(Transvestite, 반대편 옷을 입는 사람)로 불리게 되는 'Transvestiten', 그리고 트랜스섹슈얼(Transsexual)에 해당하는 단어인 'Seelischen Transsexualismus', 즉 정신적 트랜스섹슈얼이 있었다.


(좌) 히르슈펠트에 의해 문헌상 최초로 기록된 '트랜스섹슈얼', (우) 간성적 체질과 변이 도식, 한쪽 끝에 동성애, 반대쪽 끝에 이성애가 있다.


이후 트랜스섹슈얼은 1949년 미국에서 처음 현대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과학자 데이비드 올리버 콜드웰(David Oliver Cauldwell)은 자신의 에세이 「Psychopathia Transexualis」에서 트랜스섹슈얼을 '반대 성이 되고자 하는 병리적 욕망'으로 규정했다. 아마 히르슈펠트가 만든 단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간성적 스펙트럼'은 여기서 처음 병리적 현상이 되었다.


50년대에는 크리스틴 조겐슨(Christine Jorgensen)이 미국인 최초로 의료적 성전환자가 되어 몹시 화제가 되었으나 아직 대중적으로 트랜스섹슈얼이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눈에 띄는 표현으로는 'New Woman'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런 표현은 90년대까지도 꾸준히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는 관련된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용어 통일지 않던 시절이었다.


Transform, Sex-conversion, The new woman, 50년대의 용어는 꽤 혼란스러웠다.


이런 혼란이 마침내 정리되고 트랜스섹슈얼이라는 말이 처음 대중화 된 것은 1966년 해리 밴자민(Harry Benjamin)을 통해서였다. 밴자민은 자신의 저서 「The Transsexual Phenomenon」에서 트랜스베스티즘과 트랜스섹슈얼리즘을 구분하며 트랜스섹슈얼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진정한 트랜스섹슈얼들은 자신이 다른 성에 속한다고 느끼며 [...] 단지 그렇게 보이기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 성기는 외과의의 칼로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 혐오스러운 기형이다. 이러한 태도는 두 증후군, 즉 트랜스베스티즘과 트랜스섹슈얼리즘을 구별하는 핵심적인 진단 기준으로 보인다. — Benjamin, 1966, p.11


이것이 최초로 현대적으로 정립된 개념의 트랜스섹슈얼이다. 그는 '벤자민 척도(Benjamin Scale)'를 만들어 트랜스베스타이트와 트랜스섹슈얼을 구분하는 6단계 분류법을 제시했다. 이 척도에서 진정한 트랜스섹슈얼이란, 실제 생물학적 성으로서의 자신의 몸을 혐오하여 성전환 수술 간절히 바라고, 완전 반대 성별로 살고자 하는 사람을 뜻했다. 1923년 히르슈펠트가 사용한 이래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개념적 틀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트랜스젠더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성전환 수술을 원하는 사람은 트랜스섹슈얼로 불렸으며, 단지 이성 복장만을 원하는 경우는 트랜스베스타이트라 불렸다.



1960년대 말, 버지니아 프린스와 '트랜스젠더'의 첫 등장


트랜스젠더라는 말이 중적으로 처음 사용된 건 1969년 버지니아 프린스(Virginia Prince)를 통해서였다. 그는 트랜스베스타이트를 위한 잡지 「트랜스베스티아(Transvestia)」를 발행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자신이 트랜스섹슈얼로 간주되는 것을 불쾌해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연히 나는 같은 이유로 내가 트랜스섹슈얼이라는 가정에 분개한다. 그 논리는 잘못된 것이다. 나는 적어도 성(sex)과 젠더(gender)의 차이를 알고 있으며, 전자를 바꾸려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후자를 바꾸기로 선택했을 뿐이다. 만약 어떤 단어가 필요하다면, 나는 '트랜스젠더럴(transgenderal)'이라 불려야 한다. — Prince, 1969, p.65


여기가 바로 트랜스젠더가 탄생한 역사적 순간이다. 프린스는 자주 트랜스섹슈얼들을 비난했다. '패배자(Loser)'는 그러한 표현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글 「Testosterone and you」에서 트랜스섹슈얼들이 호르몬적으로 외딴섬에 표류한태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며, 동시에 테스토스테론의 훌륭함을 찬양했다. 그는 자신의 몸에 거부감이 없었으며 오히려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버지니아 프린스 (Virginia Prince, 1912-2009), 본명은 아놀드 로만, 약리학 박사였으며, 매거진 「트랜스베스티아(Transvestia)」의 발행인이기도 했다.


