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분노보다 더 무서운 건 자책
'육아'는 아이를 기르는 것을 말하지만, 실제로 육아를 하면 아이를 돌보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밖의 일이 더 많다.
아이를 돌보면서 필수적인 집안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기에게 분유 수유를 한다면 젖병을 세척하고 소독하는 일이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식기세척기를 쓰더라도, 젖병소독기를 쓰더라도 어쨌든 손이 아예 안 들어갈 순 없다.
이렇게 넓게 보면 육아란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설거지, 청소, 빨래 등 부수적인 집안일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나는 그 중에서 밥 먹은 자리 바닥을 치우는 일이 가장 싫다.
아기가 밥 먹은 자리는 상상 이상으로 지저분하다.
식당에서 아기를 데리고 온 가족 손님을 보면 직원이 한숨부터 쉬기도 한다는데 충분히 이해 간다.
먹는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탐색하고 즐기셔서 그 뒷감당은 오롯이 엄마 몫이다.
바닥을 닦다 보면 닦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보니 결국 무릎을 꿇게 된다.
그게 제일 싫다.
하녀가 된 것 같고 자신이 너무 초라해지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닦으면서 드는 생각은 딱 하나다.
"아,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지?"
하루 세 번,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한숨만 늘어나는데 아기가 점점 커가면서 장난끼도 늘어나 일부러 음식을 던지거나 액체류를 쏟아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그럴 때면 이제 참았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하고 만다.
"왜 이러는 거야 정말!!"
당연히 그 다음은 불 보듯 뻔하다.
아기는 자기보고 화냈다고 앙앙 운다.
아이의 우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자책으로 이어진다.
'왜 화를 못 참고..
아기가 그러는 게 당연하지...
아 나는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보다.' 하면서.
예전에 카일리 제너가 아기와 요리하는 것을 영상을 본 적 있다.
카일리 제너 육아 잘한다고 칭찬이 많았던 영상인데, 내용은 쿠키를 만드는 중에 아기가 물을 쏟았는데 카일리 제너가 전혀 화를 내지 않고 타월을 주며 "괜찮아. 닦으면 돼" 하면서 직접 닦게 한 것이었다.
그 영상을 보고 나서 육아맘들이랑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었다.
"물이 아니라 참기름이었다면?"
"자기가 안 닦을 일이 없으니까 화가 안 나는 거 아냐?"
"저 엄마는 그럼 저런 걸로는 절대 화내지 않나?"
이 모든 질문은 과연 화를 내지 않는 엄마가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묻어있다.
깊게 들여다보면 화를 내는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마음이 들어있다.
합리화는 방어적이다.
그 행동 자체가 부정적임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화를 내는 엄마'는 나쁜 것일까? 엄마가 화를 내는 것이 합리화를 할 만큼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화를 내는 엄마'가 좋아보이진 않지만, 좋은 엄마의 기준이 '화를 안 내는 엄마'는 아니지 않는가.
핵심은 '화'가 아니라 그 모든 일이 끝나고 난 뒤에 자연스럽게 이어진 '자책'에 있다.
화내는 것보다 더 나쁜 것 자책이다.
자책은 엄마로서의 자아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이후에 또 다시 그런 일을 반복하게 만든다.
반성과 자책은 다르다.
반성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바라보는 진취적인 느낌이라면 자책은 과거를 탓하는 정반대의 방향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장 싫어하는 일임에도 매일 해내는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매번 깨끗하고 쾌적한 식사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엄마로서 얼마나 멋있는가!
내일도 아기는 밥을 먹으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온갖 탐색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제보다 더 자란 엄마로서, 침착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신사임당이 내 몸에 빙의한 것처럼 우아하고 현명하게 말이다.
"음식은 우리 아기 입 안에 있는 게 제일 좋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