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다 나를 우선순위에 둘 수 있도록
하루는 식탁 치우기가 너무 싫었다.
대개는 아이 밥을 먹이고 곧장 치우거나, 잠들면 바로 치우곤 했는데 이유식으로 지저분해진 식탁이며 바닥 등 흔적이 남은 모든 공간을 닦는 게 지쳤다.
그냥 소파에 누워 쉬고 아이 낮잠 시간을 집안일이 아닌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시간이 지나자 떨어진 작은 음식 조각들이 굳으면서 라면 건더기 수프처럼 작고 딱딱해졌다.
오히려 더 치우기가 편해졌다.
물론 모든 경우에 그렇진 않다. 치즈 같은 건 오래 뒀다간 영원히 박제되기 십상이다.
그날은 운좋게도 더 편해진 상황이 만들어졌다.
어쨌든 그 사소한 미룸이 내 마음에 기분 좋은 바람을 불어넣었다.
정돈되고 깔끔한 공간이 곧 나의 성적표처럼 느끼곤 했다.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었기에 그만큼 피곤함도 컸던 것이 아닐까.
그날 나는 죄책감보다는 ‘내려놓음’이 주는 여유를 배웠다.
주변을 챙기듯 나 자신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챙길까라는 생각은 서러움이라기보다는 우선순위에 대한 생각이었다.
샤워를 할 때 친구가 선물해 준 좋은 향기의 바디샤워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직접 살 일은 절대 없는 물건이었기에 약속이 있거나 특별한 날 쓰곤 했다.
그날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좋은 향기를 오롯이 나를 위해서 쓰고 싶었다.
나는 매일을 아이에게 맞춘 스케줄로 살고 있었지만, 아주 가끔은 나를 위해서도 ‘특별한 날’을 지정할 수 있지 않을까.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날의 그 바디워시는 내게 은근한 선언이었다.
나는 오늘도 살아냈고, 그래서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다.
향기에 위로받고, 따뜻한 물에 힘을 빼고 나니, 마음까지 부드러워졌다.
예전에 김창옥 님이 말씀하신 것이 떠올랐다.
지방으로 강연 가실 땐 주로 모텔을 이용하셨는데, 그 돈 아껴서 다른 데 쓰면 좋겠지 하는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호텔로 지내는 곳을 바꾸면서 숙소비로 지불하는 돈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으셨다고 했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대접하면서 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으셨다는 메시지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나는 ‘조금 나를 챙기는 연습’을 매일 한 가지씩 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향기 침실에 뿌리기.
읽다 만 책을 다시 펼치기.
집안일에 힘 빼기.
이건 나태함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집이 조금 어질러졌다고 해서 내가 게으른 사람인 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덜’ 했기에 나는 조금 더 나를 잊지 않을 수 있었다.
나를 소중히 여긴다는 건, 이런 선택을 허락하는 것 아닐까.
하루 중 단 한순간이라도 나를 먼저 바라보는 연습.
반짝이는 개수대보다, 오늘은 내 눈빛이 더 반짝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