프린스는 앞서 말했던 '벤자민 척도' 타입 IV(비수술적 트랜스섹슈얼, TV와 TS사이에서 흔들리는 상태), 혹은 '주변부적 트랜스베스타이트(Marginal Transvestite)'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성전환 수술을 원하지 않았으나, 자신이 단순히 취미로만 여장을 하는 것이 아니며, 여성의 '젠더'로 전일제로 살아간다는 이유에서 트랜스 베스타이트와 트랜스섹슈얼의 중간적 존재로 스스로를 정체화했다.


나는 위 내용을 바탕으로 버지니아 프린스가 최초의 트랜스젠더로 평가받을만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단어를 만들었으며, 트랜스섹슈얼, 트랜스베스타이트와 구분되는 의미 있는 정체성을 실천했다. 그가 69년 '트랜스젠더럴'을 만든 이후로 70년대와 80년대에는 '트랜스젠더리스트(Transgenderist)', 혹은 '트랜스젠더드(Transgendered)'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상과 트랜스섹슈얼의 소멸


(좌) 트랜스젠더 우산의 초기 형태 (1994), (우) 교육용으로 작성된 트랜스젠더 우산 (2007)


90년대의 '트랜스'는 더 이상 의학적 사건의 일부로 다뤄지지 않게 되었다. '트랜스젠더'는 90년대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을 만나며 모든 종류의 젠더 비순응자를 포함하는 우산 용어로 재정의 되었다. 그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트랜스젠더'의 밑바탕이 되었다. 레슬리 파인버그(Leslie Feinberg)는 1993년 「트랜스시스터즈(TransSisters)」와의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저는 대중운동이 “트랜스젠더”라는 단어의 정의를 형성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트랜스젠더 공동체를, 세상이 남성을 남성적이고 여성을 여성적으로 정의하며 두 성을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것으로 구분하고 두 젠더를 할당하는 그런 세계 속에서, 그 사이에 위치한 우리 모두 — 트랜스섹슈얼, 트랜스베스타이트, 안드로진, 인터섹스인 사람들, 드랙퀸, 드랙킹, 여성 일루저니스트 — 이들을 모두 트랜스젠더로 정의하고자 합니다. — Davina, 1993, p.4


정리하자면 성별 경계를 어떤 방식으로든 넘는다면 그것은 트랜스젠더라고 부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용어는 단지 '내가 누구인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보다는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즉, 트랜스젠더 공동체의 출현을 의미했다. 따라서 '트랜스젠더'는 트랜스젠더리스트와 트랜스섹슈얼을 동시에 포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개념은 퀴어 이데올로기의 하위 흐름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에 강하게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남성은 남성적인 이성애자여야 하는가, 여성은 여성적인 이성애자여야 하는가 등의 의문들이 주로 거론되었다. 하지만 가장 문제시되었던 부분은 역시 생물학을 해체하려 한 데에 있었다. 젠더 이론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생식기가 성을 결정한다는 생각까지도 사회가 구성한 규범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케이트 본스타인(Kate Bornstein)의 인터뷰는 이 아이디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잘 보여주는 예시다.


케이트: 그렇죠. 그래서 저는 당신이 성기를 미워하게 된 게 바로 이런 가르침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착한 아들, 네 성기를 사랑해라”라는 가르침을 받고, 당신은 “아니, 난 남자가 아니야”라고 느낀 거죠. 그러면서 성기와 남자가 동일시되니까, 당연히 그것을 미워하게 된 거예요.

다비나: 당신은 또 성기 수술에 대한 요구가 “문화적 성기 규범(cultural genital imperative)”에 의해 지속된다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신이 새 성기를 좋아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그 선택을 하겠다고 말하죠. 그렇다면 당신이 성전환 수술을 받기로 한 결정 역시 이 “문화적 성기 규범”의 결과였다고 보나요?

케이트: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에 대해 지독하게 분노하고 있어요. 저는 제가 이 수술을 하도록 조종당했다고 느낍니다. 정말 그렇게 느껴요.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화가 터져 나오는 거죠. 다만 수술이 잘 된 건 다행이에요. 저는 운이 좋았어요.

