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드는 아이 옆에서 시작된 사유의 시간
첫째는 어릴 때부터 수면교육을 했고 혼자서도 잠을 잘 잤다.
그런데 둘째가 태어나면서, 공들여 놓았던 첫째의 수면습관이 무너졌다.
둘째는 첫째 눈치 보느라 수면 교육은 엄두도 못 냈고, 결국 '함께 누웠다가 아이가 잠든 후 조용히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문제는 아이가 잠드는 시간이 곧 내 의지력과의 싸움이라는 거다.
아이를 재우기 위해 자리에 누우면 마치 잠의 물결 속에 가라앉듯이 스르르 잠들었다.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스마트워치에 진동 알람을 맞추기도 했다.
물론 손목에 울리는 진동에도 꿈나라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가장 이상적인 건, 아이가 잠들고 나는 깨어 있는 상태다.
도둑처럼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와 고요한 밤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
하지만 그보다 더 생산적인 시간이 바로, '아이를 재우는 그 순간'이었다.
이후에 잠이 들어버리는 건 너무 많은 의지력을 필요로 하고, 또 의지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았지만 아이를 재우는 순간은 내가 핸들링할 수 있었다.
몸은 가만히 누워 있지만 머리는 자유로운 시간.
아이 옆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생각은 자유롭게 흐를 수 있었다.
이 시간을 창조적으로 바꿀 수 없을까?
그때부터 '생각하는 엄마'로서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마음속으로 원하는 미래의 장면을 떠올리는 연습을 하기도 하고, 하루 중에 내 꿈을 향해서 행동한 일을 떠올리면서 뿌듯함을 느끼고, 감사한 일을 세 가지씩 떠올리며 마음이 열리도록 했다.
「더 마인드」의 저자 하와이 대저택님도 아이를 재우며 마음속으로 100번씩 목표 말하기를 한다고 했다. 나도 나만의 문장을 정하고, 100번씩 반복하니 점점 그 문장 속의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추천하지 않는 생각 주제도 있다.
바로 '반성'이다.
특히 아이에게 짜증 낸 순간을 떠올리면, 자책의 늪에 빠지기 쉽다.
그럴 땐 이렇게 생각을 바꾼다.
"오늘 아침에 짜증스럽게 말한 건 아쉽지만, '사랑해'로 마무리했고, 헤어질 때 안아주고, 다시 만나서는 놀이터에서 함께 신나게 놀았어. 나는 여전히 사랑을 주는 엄마야."
반성 대신 자기 위로.
나를 긍정하는 말로 스스로의 이미지를 다듬는다.
사람은 자아 이미지에 맞는 삶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내가 '좋은 엄마'라고 믿는 순간, 내 행동도 그에 맞춰지기 시작한다.
그 행동들이 모이면 어느샌가 그런 모습에 가까워져 있는 날 발견하지 않을까.
아이를 재우며 나를 키운다.
하루의 마지막, 조용한 이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진다.