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 앞에 놓인 기대들
육아휴직을 하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이상한 욕심이 생겼다.
물기 하나 없는 개수대, 발바닥에 먼지가 안 묻는 바닥, 가지런히 정리된 장난감으로 환한 거실 이런 모습에 괜히 마음이 뿌듯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면 내가 게으른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거였다.
SNS에선 아이를 위해 직접 교구를 만들고, 문화센터급 놀이를 실천하는 엄마들이 넘쳐난다.
그들의 집은 하나같이 잡지 속 사진처럼 늘 정돈돼 있고, 엄마들은 화장도 옷차림도 깔끔하다.
나는 SNS를 자주 하진 않지만, 아이 사진 몇 장 올리기 위해 접속할 때마다 그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경과 부러움이 함께 밀려왔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공간을 유지하고 싶었다.
직장에서 사회 속에서 일을 하던 내 모습은 집안일을 하는 내 모습에도 반영된 듯했다.
나는 조금씩 기준을 만들며 아무도 시키지 않은 업무평가를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엄마'는 정식으로 고용된 직업이 아니다.
보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휴가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업무량은 많고, 그 일은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정서와 교육까지 챙기는 것.
우리가 사회에서 '직업'이라 부르는 일보다 훨씬 많은 스킬이 요구되는 게 바로 이 일이다.
나는 문득 엄마라는 역할의 특징을 정리해 봤다.
1. 출퇴근이 없다. 24시간 항시대기.
2. 직무가 무한하다.
3. 사회적 인정이 미미하다. 명문대,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까지... 그래야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분위기.
건축가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각국의 화폐 속 인물을 보면 그 나라 국민들이 가치관이 보인다고 했다.
우리나라 화폐에는 오랜 시간 왕, 정치가, 학자만 그려져 있었다. 2009년, 드디어 여성이 등장했다.
바로 신사임당.
하지만 그녀가 선택된 이유도 '이율곡의 어머니'라는 타이틀이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짐작한다.
내가 신사임당을 롤모델로 지향하는 것도 이런 사회 분위기의 영향을 받았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여전히 '자녀를 잘 키운 엄마'에게 박수를 보낸다.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가 따라붙는다.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 우리는 늘 시험을 치른다.
완벽한 공간, 현명한 육아, 감정 조절까지.
그리고 그 기대를 스스로에게도 똑같이 적용한다.
매일 정답을 내야 하는 문제집처럼.
엄마라는 이름 앞에, '최선'이 아니라 '정답'을 기대하는 건 아닐까.
아이가 아프면 엄마 탓, 키가 작아도 엄마 탓.
유독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엄마의 책임을 묻는다.
정작 아이가 잘 자라고, 무언가를 잘 해낼 때는 "엄마 덕분"이라는 말은 잘 나오지 않는다.
엄마는 잘해도 당연하고, 못하면 부족한 사람이 되기 쉽다.
이 어려운 걸 해내는 엄마들,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