— Davina Anne Gabriel, Fool's Paradox: An Interview With Kate Bornstein, TransSisters, 5, p.19, 1994
케이트 본스타인은 성기 수술 욕구를 문화적 성기 규범(cultural genital imperative)의 결과로 보았다. 그는 성별 불쾌감을 극복해야 할 이념적 과제로 만들었다.


트랜스섹슈얼리즘의 기반에는 '생물학적 성'이 존재하고, 잘못된 몸을 타고났으니 수술과 호르몬 요법을 통해 이를 되돌려야 한다는 해리 밴자민식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만일 생물학이 규범이라면 '성별 불쾌감', 그중에서도 해부학적 불쾌감은 규범화된 편견에 불과하다. 케이트는 심지어 자신이 수술을 받도록 '조종당했다(Manipulated)'라고까지 표현한다.


성전환 수술은 미용에 불과하다는 인식, 그리고 생식기는 성별과 관련이 없다는 해체주의적 해석은 '트랜스젠더'라는 새로운 공동체 안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잘못된 몸'은 사실 없다는 이 메시지는 누군가에게는 몹시 매력적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트랜스젠더리스트들은 이 사상을 신봉하기 시작했고, 트랜스섹슈얼들은 이 흐름에 기꺼이 올라타는 사람도 있는 반면, 명확히 반대 의사를 표현한 사람들 또한 다수 존재했다. 주로 반대한 사람들은 해부학적 성별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몸에 대한 문제를 겪는 사람에게 "그건 네 편견일 뿐이야"라고 답하는 '이론'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또한, 트랜스젠더라는 용어 자체가 성별을 바꾸지 않는다는 암시를 줬기 때문에 거부감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정말 흥미로운 사례 한 가지를 인용하겠다. 트랜스섹슈얼 페미니스트인 마가렛 디어드리 오하티건(Margaret Deidre O'hartigan)은 '트랜스젠더'의 등장으로 인한 성별의 포스트모더니즘적 해체가 여성을 파괴할 것이라 우려했다.


그러나 백인 남성을 우대하도록 기울어진 사회에서 성적 구분의 제거는 약자 우대 정책의 제거와 마찬가지로 현상 유지를 강화할 뿐이며, 그 현상 유지는 백인 남성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 “포스트모더니즘”은 속기 쉬운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성차별과 인종차별에서 벗어나 감옥을 바깥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하도록 가르치는, 상대주의를 끓여 만든 죽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그들이 그 안에 갇혀 감옥의 쇠창살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말이다.

정체성 정치의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해체주의”는 정체성 정치의 마지막 바로 전 단계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는 집단에서는 해부학적 사실, 개인의 역사, 실제 행동이 결합된 증거보다 “자기정체화”가 더 우위를 차지한다. [...] 각각의 경우에서 말로 선언하기만 하면 그것이 곧 사실이 되는 듯하며, 그 결과는 진정으로 억압받는 이들에게 더 큰 억압을 가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억압이 언제 어디서 발생하는지를 인식하는 능력마저 약화시킨다.

지금 이 세상은 여성이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학대당하며, 살해되기까지 하는 곳이다. 그런 현실 앞에서 해체주의는, 그저 인류의 죄책감을 눌러주는 집단적 기억상실제에 지나지 않는다.

— O'hartigan, 1999, p. 13


오하티건은 당시에 이미 사태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트랜스젠더 사상이 자행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생물학적 성별의 해체, 그리고 생물학적 실체보다 선언을 우선시 두기에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오하티건은 해부학적 성 불쾌감을 가진 트랜스섹슈얼었다. 그는 자신의 성기를 자해하다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발견되어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 후, 곧바로 가족에게 버림받다. 때문에 이 이론이 전혀 설득력이 없게 느껴졌으리란 건 자명하다.


요즘의 트랜스젠더들이 절대로 하지 못할 법한 말이지만, 이러한 의견은 꾸준히 있었다. 당시는 젠더 이데올로기의 태동기였으므로 트랜스섹슈얼 개인도 그러한 사상에서 어느 정도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오하티건은 트랜스섹슈얼 래디컬 페미니스트라는, 현재 시점에서는 꽤 모순적으로 보이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이게 가능했었다.


