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후, 사라진 나의 시간

육아 속에서 점점 흐려지는 나

by 늘새미

임신테스트기를 들고 처음 산부인과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은 마치 한 문장의 끝에 마침표를 찍듯이 ‘엄마’라고 불렀다.


“여기 봐봐. 엄마. 아직 아기는 안 보이고 초음파에 보이는 건 아기집이야. 엄마.”


빠르게 쏟아지는 중요한 정보와 아직 익숙하지 않은 호칭 사이에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결국 다음 진료부터는 다른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게 되었다.


분명 원했고, 축복스러운 일이었지만 아직 마음은 엄마가 되지 못한 채였다. ‘엄마’라는 호칭은 여전히 나보다 한참 높은 위치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로서의 나에 대한 자신이 없었고 두려웠던 것이다. 엄마라는 호칭은 내게 너무 빨랐다. 내 안에서 ‘엄마’라는 정체성은 로딩중이었다.


산후조리원이나 사진관에서 전화를 받을 때 “어머님 되시죠?”라는 말을 들으면, 순간 전화를 잘못 받은 건가 싶어 핸드폰을 다시 쳐다보곤 했다.



육아를 하며 하루 중 가장 느리게 가는 시간은 남편 퇴근하기 1시간 전이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분주하게 지나가는데, 남편이 돌아오기 직전의 시간은 유독 더디게 흘렀다. 왜 그렇게 남편을 기다렸을까?


‘맘마’, ‘지지’ 같은 단순하고 쉬운 말을 반복하다 보면, 내 사고의 폭도 단순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이를 낳고 뇌를 같이 낳았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어른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말이 통하는 존재는 남편뿐이었다. 남편과 대화하는 시간 동안은 내가 엄마 이전의 ‘나’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엄마'라는 이름이 조금씩 익숙해질수록, 나는 점점 나였던 시절을 잊어갔다. 그것이 조금 서글폈다. 남편이라는 경로를 통해서 나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내가 의존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남겼다. 그런 생각은 나를 더욱 작아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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