오하티건과 같은 입장의 사람들은 당시 '트랜스섹슈얼 분리주의자'라고 불리며 차별주의자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그들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물론 당시에도 이런 반발은, '차별적'이라는 이름하에 류 의견이 되지 못했다. 도리어 트랜스젠더 공동체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신들만의 '이론'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90년대의 이러한 우산용어 열풍과, 트랜스젠더 공동체의 출현은 처음 레슬리가 말한 대로 '트랜스젠더'의 뜻을 규정해 가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젠더 정체성이 지정 성별과 다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정의는 과거 DSM-III-R에서 성동일성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 GID)를 설명하기 위한 문구였다(APA, 1987, p. 71). 용어 자체는 그대로 가져가되, 뜻을 변형하고 우산용어로써 범주가 확장되었다.


용어를 하나하나 파헤쳐보자면, 첫째로 '생물학적 성별(biological sex)'은 해체되어야 할 규범적 개념으로 간주되기에 '출생 시 지정된 성별(sex assigned at birth)'이라는 용어가 채택되었다. 또한 누군가가 의학적으로 GID를 가졌다고 평가되지 않더라도, 지정 성별과 다른 젠더 정체성으로 정체화한다면 트랜스젠더의 범주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젠더 정체성은 스펙트럼으로 재해석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젠더퀴어(gender queer)와 논 바이너리(non-binary) 트랜스젠더가 등장했다.


이러한 정의가 명확히 언제부터 통용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특정하기 어렵지만, 의미 있는 사건을 하나 예로 들 수는 있다. 2002년 필라델피아와 뉴욕 시에서 '출생 시 지정 성별'과 무관하게 젠더 정체성을 근거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개정한 일이다. '지정 성별'이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2014년 이후로는 이러한 정의가 완벽하게 정착되었다. 스펙트럼화된 젠더 정체성은 트랜스젠더리즘의 핵심 개념이 되었고, 생물학적 성별은 그 자체가 비평의 대상이 되어 '지정 성별'이라 불리게 되었다. 트랜스섹슈얼은 2000년대 이후로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표현이라는 이유로 사장되었다. 여기까지가 바로 트랜스젠더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정착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 트랜스섹슈얼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모든 것이 정치 이념화, 즉 젠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모호성의 정치 희생된 트랜스섹슈얼


이제 우리는 90년대 이후 이 '트랜스젠더'가 기존의 '트랜스섹슈얼'이 담고 있던 용어적 함의와 얼마나 멀어졌는지에 대한 지식 기반을 형성했다. 해리 밴자민이 1966년 최초로 대중화시켰을 당시 '트랜스섹슈얼'은 우리가 요즘 흔히 말하는 바디 디스포리아(body dysphoria)를 기반으로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과 반대의 성별로 강하게 동일시하는 사람을 뜻했다. '트랜스섹슈얼리즘(transsexualism)', 즉 성전환증은 DSM-III(1980)에 최초로 수록된 진단명이었다. 그랬던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쳐오며 하나의 이념이 되었다. 성별 불쾌감은 더 이상 트랜스젠더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다. 90년대 이전에는 트랜스젠더리스트나 주변부 트랜스베스타이트로 분류되었을 사람들이 이제는 생물학이라는 억압을 해체하는 투사가 되었다. 크리스틴 조겐슨이나 도라 리히터, 릴리 엘베가 그러했듯 스스로 원해 받았던 성전환 수술은 ‘성(sex) 자체가 규범’이라는 구호 아래 사회의 억압으로 리브랜딩 되었다. 이제 트랜스젠더들은 더 이상 수술을 받고 싶어서 받는 게 아니며, '그래야만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수술을 고려한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처음에 했던 질문, '최초의 트랜스젠더는 누구일까?'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트랜스젠더를 종합적으로 정의해 보겠다. 트랜스젠더는 다음의 뜻들을 동시에 가진다.


1. 트랜스젠더리스트, 수술 없이 젠더를 전환하여 전일제로 사는

2. 트랜스섹슈얼, 외과적 성전환자

3. 젠더퀴어 및 젠더 이분법을 거부하는 구호 의미

4. 성별 비순응자를 통칭하는 우산용어


위 네 가지 의미는 하나의 단어 아래 묶여 있다. 최초의 트랜스젠더는 누구일까? 도라 리히터? 버지니아 프린스? 혹은 선사시대의 누군가? 젠더 이데올로기가 불편해할 만한 사람은 아마 버지니아 프린스 한 사람뿐일 것이다. 트랜스 활동가들은 상황에 따라 용어를 다르게 사용하며, 이 모호성을 극복하기보다는 교묘하게 활용해 왔다. 나는 이것을 '모호성의 정치'라고 규정한다. 즉, 정의를 의도적으로 넓고 흐리게 유지해 책임과 검증을 회피하고, 동시에 ‘포용성’이라는 명분 아래 모든 반대 의견을 봉쇄하는 전략이다.


젠더 이데올로기는 젠더의 경계를 넘나 든다는 사회 개혁적 가치를 통해 진보 운동권에서 하나의 이념으로 받아들여졌다. 성전환 수술은 단순한 성형 수술로 취급되었고, 이 '젠더 개혁' 운동의 일부로 흡수됨으로써 불쾌감 완화를 위해 의료적 조치가 필요한 트랜스섹슈얼들은 더 이상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다. 젠더 이론은 해부학적 성별 불쾌감을 느끼는 트랜스섹슈얼들을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 포함시키면서도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을 트랜스포비아를 내면화한 사람들로 규정했다. 트랜스섹슈얼들은 트랜스젠더리스트와의 이념전쟁에서 패배했고, ‘트랜스젠더’라는 포용성 아래 침묵해야 했다. 그들의 독립 요구는 ‘트랜스섹슈얼 분리주의(transsexual separatism)’라는 배제적 시도로 간주되었고, 단지 트랜스젠더 운동에 쓸모 있을 때만 소환될 뿐이었다.


리키 앤 윌친스(Riki Anne Wilchins)는 트랜스섹슈얼 분리주의를 가장 강하게 비판한 사람 중 하나였다.


이러한 현실은 트랜스섹슈얼 개인을 원치 않게 진보적 운동가로 탈바꿈시켰다. 나는 분명 어떤 정치적 사명을 가지고 성전환을 선택한 게 아님에도 젠더 이데올로기의 지지자가 되었고, 진보적 사명을 띤 젠더 개척자가 되었다. 어느새 나는 내 의견과는 무관하게 존재 자체로 특정 정치적 입장이었다. 의료적 성 전환자의 고통은 사회가 젠더 이데올로기를 받아주지 않아서 생기는 게 아니다. 실제로는 그 반대다. 이 사상 안에서 트랜스섹슈얼이 원하는 외과적 조치는 생물학이라는 이름의 성별 규범에의 순응으로 재해석된다. 그렇기에 ‘진정한 트랜스젠더는 수술과 무관하다’는 버지니아 프린스의 잔재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 억압은 트랜스섹슈얼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여성들 또한 그 대상이 된다. 젠더 이데올로기의 틀 안에서 여성 공간에 페니스가 들어오는 것에 대한 우려는 ‘생물학적 성별 규범의 내면화’로 치부된다. 그들이 여성과 트랜스섹슈얼에게 요구하는 바는 동일하다. "내면화된 트랜스포비아를 극복하라." 다만 트랜스섹슈얼에게는 조금 더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성전환 수술에 대한 욕구는 인정하면서도, 성전환(sex-change)으로서의 의미는 철저히 지워내는 것이다. 그렇게 ‘성 재지정 수술(SRS)’은 ‘젠더 증 수술(GAS)’로, 더 나아가 ‘아래 수술(bottom surgery)’로 격하된다. 이러한 용어 변천은 트랜스섹슈얼에 대한 이중적 구속을 상징한다.


트랜스섹슈얼의 목소리를 가장 철저히 단속한 사람들은 오히려 트랜스젠더, 즉 젠더 이데올로기의 지지자들이었다. 트랜스섹슈얼들은 차별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이러한 ‘포용성’과 ‘다양성’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설령 그 포용성의 끝자락에 자신과 전혀 닮지 않은 이들이 있더라도 말이다. 이것은 단지 트랜스섹슈얼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하티건이 지적했듯 젠더 이데올로기가 성별 경계를 임의로 해체하면서 여성의 경험마저 지워낼 위험을 낳았다. 이 지점에서 페미니즘의 문제의식과 충돌한다. 트랜스섹슈얼의 침묵은 곧 여성 현실의 약화로 이어지며, 이는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중요한 쟁점이다.



마치며: 해체주의가 향해야 할 곳


젠더 표현의 자유를 되찾는 의미로써 젠더 이데올로기는 매력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사상은 러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 문제의 중심에는 그들이 "생물학적 성" 개념의 해체로 나아가려 했다는 데 있다. 슬리의 생각은 틀렸다. 젠더 규범의 생물학적 결정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결정론적 성역할 구분이지 생물학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러나 젠더 이데올로기는 엉뚱하게도 생물학을 해체하려 시도했고, 그 순간 이 사상은 성역할 해방과 무관해졌다. 오하티건의 진단은 정확했다. 젠더 이데올로기는 정체성 정치의 극복이 아닌 그것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이며, 기존의 권력 체계를 단단히 고착시킬 뿐이다.


따라서 '트랜스젠더'는 반드시 해체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이 사상이 태동하던 90년대에 비해 훨씬 더 자유로운 젠더 표현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젠더 이데올로기다. 만일 우리가 레슬리가 처음 정의한 '트랜스젠더'가 담고 있던 본질적 가치, 즉 사회가 정의한 젠더 규범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현재 그러한 가치를 체화한 상태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대 사회는 트랜스젠더리즘에 의존하지 않고도 '젠더 규범'을 적극적으로 해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장 해체해야 할 것은 랜스젠더 사상, 즉 더 이데올로기 그 자체이며, 그때 우리는 비로소 '젠더'부터 한층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젠더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는 게 진보적 가치라면, 최종적으로는 경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옳다. 그러나 젠더 이데올로기는 오히려 '경계'와 '젠더 규범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해체주의가 향할 다음 방향은 경계를 넘는다는 개념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정말로 젠더가 해체되어야 한다면, 트랜스젠더 역시 해체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 시기 이미 도래했다.





부록

포스트모더니즘은 여성을 해친다

off our backs, 1999년 1월호, 마가렛 디어드리 오하티건 씀


10월 16일, 포틀랜드의 레즈비언 커뮤니티 프로젝트(Lesbian Community Project, LCP)는 정관에서 “여성(woman)”과 “여성들(women)”이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남성에게 투표권을 확대했으며, 단체가 “레즈비언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복지를 위해 헌신한다”는 의지를 명확히 표현하던 조항을 폐지했다.


같은 달, 「트랜스젠더 태피스트리(Transgender Tapestry)」라는 잡지는 샌디에이고에서 남성 환자가 여성 치료사를 살해한 사건을 이렇게 설명했다. 남성으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을 트랜스섹슈얼 여성으로 “정체화”하던 그 남성은, 치료사가 성전환 수술을 위한 추천서를 써주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억압받았다”는 것이다.


이 두 사례 모두에서 실제 여성들이 겪는 억압은, 성의 물리적 현실이 젠더의 이론적 “해체” 담론에 압도되는, 거의 현실과의 정신병적 단절에 가까운 방식으로 축소되고 있다.


성별이 단지 “구성된 사회적 정체성”에 불과하다는 “포스트모던” 가설은 여성에 대한 억압은 그대로 둔 채 “여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위협한다. 미셸 푸코(Michael Foucault)와 같은 백인 남성들에 의해 주로 개발되고 전파된 “해체(deconstruction)”라는 궤변이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큰 환영을 받는 것은 놀랍지 않다. 그러나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상적으로 차별받고 살해되는 세상에서, 「off our backs」가 콜린 파월(Colin Powell)과 제리 스프링어(Jerry Springer)만을 “권위자”로 인용한 “정체성 정치와 진보(Identity Politics and Progress)”(off our backs, 1998년 4월호)라는 글을 통해 “해체”를 찬양하는 두 쪽짜리 글을 실을 정도라면 이제 현실 점검이 필요하다. “해체”는 신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함으로써 이러한 부당함에 대한 인식을 지울 수는 있겠지만, 부당함 자체는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포틀랜드 레즈비언 커뮤니티 프로젝트, 정관에서 ‘여성’ 삭제


포틀랜드에서 매년 열리는 새해 전야 파티와 여름 소프트볼 토너먼트로 가장 잘 알려진 레즈비언 커뮤니티 프로젝트(LCP)는 그동안 레즈비언 건강 문제를 알리고, 동성애 반대 투표안에 대한 정치적 반대 운동을 조직했으며, 지난 11년 동안 수천 명의 오리건 레즈비언들의 사회적·개인적 삶을 풍요롭게 해왔다. 그러나 10월 16일 열린 연례 총회에서 LCP는 남성들에게 정회원 투표권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1970년대 용어를 빌리자면 “여성으로 정체화한(woman-identified)” 여성 회원들에게 등을 돌리고, 단체 정관에서 ‘여성’에 관한 모든 언급을 삭제했다.


이 정책 변화가 명백히 겨냥한 인물 중 한 명은 LCP의 유일한 유급 직원으로, 지난봄에는 '데비 로(Debi Law)'라는 이름으로 채용되었지만 지금은 '딕(Deke)'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자신을 지칭할 때 남성 대명사를 쓰고 있다.


감정적으로 격앙된 LCP의 연례 총회에서 많은 여성들은 단체를 여성 조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자신의 바람이 “남성”의 감정에 대한 배려 때문에 무시당했다는 깊은 배신감을 드러냈다. LCP 정관 개정을 비판한 한 여성은 레즈비언들이 “우리 자신의 조직에 의해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관 개정안은 66대 21의 표결로 승인되었다.


유색인 레즈비언들은 이중의 상실을 겪었다. 주로 백인으로 구성된 LCP 회원들은 73대 10이라는 표차로 단체의 적극적 우대 정책에 대한 헌신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이전에 단체의 12개 이사회 직위 중 3개를 “유색인 여성에게 할당해야 한다”고 명시했던 LCP 정관 조항은 삭제되었고,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대체되었다. “이사회는 인종, 성적 정체성, 문화, 연령, 경제 계층, 젠더 정체성, 신체 능력을 포함하되 이에 국한되지 않는 레즈비언 공동체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모든 이사회 구성원은 LCP의 반인종주의 활동에 헌신해야 한다. 이 헌신을 반영하기 위해 이사회는 최소 50%가 유색인 커뮤니티 구성원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헌신'은 현실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이사회 정원은 12명에서 6명으로 줄었고, 10월 16일 열린 회의에서 선출된 6명 중 5명은 백인이었으며 유색인은 단 한 명뿐이었다.


트랜스젠더 잡지, 여성이 자신의 살해를 자초했다고 비난


「트랜스젠더 태피스트리」의 표지는 잡지가 “젠더 표현의 다양성을 기념한다”는 데 헌신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1998년 가을호에는 기념할 만한 내용이 없었다. 지면에 실린 한 페이지짜리 기사에서는 리타 파워스(Rita Powers)라는 여성 치료사가 자신을 살해한 월터 밀러(Walter Miller)에게 성전환 수술 추천서를 써주기를 주저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고 설명했다. 이 기사는 밀러가 남성으로 직업을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여성 대명사로 그를 지칭했다.


“그녀는 치료사로부터 어느 정도 부정적인 반응을 받고 있었다”고 기사는 설명했다. “자살이 그녀가 생각한 유일한 다른 선택지였기 때문에, 그녀는 분명히 자신의 길을 막고 있던 단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것이다.”


그 기사 어디에서도 이 범죄에 대한 분노나 이 변명의 여지 없는 남성 폭력의 피해자에 대한 연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강간범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태도, 즉 여성이 자신의 행동 때문에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는 식의 시각이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살인범을 피해자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사는 일반적으로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차별을 이유로 사회 전체에 책임을 돌리며 범죄의 심각성을 한층 더 완화하려 했다.


살인을 정당화하려는 이 터무니없는 변명은 기사 자체에 담긴 사실들만 보아도 명백하다. 예를 들어 살인범이 여전히 남성으로 살고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의 법적 이름이 여전히 월터 밀러였다는 사실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젠더 태피스트리」와 그 필자들이 받아들인 젠더의 “사회적 구성(social construct)”이라는 개념에 충실하게, 이 잡지는 일관되게 여성 대명사를 사용하고 밀러를 줄리아 모건(Julia Morgan)이라는 가명으로 반복해서 지칭했다.


같은 잡지에는 “트랜스젠더 케어와 윤리(Ethics and Transgender Care)”라는 제목의 또 다른 칼럼이 실렸는데, 이 칼럼은 리타 파워스의 살해 사건을 이용해 치료사들과 심리치료 전반을 비판하는 글로 시작했다. 두 칼럼 모두 파워스에 대한 정보는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가족이 있었는가? 레즈비언 파트너나 남편, 아이, 혹은 반려동물이 있었는가? 사랑하는 이들의 애도를 받고 있는가, 아니면 외로운 삶을 살았는가? 독자들은 태피스트리 지면에서 그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잡지가 “젠더 표현의 다양성”을 기념하고, 월터 밀러의 뒤이은 자살을 한탄하는 데 바빠서 피해자인 파워스를 위한 지면은 단 한 줄도 할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적 해체’


「트랜스젠더 태피스트리」가 월터 밀러를 여성으로 “사회적으로 구성”한 방식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존재하는 매우 실제적인 신체적 구분을 허물어버림으로써, 남성이 여성에게 가한 폭력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흐리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레즈비언 커뮤니티 프로젝트가 남성의 참여와 남성의 감수성을 지나치게 배려한 결과, 그 조직은 여성만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기존에 유지하던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제거하게 되었다. 이 두 사례는 모두 젠더가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관념에 부합하며, 그 결과는 공통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진 해악을 인식하지 못하는 근시안적 실패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젠더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해체”의 논리적 귀결이다.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젠더”의 종착점은 성적 차이를 제거하는 데 있으며,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은 여성의 축소, 위협, 그리고 제거다.


두 경우 모두에서 여성이 패자가 된다는 사실은 “포스트모던적 해체”가 지배적인 남성 패러다임을 강화하는 데 얼마나 손쉽게 기여하는지를 보여준다. 만약 젠더의 제거가 실제로 여성에게 이익이 된다면 이런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백인 남성을 우대하도록 기울어진 사회에서 성적 구분의 제거는 약자 우대 정책의 제거와 마찬가지로 현상 유지를 강화할 뿐이며, 그 현상 유지는 백인 남성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off our backs」 4월호에 실린 크리스틴 세버슨(Kristin Severson)과 빅토리아 스탠호프(Victoria Stanhope)의 정체성 정치와 진보에 대한 “분석”은, “매우 복잡하고 구성된 사회적 정체성”이 아니라 “그들의 이데올로기라는 진정한 쟁점”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단결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세버슨과 스탠호프의 눈에는 피부색이 “이데올로기”에 비하면 하찮은 문제로 보이는 듯하며, 구체적인 신체 해부학적 차이는 그저 불필요한 “복잡하고 구성된 사회적 정체성”에 불과한 것이 된다. 아이러니에 대한 자각도 없이, 그들은 미셸 푸코의 해체주의 철학을 여성과 인종적 소수자에 대한 억압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처럼 제시한다. 마치 푸코 같은 백인 남성이 그러한 억압에 대한 결정적인 설명을 제공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속기 쉬운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성차별과 인종차별에서 벗어나 감옥을 바깥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하도록 가르치는, 상대주의를 끓여 만든 죽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그들이 그 안에 갇혀 감옥의 쇠창살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말이다. 정체성 정치의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해체주의”는 정체성 정치의 마지막 바로 전 단계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는 집단에서는 해부학적 사실, 개인의 역사, 실제 행동이 결합된 증거보다 “자기정체화”가 더 우위를 차지한다.


레즈비언 커뮤니티 프로젝트는 이사회가 백인과 유색인으로 동수 구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말로만 언급함으로써, 실제로 그런 이사회를 구성해야 할 책임에서 스스로 면책된 것처럼 보인다. 그 단체는 자신을 남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을 배려해 포함시키는 과정에서, 정관에서 “여성”과 “여성들”이라는 말을 아예 배제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남성으로 살아가고 일하며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선언하는 남성은, 그 말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각각의 경우에서 말로 선언하기만 하면 그것이 곧 사실이 되는 듯하며, 그 결과는 진정으로 억압받는 이들에게 더 큰 억압을 가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억압이 언제 어디서 발생하는지를 인식하는 능력마저 약화시킨다.


지금 이 세상은 여성이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학대당하며, 살해되기까지 하는 곳이다. 그런 현실 앞에서 해체주의는, 그저 인류의 죄책감을 눌러주는 집단적 기억상실제에 지나지 않는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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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1987).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3rd ed., rev.). Washington, DC: Author.


커버 사진 : “Transgender Pride Flag” 작성자: Foreign, Commonwealth & Development Office, CC BY 2.0)



최초 작성 : 2025.8.26

일부 수정 : 202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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